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 탐방[17] 봉현면 두산1리(주치골)

단산사람 2014. 7. 27. 18:33

산림치유의 전원마을 ‘주치골’이 뜬다
우리마을탐방[17] 봉현면 두산1리
[478호] 2014년 07월 03일 (목) 16:56:53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 주치골 마을 전경

남사고의 ‘사고막재’, 겸암 선생 ‘느티나무’ 전설
고령친화적 농촌마을로 탈바꿈

봉현면 두산1리 가는길
영주시내에서 죽령방향 자동차 전용도로를 탄다. 안정, 풍기를 통과해 백리교차로에서 우측 풍기방향으로 내린다. 360도 우회전해 남원 쪽으로 100여m 쯤 가서 풍기1교를 건너면 우측에 두산3리 표석이 보인다. 우회전해 자동차전용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두산3리 지경터 마을이 나타난다. 꺼치네와 홍정골을 좌측 멀리 바라보면서 두산교를 건너면 소미마을이다.

옛 봉현서부초등학교 앞을 지나 중앙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두산2리(수용골, 소미)가 나온다. 수용골 입구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두산1리 주치골이 보인다. 마을 앞에 큰 느티나무 여덟 그루가 큰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숲 속에 성황당이 있다. 주치골 마을은 비스듬한 오르막길 좌우에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 큰 돌에 ‘斗山一里 사과향기 그윽한 내고향 주치골’이라고 새겨져 있다.

지난달 27일 오전 산림치유의 전원마을 주치골에 갔다. 마을 전체가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텔링 공사로 분주하다. 마을 중간 쯤 올라갔을 때 마당에서 매실을 추수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 주치골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 주치골표석
   
▲ 사고막재

주치골이란?
두산1리는 주치골 단일마을이다. 이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약 450여년 전 조선 명종(1543-1567) 때 ‘남사고(풍수학자)’란 도사가 뒷 산목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사고막재’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어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막재는 치유단지 핵심 공사 현장인 골짜기 안쪽(고루목재에서 묘적령 방향)에 있으며 1950년대까지 사인암, 상선암 등 인근 산간 사람들이 풍기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라 한다.

주치골(朱致谷)이라는 지명에 대한 기록도 찾을 길이 없다. 영주시사에 보면 이곳에서 두류(豆類, 콩류)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여 두치(豆致) 또는 두치(斗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한약재로 쓰이는 주치가 많이 난다고 하여 주치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주치’는 지치의 이명으로, 한방에서는 자초(紫草)라고 한다. ‘본초강목’과 ‘탕액본초’ ‘동의보감’ 등 의학서에 수록된 주치의 약효는 다음과 같다. 주치는 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천삼(天蔘), 선인초(仙人草), 자초(紫草), 등으로 불리고 강장, 해독 및 항균, 항염증, 종창, 화상, 습진 등에 특효하고 최근에는 항암치료제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주치골은 치유단지와 일맥상통하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구한말 이 지역명이 풍기군 와룡면 두치동(斗致洞)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영주군 봉현면 두산동이라 칭하게 됐다.

   
▲ 느티나무
   
▲ 성황당

느티나무와 성황당

       
▲ 김춘식 씨

마을 앞 도로변에 여덟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 성황당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200년으로 되어 있으나 마을 사람들은 500년이 넘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춘식(61)씨는 “어릴 적 이 느티나무는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모내기 할 때는 점심 먹고 새참 먹는 자리였다”고 했다.

       
▲ 조삼식 선생

마을 원로 조삼식(82) 선생은 이 느티나무의 내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겸암 류운용(서애 류성용의 형) 선생이 임진왜란 때 노모(老母)를 모시고 가솔 100여명과 함께 모시골로 피난을 갔다. 노모를 모시고 갔다하여 모시골이라 부르며, 모시골에는 당시 피난처 겸암굴이 있다. 모시골은 당시 풍기군 상리면이었으나 지금은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이다.

