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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 [34]이산면 지동2리 이르실

단산사람 2014. 11. 30. 17:59

바람이 좋은 마을 지동2리 ‘이르실’
우리마을 탐방 [34]이산면 지동2리
[496호] 2014년 11월 14일 (금) 11:00:32 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이르실 전경
500년 역사 간직한 옥천전씨 집성촌
일민(逸民)의 삶을 산 선비들 흔적 남아있어

이산면 지동2리 이르실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이산로를 따라 이산면 방향으로 향한다. 영주고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하여 이산면사무소, 흑석사고개, 이산초등학교를 지나 석포교를 건넌다. 석포1리 우체국 앞을 지나 봉화방향으로 향하면 냇가에 등굽은 늙은 버드나무숲이 옛 정취를 자아낸다. 조금 더 올라가면 장수골 버스승강장이 나오고 그 뒷쪽으로 제법 넓은 들판이 있다.

   
▲ 발효식품 체험장
여기를 맷돌배미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논이지만 옛 이르실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현재 이르실(지동2리)은 경로당을 중심으로 무수촌이 있는 음지마와 맞은편에 있는 양지마, 경로당 가기 전에 있는 아랫마, 경로당 뒷쪽 골짜기에 있는 갈밭골, 봉화방향 위쪽에 있는 왕밭골 등 작은 마을 다섯 개를 통틀어 ‘이르실’이라고 한다.

지난 3일 오전 노란은행잎이 길에 곱게 내려앉은 날 이르실에 가서 송유익 이장, 전우덕 옥천전씨 후손, 김제구 노인회장, 전용구 우엄고택 종손 등과 이르실 500년 역사를 더듬어보고 이르실 옛터도 둘러봤다.

   
▲ 대암정사
이르실의 유래
이르실은 옥천전씨가 500년동안 세거해 온 집성촌으로 유서 깊고 오랜 마을이다. 이 마을 전우덕(83) 씨는 “지금부터 500여 년 전인 1450년 경 태허(太虛) 주(宙) 선조께서 마을을 개척하여 입향조가 됐다”고 하면서 “선조께서는 마을 이름을 이곡(伊谷)이라 했다.

   
▲ 무수촌 된장독
사람들은 저 이(伊)자, 골 곡(谷)자의 뜻을 살려 ‘이르실’이라 했다”고 전했다. 저 이(伊)자의 유래는「尹」은 천하를 다스림이며 「人」을 덧붙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또 신라 때 높은 벼슬 이름에「伊」자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르실 사람들은 「이곡」이란 ‘천하를 다스리는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마을’이란 뜻으로 좋게 해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 씨는 이어서 “태허 선조는 온성부사와 홍원현감을 지냈으며 이곳 맷돌배미(장수골 입구에 있는 들)에 터를 잡아 99칸 기와집을 짓고 영남의 선비들과 교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며 “마을 뒷산을 빈소골이라 하는데 이는 태허 선조 이후 부모상을 당해 3년동안 시묘살이를 하던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전씨는 또 “당시 종가 마당에 있던 맷돌이 들 가운데 있어 맷돌배미라는 지명이 생겼다. 그 맷돌은 30년 전 농지정리를 하면서 제거됐다”고도 했다. 이 후 마을이 번성하여 양지마와 음지마가 생겼고 양지마를 이계(伊溪)라고도 불렀으며 수십 년 전에는 까치골(鵲洞)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

   
▲ 삼효각
칠리정의 내력
무수촌 된장마을 장독대 옆에 칠리정(七里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칠리정은 1546년(명종 1년)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한 칠리(七里) 전응삼(全應參) 선생이 영천 방산에서 살림을 나와 이곳으로 옮긴 후 독서를 하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전응삼은 이곳 이계(伊溪))마을의 입향조이며 호는 칠리(七里)이다. 성균관 생원을 지낸 칠리수(七里수)공은 당시 이기·정순붕 등이 척신과 어울려 국정을 문란케 하자 이에 분개하여 출세를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자적(自適)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 일우정과 연못
연못이 아름다운 일우정
음지마에 있는 일우정(逸愚亭)은 고택과 연못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답사객과 진사들이 줄을 잇는다. 일우정의 주인 전규병(全奎炳, 1840〜1905)은 1866년에 연못을 파고 그 옆에 있는 바위에 ‘일우대(逸愚臺)’라고 새겼다. 그 후 1868년 정자를 짓고 스승인 계당 유주목에게 청하여 정자 이름을 ‘일우정’이라고 지었다.

