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 355

‘장엄과 신비의 극치 ‘희방폭포’, 고색창연한 ‘희방사’

숨겨진보물을 찾아서[32] ‘장엄과 신비의 극치 ‘희방폭포’, 고색창연한 ‘희방사’ 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小白山探勝記) ③ 소백산탐승기 풍기지국-송지향 깊은 산곡 울리며 쾅쾅 떨어지는 희방폭포 소리 온몸에 소름 폭포 옆 백인단애(백길 벼랑)를 등반(登攀)하여 희방사에 도달 희방사 소장 훈민정음, 월인천강곡 판본·경판은 이 절의 보물 유계일기(영주문화유산보존회, 2016) 서문(序文)을 쓴 금장태(琴章泰) 서울대 명예교수는 “1990년 가을 학생들을 인솔하여 경북지역 답사를 가는 길에 학생들에게 선생의 높은 인품과 식견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금계동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난 선생은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물 흐르듯 설명하실 때 그 해박함과 자상함에 학생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며 “..

웅대 숭엄한 ‘도솔봉’·1940년 개척한 ‘수철-희방 차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31] 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小白山探勝記) ② 도솔봉에서 내려다 본 만학천봉(萬壑千峰 현재모습 도솔정상 산신당에 안개자욱, 만학천봉 내려다보며 벤또 헤쳐 점심 불그레한 금빛노을 보며 죽령에 도착, 여사(旅舍)에 행장 풀고 1박 도솔정상-밀림지대-면양목장-죽령1박-신작로-수철리-차도-희방계곡 지난호에 나간 ‘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를 읽고, 시인이며 안동문화원향토사연구위원·문화원부원장인 정광영 선생이 짧은 글을 보내왔다. “송지향 선생은 영주 출신이지만 안동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늘 한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자주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단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동에는 조선 중기에 발간한 『영가지』와 『선성지』가 있지만 당시의 생활상을 아는 데는 늘 부족함을 느꼈는데, 1983년 송..

1940년 송지향이 본 소백산 도솔봉은 숭엄하고 신비롭다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보물을 찾아서[30] 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小白山探勝記) ① 턱미테서 본 도솔봉 정상(현재) 1940년 6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 동안 소백산 탐승기 “소백산은 천혜의 성산(聖山)인 동시에 장엄과 신비의 극치” 풍기-전구-옥동-송림-별유천지-10리반석-도솔봉 정상 도착 유계 송지향 선생 생전 모습 송지향은? 송지향(宋志香. 礪山人, 1918-2004, 호:幽溪)은 평북 박천 종달골 출신으로 1929년 12살 때 풍기로 옮겨 금계리에 정착했다. 1940년 조선일보 풍기지국을 운영할 때 ‘무슨 답사기’ ‘무슨 탐방기’ 등 다른 신문지국이 못하는 특종기사를 해서 송지향에 대한 인식이 차츰 달라지고 구독자도 늘어났다. 23살 청년 송지향은 탐사대(9명)를 조직하여 1940년 6..

장수 갈산 돌마람(石宗) 마을, ‘의산서원’에 숨겨진 보물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9] 장수면 갈산1리‘의산서원’ 의산서원 전경 영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석 담장, 오래된 건물·서책들 수두룩 후손들 정성으로 서원 이전(성곡-갈산), 도기념물(172호) 지정 400년 이어온 제향과 효(孝), 후손들에 전하려는 노력 돋보여 경상북도 기념물 ‘의산서원’ 의산서원(義山書院)은 장수면 갈산1리 속칭 돌마람(石宗) 마을에 있다. 돌 석(石)자에서 ‘돌’ 자를 따고 마루 종(宗)자에서 ‘마루’를 따 ‘돌마루’라 부르다가 지금은 ‘돌마람’이라 부른다. 중앙고속도로 영주IC(장수) 사거리에서 용암산-성곡 방향 3.6km 지점에 있는 의산서원은 의병대장으로 명성을 날린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을 모신 서원이다. 마을 앞 도로변에 성오당 선생의 충효 정신을 기리는 벽화가 있다..

조선 왕릉에 준하는 류빈(柳濱)의 묘(墓) 종릉(鍾陵)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8] 문수면 승문1리 버드내 마을 ‘종릉’ 류빈은 태종(이방원)의 동갑계원으로 절친, 지영주사 하륜의 생질 세종 명으로 한양-영주 관군이 운구, 임금 예우로 ‘종릉’ 하사 조선 왕릉에 준하는 석실·팔각묘, 류빈 후손 문과급제자만 80명 종릉의 주인 류빈(柳濱) 종릉은 문수면 승문1리 버드내(柳川, 종릉로 258) 마을 동녘에 있다. 마을에서 종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두 개 표석이 있는데 하나는 종릉(鍾陵), 또 하나는 류릉(柳陵)이라고 새겼다. 마을에서 종릉까지는 약 500m쯤 된다. 또 이곳에는 문수면 만방리 ‘종릉’ 마을과 승문리 ‘버드내’ 마을이 있다. 둘 다 류빈의 묘와 종릉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류빈(柳濱, 1370-1448)은 본관이 전주(全州)다. ..

