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 72

소수서원의 자료정리 성과ㆍ현황ㆍ과제(2021)

소수서원의 자료정리 성과ㆍ현황ㆍ과제 박성진추천 0조회 8312.06.18 15:39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소수서원의 자료정리 성과ㆍ현황ㆍ과제 이 광 우 (영남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1. 소수서원의 연혁 개략 紹修書院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安珦․安軸․安輔․周世鵬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국왕이 이름을 지어 내린 賜額書院이다. 소수서원이 건립되던 시기는 官學이었던 鄕校가 교육기관으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향교의 기능을 보완하고자 지역의 재지사족들에 의해 대체 교육기관이 건립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서원이었으며, 소수서원은 이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것이다. 소..

공주 숙모전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입구에 들어서면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절에서 보니 의아하다. 홍살문은 향교나 관아 입구에서 보는 유교의 문화유적인데, 왜 절 안에 자리잡은 것일까? 동학사 내에 옛 시대의 충신을 기리는 동계사, 삼은각, 숙모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 3사는 유교식 사당이 맞다. 그것도 아주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먼저 동계사(東鷄祠)는 신라 눌지왕 때 왜국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몰래 구출해내고 회유와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한 충신 박제상을 모신 곳이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건립했다고 전한다. 삼은각(三隱閣)은 고려 말기의 충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가 망하고 3년 후인 1394년, 길재가 동학사의 스님들과 함께 절 옆에 단을 쌓고 스승 정몽..

민족혼/민족혼 2021.04.27

[스크랩] 4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영주의 모습(귀한 것임)

해방 직후의 도화동과 현재의 제일고등학교의 모습. 신작로의 포플러 가로수가 풍기를 향해 늘어서 있다. 가흥2동 동네가 전부 논밭이었다. 산은 모두 민둥산이다. 60년대 초반의 가학루 모습. 구성공원의 옛 충혼탑 앞에서 내려다보는 옛 영주의 모습.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으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