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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암 절벽에 아슬아슬 걸터앉은 ‘문수사(文殊寺)’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17] 문수면 월호리 ‘문수사’ 신라 때 창건한 방석사지(放石寺址)에 세워진 절집 처음 보는 순간 아슬아슬한 절집구조에 놀라기도 옛 방석사 보물들, 화단·돌담·계단·절간으로 흩어져 문수면 월호3리 문수사 전경 방석산 문수사 방석마을 표석 문수면 방석마을 문수사 문수사(文殊寺)는 문수면 월호3리 방석(放石) 마을에 있다. 영주에서 내려가는 서천과 봉화에서 흘러 온 내성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서북쪽 방향 산속에 숨어 있다. 옛 승문역 노트리 승강장에서 강 건너 산등성이에 위치한 문수사는 꼬부랑 산길을 돌고 또 돌아야 겨우 찾을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안내드리면 문수면소재지에서 문수역 앞을 지나 서천 강변도로를 따라 무섬방향으로 간다. 학가산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뻗은..

6.25 때 희방사와 함께 불타버린 잃어버린 보물 ‘월인석보’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16] [탐방일:2020.7.30] 풍기읍 수철리 희방사 월인석보 월인석보, 한글창제 후 불교서적을 최초 한글로 번역한 책 1459년 초간본 발행 후 1568년 희방사에서 복각-인쇄-보급 잃어버린 목판 복각 위해 영주시와 시민들이 뜻을 모아야 희방사 전경 우리고장 희방사에는 부처님 일대기를 새긴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과 그 판본(목판으로 인쇄한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조선 때 희방사는 ‘월인석보’라는 보물을 소장하고 있어 명성이 높은 사찰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나뿐인 이 보물이 안타깝게도 6.25 난리 통에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것도 불가항력의 재변(災變)이 아닌 순 인위(人爲)에 의해 소멸시켰으니 애석하다기 보다 너무도 기막히고 어이없는 노릇이다. ‘월인석보’..

1625년 취사 이여빈이 만든 최초의 군지 ‘영주지(榮州誌)’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15] [탐방일:2020.7.23] 최초의 군지 ‘영주지(榮州誌)’ 취사 이여빈이 평생 독서하고 학문하던 감곡마을(부석면 감곡1리 감실) 취사, 후세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준 선비의 표상 후일 ‘징험할 것이 없어 보지 못했다’는 한탄 면하게 하려함 고려 때 지명 영주(榮州)에서 유래하여 ‘영주지’라 칭했다 취사 이여빈은 누구인가? 이여빈(李汝馪 , 1556-1631)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덕훈(德薰)이며, 호는 취사(炊沙) 또는 감곡(鑑谷)이다. 우계이씨가 영남 땅으로 낙남한 것은 8세 퇴은(退隱) 억(薿 )으로부터 비롯됐다. 억은 강계원수로 재임 중 이성계의 명을 받아 요동정벌에 선봉으로 나가 공을 세워 밀직부사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