단종절신(端宗節臣) 삼대(三代) 추모지소 삼절당(三節堂)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7] 단산면 사천2리 띄기마을 ‘삼절당’ 삼절당(三節堂) 허방, 허윤공, 허지의 위패를 모신 제실 ‘선비에게 길을 묻다’에 출연한 허정진 회장이 허윤공 할아버지의 시를 읊조리는 모습 띄기마을 소재 양천허씨 낭천종 종택 마루에 걸린 가훈 효절(孝節) 삼절당은 단종절신 허방-허윤공-허지 삼대의 위패를 모신 곳 허방은 단종을 끝까지 모시다 3년상을 치루고 장릉 인근에 은둔 허윤공은 금성대군을 도와 단종과의 밀지를 전하고 격문을 초하다 허지는 벼슬을 버리고 영월로 가던 중 병을 얻어 숨을 거두었다 단산면 사천리 ‘삼절당’ 삼절당은 단종절신 현감(縣監) 허방(許邦)과 그의 아들 판관(判官) 허윤공(許允恭) 그리고 손자 현감 허지(許智)의 절의(節義)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 ..

정도전이 아버지 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하던 터’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6] 이산면 신암리 ‘정도전의 시묘살이 터’ 정도전의 ‘시묘살이하던 터’ 전경 정운경의 묘(정경부인 영주우씨와 합장) ‘시묘살이 터’에서 바라본 ‘정운경의 묘’ 구산(龜山) 아래 정도전이 살던 고택(삼판서고택) 문천서당(文川書堂), 정도전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해 1926년 후손들이 세움 모현사(慕賢祠), 정운경, 정도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봉화정씨추원제단비 1366년 정월 부친상, 12월 모친상으로 영주서 5년 시묘살이 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남방학사 길러내 정몽주, 정도전에게 ‘맹자’ 선물하고 우정의 편지 주고받기도 영주가 배출한 삼봉 정도전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영주가 배출해낸 걸출한 인물 가운데 단연 대표적인..

삼국시대 사람들이 무덤 속에 그린 ‘고분벽화 5폭’ 감상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5] 순흥면 읍내리 ‘영주 순흥벽화고분’ 소백산맥 비봉산 서남방 주능선 구릉 경사면 해발 430m에 위치 돌을 다듬어 벽돌을 쌓아 방을 만들고 덮개돌을 덮고 봉분을 쌓음 무덤방 벽에 그린 벽화 5폭 통해 본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 내세관 고분벽화(비봉산 중턱) 벽화고분 전시관 발견 당시(벌목 전) 벽화고분 발굴 당시 벽화고분 영주 순흥 벽화고분 위치 영주 순흥 벽화고분(이하 벽화고분)은 소백산의 한 줄기인 비봉산(飛鳳山) 정상에서 서남방으로 뻗어 내린 주능선 구릉의 경사면 해발 430m에 위치한다. 이 벽화고분은 돌을 다듬어 지상에 무덤방(墓室)을 만든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무덤 남쪽에서 무덤방(널방)으로 드나드는 널길(羨道)이 나 있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한국 천주교 창립의 밀알이 된 최초 수덕자 「홍유한 선생」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4] 단산면 구구3리(배나무실) ‘홍유한 선생 유적지’ 1726년 서울 아현동 출생, 1758-1775 충청 예산에서 천주교 서적 탐독 1775년 순흥부 동쪽 10리 구고리(배나무실)에서 ‘칠극’에 의한 수계생활 1785년 향년 60세 일기로 선종, 순흥부 동쪽 문수산 자락 우곡에 안장 홍유한 유적지 전경(단산면 구구3리) 홍유한 선생 동상(봉화 우곡성지) 홍유한 선생 유적비와 유택지(구구3리) 홍유한의 조부 홍중명의 정려문(구구3리) 홍유한 선생 유적비와 유택지(구구3리) 홍유한 선생의 묘(봉화 우곡성지) 봉화 우곡성지 전경 단산면 구구리 홍유한 선생 유적지 영주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 방향으로 향한다. 귀내-장수고개-피끝-조개섬-사천(새내)을 지나..

전국 최초 여성 새마을지도자 ‘정명규 여사’의 「성공사례문」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23] 1976년 대전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서 성공사례발표 잘살아 보기 위해 10년 작정 장성광산에서 열심 일하고 저축 도박과 술타령 몰아내고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1976년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 성공사례발표문(영주문화원 소장) 어머니회원들이 ‘마을 안길 넓히기’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영주문화원 주최 ‘영주 근현대사 기록물전시회’에 나온 정명규 여사 기록물들 1973년 풀베기대회 참가모습 1974년 7월 9일 매일신문, 「마을회관 건립한 어머니회」 기사 1976년 대전에서 열린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명규 여사가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정명규 여사 가흥1리 한정마을 정명규 여사의 ‘새마을운동 성공사례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