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 사당 · 의소세손 태실이 있는 마을 ‘아랫귀내’ | ||||||||||||||||||||||||||||||||||||||||||||||||||||||||||||||||||||||||||||||||||||||||||||||||||||||||||||
우리마을 탐방[35]고현동 아랫귀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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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동 아랫귀내 가는 길 여기서 우측으로 약 100m 쯤 가면 가흥정수장이 나오고 이어서 철도건널목을 건넌다. 여기서부터 고현동 ‘아랫귀내’다. 소나무 빼곡한 산줄기가 두 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 안고 있어 아득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마을이다. 집들은 산자락을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았고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새마, 귀내보트장, 귀내본마, 사당마, 태봉마 등 산줄기와 언덕을 경계로 마을 이름이 구분된다.
마을의 유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괴(槐)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괴천(槐川)’ 또는 ‘괴내’ 라 부르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라고 해서 옛 고(古)자에 내 천(川)자를 써서 ‘고천(古川)’ 또는 ‘고내’라고 부르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귀내’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현동의 유래는 이렇다. 귀내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1.2 km 쯤 가면 ‘장수고개’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에 소금장수와 생선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산고개를 넘나들었다고 하여 장수 상(商)자에 고개 현(峴)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상현(商峴) 또는 ‘장수고개’라 불러왔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고천(古川)의 고(古)자와 상현(商峴)의 현(峴)자를 따서 ‘고현(古峴)’이라 했다고 한다. 서천의 발원지 귀내 귀내에서 발원한 서천은 구성산을 굽이돌아 휴천으로 흘러가다가 무섬마을에서 동천(내성천)을 만나 내성천이란 이름으로 흘러가서 낙동강에 합류된다.
100년 전에 지은 한옥이 허물어지는 바람에 30년 전 2층 슬라브집을 지었다고 한다. 사당과 육우당(정자)은 한옥이다. 박찬우 종손은 “국내외 사학자·교수들이 이곳을 많이 방문하고 있는데 종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며 “한옥 종택으로 재 건립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이 봉을 ‘태봉’이라 부른다. 이 태봉은 영조대왕의 왕세손의 태실이다.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소생 의소세손[懿昭世孫, 휘(諱) 정]의 태실인 것으로 2008년 확인됐다. 의소세손은 영조 26년(1750)년에 태어나 1751년 세손에 책봉되었으나 1752년 요절했다. 이 곳에 있던 태와 태비는 일제가 조선 왕실의 기운을 꺾으려고 서삼릉(경기 고양)으로 옮겨 갔으며 현재 태석(태봉의 정상)만 노출 된 상태로 남아 있어 흙을 덮어 두었다. 서삼릉 태실출토 태지명문에 의하면 의소세손의 태는 영조 26(1750)년 8월 17일 탄생하였으며 12월 25일 태를 영천(영주)에 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연못도 축소되고 보트 타는 사람도 없어 지금은 매운탕식당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귀내보트장 새 주인 고상민(46) 씨는 “못 둘레를 공원으로 꾸며 캠핑장을 만들고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준비 중”이라며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시설을 완비하여 옛 명성을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핑구재 전설
“시내지역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은 우리마을 뿐”이라며 “우리마을은 정월대보름날 자시(子時)에 동소나무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했다. 정초에 제관을 정하고 도가를 정해 정성껏 장만한 제수로 동제를 올린다고 한다. 갑오년(2014) 동신제 제관과 집사는 다음과 같다. 제관 공동석, 축관 박동서, 도감 박남댁·감호댁, 건립 권재현·이동욱·황진오·편창호 등이다. 이튿날은 음복을 나누고 윷을 논다.
아랫귀내 사람들
이 마을 임매희(64)씨는 “우리 마을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선비술이 있다. 노란빛이 아름다운 ‘오정주’는 솔잎, 구기자, 천문동, 백출, 황정 등이 골고루 들어가 몸의 기운을 북돋우는 영주 대표 술”이라고 했다. 권영동 통장은 “우리마을에는 억대 선진농업경영인이 두 사람 있다. 박동서(60대)씨는 대농으로, 박찬웅(50대)씨는 약용버섯재배로 억대 수익을 올리는 농가”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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