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100년 터전 위에 희망의 100년 기약 | ||||||||||||||||||||||||||||||||||||||||||||||||||||||||||||||||||||||||||||||||||||||||||||||||||||||||||||||||||||||||||||||||||||||||||||||||
[창간13주년 특집] 영주명명 10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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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풍기광복단은 대한광복회로 발전 본지는 영주명명 100주년을 기념해 격동의 ‘영주 100년사’를 돌아보면서 다가올 ‘희망의 100년’을 기약해 본다. 1910년 경술국치(한·일 강제병합) 이후 1914년에 풍기군과 순흥군, 영천군(옛 영주지명)이 하나로 합쳐져 ‘영주군’으로 명명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합 영주군(11개면)으로 개칭 이 당시 면의 통폐합도 이루어져 영천군의 봉향면·망궐면·가흥면이 영주면으로, 두전면·호문면이 장수면으로, 적포면·권선면·진혈면(일부)이 문수면으로, 천상면·진혈면(일부)이 평은면으로, 산이면·어화면·말암면이 이산면으로 통합됐다. 일제는 1919년 각 면에 경찰관 주재소를 설치해 식민 통치 조직을 강화했다.
항일투쟁과 3·1 만세운동 1919년 영주의 3·1만세운동은 3월21일 영주시장(영주초 앞 분수대 인근) 내 쌀시장과 어물시장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있었다. 그 후 4월4일 하리면 운산장터, 4월9일 풍기장터, 4월11일 장수면 호문리에서 전개됐으나 주동자들은 모두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일제의 통치가 강화되는 가운데에도 우리 젊은 청년들은 지역별로 청년단체가 결성돼 학문 증진과 체육발전, 의사교환, 풍속교정 등에 역점을 두고 강습회, 토론회, 야학, 체육대회 등을 열어 민족정신의 맥을 이어나갔다.
강점기 교육과 농민운동 1930년대 경북의 농민수는 전체의 85%였고 영주는 87%가 농민이었다. 당시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농민들로 일제로부터 갖은 억압과 차별을 받고 지주로부터 고율의 소작료를 수탈 당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같은 가난은 197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이 때 농민들은 소작조합을 결성해 착취하는 일제와 싸웠다.
식민 억압의 1930-40년대 일제는 1939년 미곡통제법과 1943년 식량관리령을 공포해 미곡의 공출량을 확대시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는 등 전시 군량미 확보를 위해 온갖 강압적 수단을 동원했다. 이 때 우리 농민들은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가장 잔인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1940년 11월1일 부령 제221호(1940.10.23)로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했다. 1943년 중앙선이 개통돼 철도 인근마을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고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해방 후 정국
북한군은 7월14일 장갑차를 앞세우고 풍기 인근에 진지를 구축했다. 국군과 대치하며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증강된 북한군은 7월17일 야간공격을 감행함에 따라 국군은 영주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고 안동으로 후퇴한다. 7월18일 영주를 완전 점령한 북한군은 이후 계속 남진하게 된다. 전쟁 중 학교는 모두 휴교했지만 일부학교는 피난학교를 운영 하는 등 피난지에서도 학업을 계속했다.6.25 전쟁과 영주
영주 발전의 전기(轉機)마련
한편 대통령령 제6543호(1973.3.12)로 풍기면이 풍기읍으로 승격됐다. 1980년 4월1일 법률 제3188호(1979.12.28)로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면서 1읍 9면을 행정구역으로 한 영풍군이 분리됐다. 영주시·영풍군은 분리된 지 15년 만에 다시 도농복합형시설치에관한법률 제4774호(1994.8.3)에 의거 1995년 1월1일 1읍 9면 13동을 행정구역으로 통합돼 영주시로 새롭게 발족했다. 2014년 민선 6기를 맞이한 영주시는 경제가 살아나는 도시, 힐링의 중심도시, 역동하는 도시로 ‘희망의 100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이원식 프리랜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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