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사진이야기

상주 공검지로 더위사냥 가다.

단산사람 2012. 8. 21. 22:53

  풍기문화의집 사진강좌(시민문화예술교육)  상주 공검지 출사 이야기다.

2012.8.6(월) 09:00 영주시민회관에서 모여 상주로 출발했다.

운전기사는 최교수님이 하게 됐고 기사께서 교수도 하면서 예천-문경-함창

-공검지에 도착했다. 10:30분 공검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문을 열고 내리니

찜질방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40도가 넘는 것 같았다.  

공검지가 내뿜는 습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최교수님의 안내로 공검지 안쪽 도로로 들어가 촬영장소로 갔다.

촬영에 관한 지도와 주의 말씀이 있은 후 개별 촬영에 들어갔다.

최교수님은 낫 등 장비를 준비해 가지고 가셔서 이 곳 저 곳 다니며

회원들이 촬영을 잘 할 수 있도록  촬영장소를 만들어 주셨다.

최교수님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 속으로 또 한 번 경의를 드린다.

연꽃을 보며 촬영에 집중하다보니 더위는 물러가고 연꽃만 보인다.

연꽃길 따라 올라가다가 U턴하여 내려오니 또다른 모양과 색깔의

연꽃을 만나게 되고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의 모습도 각각 다르다.

이 모양 저 모양을 보고 찍고 또 찍는다.

'이왕 더워진거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구!!!'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방향을 잡아 공검지를 한 바퀴돌고 이 곳 저 곳 찍다보니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고 이마의 땀이 낙수되어 가슴으로 줄줄 흐른다.

공검지 둑에 올라 전경을 찍고 11:40분경 김천 방향으로 지나가는 기차도

찍었다.

 

촬영을 마무리하고 버스정류장 슈퍼로 갔다.

슈퍼 안은 달콤한 시원함이다. 땀을 식히며 아이스케익를 한 개씩 먹었다. 

참 좋다  흐흐

그리고 공검지 짜장면집에서 시원한 냉콩국수를 한그릇 먹고 영주로 향했다.

더위 사냥을 확실히 하고 온 공검지 출사였다.        

      

 

 

 

공검지는 경북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로

공갈 못 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명종25(1195)에 상주사록 최정분이

예로부터 있었던 제방을 그대로 수축했다고 하며 제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860보와 800이며 저수지의 둘레는 약 5km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 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공검지 라는 이름은 제방을 쌓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옛 부터 연꽃이 유명하여 연꽃에 얽힌 민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삼한시대부터 저수지로 이용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메워져 촌락과 농경지로

개답되었으며 현재는 수리시설 기능을 상실한 채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공검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보호 논 습지로 지정된 곳이다.

 

 

 

공검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로 공갈 못 이라고도

하는데 1195(고려 명종 25) 상주사록 최정분이 예로부터 있었던 제방을

그대로 수축했다고 한다

 

 

공검지는 제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860보와 800보이며, 저수지의 둘레는

16,647(5km) 였다고 하며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 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공검지의 제방은 토사(土砂)를 판축(板築)하여 단면이 사다리꼴이 되도록

쌓았으며 판축방법은 토성(土城)을 쌓는 방법을 이용했으나, 물의 압력에 잘

견디도록 밑 부분을 넓게 했다.

 

 

 

공검지의 재료는 작은 자갈과 진흙을 다져서 사용하고, 각각의 재료 사이에

빈틈을 없앰으로써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였는데 홍귀달이 쓴 공검지기에

의하면 공검지라는 이름은 제방을 쌓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한다

 

 

공검지는 예로부터 연꽃이 유명하여 연꽃에 얽힌 민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삼한시대부터 저수지로 이용되었으나 거의 메워져 촌락과 농경지로

개답되었다.

 

 

공검지는 현재 만수시 약 3,306정도의 규모만이 남아 있어 수리시설 기능을

상실한 채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상주 공갈 못은 의림지 벽골제와 같은 시대인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로 역대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길이 없고, 고려 명종

때 최 정빈이란 분이 고쳐 쌓았는데 못 둑의 길이가 86십 보이고,

주위의 길이가 1664십칠 척 이라 상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공검지는 이 못에 물이 차면 수심이 다섯 길이나 되었고, 서쪽 못 가로는 연꽃이

만발하는데 그 절경을 중국의 전당 호에 비길 정도라 한다.

 

 

공검지는 전설에 의하면 이 못의 얼음 어는 것을 보고 흉년, 풍년을 예측하였다고

하며 또 정월 열 나흗날 밤, 소들이 땀을 흘리는데 그것은 밤을 이용하여

소들이 못에 얼음을 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공검지는 또 경주 용담의 암용이 공갈 못 숫 용에게 시집온 이야기도 있고

또 볶은 콩 서 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못 가를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는 말도 전해져 오고 있다.

 

 

 

공검지는 속설에 "저승에 가도 공갈 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는데 함창 읍지에는 이 못의 서반에는 몇 리에 걸쳐 연꽃이 피어

있으며 마치 중국의 전당 호를 방불케 하는 풍취를 지녔다고 하여

그 아름다움과 연꽃의 풍광을 말하여 주고 있다.

 

 

공검지는 이 못의 이름이 공갈 못이라 부르게 된 것은 못 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 설화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하며 주민들은 이 못을 신령스러운 영지로 신앙하여 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공검지가 이제는 이와 같은 전설과 연밥 따는 노래가 공갈 못을 상기시켜 줄 뿐

못은 논으로 변하여 그 모습과 풍광을 찾을 길이 없으나 다만 옛 못을 알려주는

비석이 옛 못 둑에 외롭게 서서 이곳을 지켜주고 있다.

 

 

 

공갈 못에는 연밥 따는 노래가 구전되고 있는데 이 노래는 공갈 못을 배경으로

발생된 민간 노래로 가사의 내용은 연정, 사친, 호련 등 이다.

 

 

채련요라는 노래는 상주, 함창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서 전승 보존되는

이 지방 특유의 무형 문화재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한다. 

 

 공검지에는 연꽃으로 유명하여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질 정도라고 하는데 입구쪽으로는 배력이심겨져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붉은색의 연꽃이 숨어 있다.

 

 

 

공검지에는 채련요 라고 하는 공갈못 연밥따는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고 있다. 

 

 더위 사냥중 잠시 땀을 식히는 시간 

 

 

 

채련요

상주 함창 공갈 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 줄께 이내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줌세  백년 언약  맺어주소

백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을랑 내 따 주께  세간살이 내랑하소

세간살이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줌세  우리부모 섬겨주소

부모섬김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공검지는 연꽃이 풍성하여 꽃이 만발하면 중국의 전당호(서호)와 견줄 만하다고

하였는데 고려 명종 대에 공검지를 중수(1195)한 이후에 애창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상주 민요 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채련요공검지의

연밥을 수확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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