당시 겸암 선생은 피난처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주치골을 둘러보고는 “마을 앞에 나무를 심어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실제 겸암 류운용 선생은 풍기군수로 재임(1593)시 소수서원에 연못을 파고(탁영지) 대(탁영대)를 쌓았으며 험준한 산악에서 혼란기(임진왜란)를 틈타 발호한 도적들을 제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성황당은 느티나무 숲 속에 있다. 제관은 생기를 맞추어 선출하고 정월 14일 자정을 기하여 고사를 올린다. 당집은 근년에 단칸 규모로 건립했고 내부 뒷벽 신단에는 위패 두 위가 모셔져 있다. 위패는 우측에 ‘산신대왕지신위(山神大王之神位)’ 좌측에 ‘성황대왕지신위(城隍大王之神位)’라고 나무판자에 적혀 있다.

   
▲ 주치골 골목길

제2의 새마을 운동이란?
주치골 사람들은 ‘세계 제1의 마을을 만든다’란 목표를 세우고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경상북도와 영주시는 주치골 마을에 총사업비 37억원을 투입해 고령친화적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이 사업은 빈집과 사용하지 않는 부속건물을 일제히 정비하고 석면슬레이트 지붕 철거, 벽체 에너지 효율화 개보수, 담장정비, 소공원 조성, 마을 광장 신설 등 마을 경관을 정비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대해 이성우 이장은 “마을회관을 공동생활 사용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첨단 건축기술과 전통 건축방식이 융합된 디자인이 선보일 예정이며 할아버지방, 할머니방, 공동생활 공간으로 신축될 계획”이라고 했다.

이 마을 조삼식 원로는 “우리 주치골은 세계 제1의 전원마을이 될 것”이라며 엄지 손각락을 치켜 올렸다. 그는 또 “개인생활이 가능한 원룸형태의 공동생활홈(그룹홈)을 조성해 의료·복지까지 연계하는 고령 친화적 치유의 마을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산림치유단지 공사현장

백두대간 산림치유단지 공사 한창
백두대간산림치유단지는 봉현면 두산1리 옥녀봉일원에 총사업비 1천 312억원의 국비를 들여 우리나라 최초로 산림치유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3년 5월 기공식 이후 건축공사가 본격 추진돼 2015년에 공사가 완료되고, 2016년 개원할 예정이다. 주요시설로는 건강증진센터, 수치유센터, 산림치유마을, 치유숲길, 연구센터 등이 조성된다.

       
▲ 김이한 전 이장

학교 운동장 150개 면적으로 조성되는 중심시설지구에는 이용자의 현재 상태를 검진하고 치유하는 건강증진센터와 물을 통한 심신의 치유 효과를 목적으로 자연치유기능을 극대화한 수치유센터, 장·단기 체류 요양시설인 산림치유마을이 있다.

이 마을 김이한(62)전 이장은 “본 사업은 지역 주민과 상생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우리 주치골도 명품 치유의 마을이 될 것으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 강말숙 씨

 

100% 사과 생산 마을
뒷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은 사과밭 속에 잠겨 있다.

옛 집터에 현대식 집을 짓고 있는 강말숙(61)씨는 “새마을시대에 개량한 기와집에서 살다가 양옥으로 개조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100% 사과 농사만 짓는다”고 했다.

 

   
▲ 임병임 할머니
       
▲ 권을희 할머니

임병임(86)·권을희(79) 할머니는 “60년 전 마을 모습은 모두 초가집이었고 박 대통령 때 슬레이트집으로 개량했다가 지금은 지붕이 뽀족한 집으로 변했다”고 했다.

       
▲ 권순녀 씨

헌집을 뜯고 새집을 짓느라 현재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는 권순녀(59)씨는 “마을 앞 사과밭이 전에는 모두 논이었는데 지금은 논은 하나도 없고 모두 사과밭으로 변했다. 옛날에 주치가 많아 주치골이 되었다는데 지금은 주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 권정자 씨

봉화 범들이가 친정인 권정자(76)씨는 “예전에는 이 마을에 80여호에 400여명이 살면서 북적였으나 지금은 36호에 80여명이 살고 있다. 옛날에 짓던 감자, 옥수수, 조, 콩 등 밭농사는 싹 없어졌다”고 했다.

       
▲ 이정희 할머니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14살에 시집와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정희(91)할머니는 “빨리 새 집이 완공돼 새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했다.

 

 

   
▲ 매실 수확

이원식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