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소백산 이야기

2013년 9월 답사/죽령산신당(다자구할머니)

단산사람 2013. 9. 28. 21:23

죽령산신당의 역사

죽령산신당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世宗) 19년 3월 계묘

(癸卯)에 “단양군의 죽령산은 소사이고 묘의 위판은 죽령산지신이라

쓰고 위의 제사지내는 곳은 선덕 7년의 수교에 의해 죽령산 기슭으로

옮길 것(丹陽郡竹嶺山小祀 廟位版 書竹嶺山之神 右祭所 依宣德七年受敎

移竹嶺山麓)”이라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 사전체계의

정비와 더불어 제장(祭場)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제장의 이동은 세종 연간에 추진된 사전(祀典)의 등제 및

신호(神號)의 개혁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국가의 사전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죽령산이 국행의례로서

소사(小祀)로 등재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 산 정상에 있던 제당이

산 중턱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후 죽령산신당의 중수(重修)에 대한 내용은 죽령산신제 문서

치성문(致誠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치성문 가운데

「죽령사 중수재건기(竹嶺祠 重修再建記)」의 해당내용을 보면

“本竹嶺山神堂祠宇 幾函轉覆之境 而是歲春三月 重修再建竣工

檀紀四二八一年戊子三月 都監白”이라 하여 1948년 3월에 중수

되었음이 확인된다.
한편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 3리에 위치한 죽령산신당

상량문은 “檀紀四二八一年 戊子三月初八日未時 上樑伏願基壽永昌”

으로 기록되어 있어, 1948년의 중수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주요 내용

죽령산신당은 해발 400m의 용부원 3리 앞 당산 정상에 위치하며,

당의 주변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둘러싸고 있다.

죽령산신제의 제사대상은 죽령산신으로, 그 신격(神格)은

다자구할머니이다.

용부원리 죽령산신당 내부에는 ‘죽령산신지위(竹嶺山神之位)’라

적은 위패를 모셔 두고 있다.
현재 죽령산신당은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 뒷면 통칸의 규모이며,

평면은 장방형으로 전퇴집의 형식이다.

기둥은 나무로 만든 원기둥이다. 지붕은 조선시대 권위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팔작지붕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산신당의 내부는 단을 설치하여 죽령산신당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천장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처마와 기둥 등의 단청은 가칠단청으로, 무늬 없이 단색으로 칠한

단청이다. 주로 수직부재인 기둥이나 동자주 등은 붉은색, 나머지는

옥색으로 칠했다. 당의 앞마당은 자연석을 넓적하게 다듬어 깔아

정비하였다.
무속인들이 출입하여 당 주변에서 기도하는 경우가 있어 당 외부에

울타리를 치고 당의 출입문에도 열쇠를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죽령산신당은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텃골 남쪽에 다자구 할머니의 산신당이 있다.

이 산신당에는 다자구 할머니가 죽어서 죽령의 산신이 되었으므로

이를 모셔 제사를 모시는 죽령 수호의 산신당인 것이다.

또 이 산신당을 죽령 산신당, 국사당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인조원년에

단양, 영춘, 풍기의 세 고을 군수가 신당을 짓고 매년 춘추로 제사를

지냈는데 군수가 제주가 되는 관행제로 행해졌다.

그러다 단양, 영춘이 합군이 된 후로는 주민이 주로 되어 산신제를 지냈으며,

현재도 군수가 죽 령산신제에는 꼭 참석하고 있다. 옛날에는 단양군 대강면

에서 경상도 풍기로 넘어가는 죽령고개는 험하기도 하였거니와 도둑떼들

이 들끓어 지나가는 행인을 괴롭혀 왔다. 처음에는 밤에만 나타나던 도둑들이

대낮에도 나타나 행패가 심하여지자 관가에서는 군졸들을 풀 어 도둑들을

잡으려 했으나 도둑들은 험한 산세를 이용해 피하였으므로 도둑 잡기가

몹시 힘들 었다.

그런데 도둑들에게 가산을 몽땅 빼앗긴 할머니 한사람이 관가에 찾아와

도둑 잡기를 자청 하였 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도둑을 잡겠다고 함으로

관원은 의아해 하며 할머니가 어떻게 도둑을 잡겠다 는 것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자기가 도둑 떼 속에 들어가있을테니 군졸들을 죽령고개 일대에

숨겨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 다자구야 자자구야 하고 소리를 내면

도둑들이 다 잠을 자고 있으니 급히 잡으러 오면 되는것이고 들(덜)자구야

들(덜)자구야] 하거든 도둑들이 잠을 자지 않고 있는 것이니 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 약속을 한 할머니는 곧 죽령고개르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목청을 돋구어 [ 다자구야 들자구야 ] 가락을 붙여 소리 높이 외치며

도둑들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숲 속에 숨어 살던 도둑은 매일같이 노래 부르며 고개를 오르내리는 할머니를

수상히 여겨 할머 니를 잡고는 그 까닭을 물었다.

할머니는 다자구 들자구는 아들들의 이름인데 얼마전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아직 돌아오지 않아 호환이나 당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어 찾으로 나온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두 아들들이 없으면 자기는 올데 갈데 없다고 했다.

도둑들은 할머니에게 자기네를 따라와서 밥짓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좋다고 말하고서 도둑들을 따라 갔으며 함께 살며 밥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관군을 불러 도둑 잡는 좋은 기회를 엿 보았으나

여간해 그런 기회가 오질 않아 밤마 다 [ 들자구야 들자구야 ]를 노래처럼

부르기만 했다. 그러다 하루는 두목의 생일이 되었다. 도둑들은 대낮부터

실컷 술을 마시고 한밤이 되면서 모두 잠에 골아 떨어지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 다자꾸야 다자꾸야 ] 하고 노래로서 외쳤다.

숨어 있던 관군은 이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가 도둑들을 모두 잡아 버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다자구 할미라 부르고 다자구 할미가 죽어서 죽령산신이

됐다고 믿고 있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언제가면 잡나이까
들자구야 들자구야
지금오면 안됩니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소리칠 기다리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그때와서 잡으라소

 

 

 

 

 

 

 

 

 

 

 

 

 

 

 

 

 

 

 

 

 

 

 

좋은 소식 GNπ http://blog.daum.net/lwss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