   
▲ 송유익 이장
일우(逸愚)는 세상을 등지고 편하게 산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우정 안 쪽에 있는 고택이 우엄고택이다.

전규병의 호가 우엄(愚엄)이어서 우엄고택이라 부른다.

고택 안으로 들어서면 우물과 장독대의 어울림이 돋보이고 대문칸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어 이 곳에서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랑채에 있는 방 두 개를 민박으로 사용하고 있어 조선시대 말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 김제구 노인회장
우엄고택의 기적
2014년 2월 방영된 KBS1 TV 인간극장(5부작)은 우엄고택에서 살고 있는 전용구(83) 종손과 아들 준호(58), 며느리 임숙빈(62) 씨 등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화제의 주인공인 임숙빈 씨는 중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11년동안 외국을 넘나들며 사업을 하던 중 폐암말기 판정을 받고 이 곳에 내려왔다.

가족들의 극진한 사랑으로 고택생활 4년만에 암세포가 소멸되고 99% 완치되었다고 하니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임 씨는 “이곳은 천혜의 청정지역으로 자연이 아름답고 조용해서 잠자기 좋은 곳”이라며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낮에는 바람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하루하루의 삶이 새롭고 희망차다는 임 씨는 “내가 살아난 이유는 바람이 좋아서”라고 했다.

   
▲ 전용구 종손
   
▲ 임숙빈 우엄종부
‘이르실’ 찬양 시(詩)

지동2리 마을회관에는 하얀천에 보라색 실로 수놓은 ‘이르실’ 시 액자가 걸려있다.

이 마을 김차교(81, 판교댁) 농부시인이 이르실 마을의 역사와 자연을 노래한 시로 보는 사람마다 감탄과 칭송이 대단하다.

   
▲ 김차교 시인
「오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르실, 대자연을 배경으로 낭만을 벗삼아, 신비로운 느낌을 어이 다 말로하며, 장엄한 이치를 어이 다 글로 쓰리, 우주를 청소하고 해와 달을 다시 씻어, 화려한 금수강산 복지낙원 세워 놓고, 봉황과 춤을 추며 태평세월 살고 지고」

김차교 시인은 62년 전 옥천전씨 이곡파 15대손 전우덕(83) 씨와 결혼하여 60여년 간 이르실에 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미풍양속 등을 시로 써 온 무명의 시인이다.


대암정사와 삼효각
마을 위쪽에 대암정사(大巖精舍)가 있다. 넓은 바위 위에 세워진 이 정자는 전규병의 아들(건석·필석·봉석·윤석) 4형제가 부친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멋스럽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아름답다.

   
▲ 권춘석 어르신
   
▲ 전우덕 선생
맞은편 100여m 떨어진 곳에 삼효각이 있다. 삼효각은 1877년 건석·필석·누이동생 등 3남매가 손가락을 깨물어 입에 피를 넣어 어머니를 소생케 했다는 효행을 담고 있다.

이르실 사람들
이르실은 500년 역사를 간직한 옥천전씨 집성촌이다. 그러나 500년 전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유래와 문헌 속 기록들을 모두 수록했다.

무수촌에 사는 권춘석(85)·채분이(82) 부부는 “우리마을은 축사나 양계장 등 오염원이 전혀 없는 청정마을”이며 “마을 입구에는 300년 묵은 소나무가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 채분이 할머니
   
▲ 서영자 씨
양지마을에 사는 전하웅(65)씨와 서영자(78)씨는 “음지마가 바람이 좋은 마을이라면 양지마는 볕이 좋은 마을”이라며 “우리마을 전우영 선생은 한국 최고의 국화분재 전문가로서 마을이 온통 국화향기로 그윽하다”고 자랑했다.

무수촌 김남순(73)씨는 “선조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음식이 ‘전통발효식품’이었다. 발효식품 전시관이 곧 개관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르실 옛터를 안내해 준 전우덕 어르신은 “옥천전씨 이곡파 종손은 전병준(17대손, 창원)이다. 종중은 선조들의 높은 뜻을 받들어 학문에 힘쓰고 있으며 수기치인의 선비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르실에는 50여 가구에 100여명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 노인들이고 독거 가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