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현대사 100년

6.25 영주전투 개요

단산사람 2016. 3. 25. 23:39
기고>6.25전쟁 풍기전투와 전사자 유해 발굴

[2016-03-24 오후 6:57:00]

66년 전 625, 전 국민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새벽 4시 북한공산집단이 소련제 T-34형 탱크 242대를 앞세우고 북위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으로 시작한 만행(蠻行)1,129일간 지속되면서 백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든 미증유(未曾有)의 국난, 이것이 6.25전쟁이다.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우리는 개전 3일 만인 628일에 수도 서울이 함락(陷落)되고 노도(怒濤)와 같이 밀고 오는 적군 앞에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76일에는 평택-충주-단양-울진을 동서로 연()하는 37도선까지 밀려 났으며 714일에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UN군 총사령관(MacArthur 원수)에게 이양하고 정부는 대전, 대구로 피난을 다니다가 717일 부산으로 옮겼다.

단양전투에서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감행하던 국군 8사단은 712일 오후 9시에 작전상 또다시 죽령을 넘어야 했으며 풍기국민학교에서 재편성을 하고 곧바로 21연대를 풍기 동남쪽(산법동, 지동리, 동촌동 등) 일대로, 10연대를 풍기 서남쪽(대촌동, 장군봉, 유전동 등) 일대에 배치, 풍기를 중심으로 V자형 진지를 편성하였다.

8사단은 714일 정오경에 선발대로 1개 연대 규모로 추정되는 병력으로 죽령을 넘어 창락초등학교에서 집결, 5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남진을 하다가 국군 8사단의 양동(陽動)작전에 걸려들어 생현교() 인근에서 아군의 집중포격과 일제사격으로 풍기전투의 첫 교전이 이루어 졌으며 여기서 적군은 큰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는데 곧바로 중공(中共) 팔로군(八路軍) 출신의 실전 경험이 많은 병사들로 편성된 적 12사단을 교체 투입하였다.

국군 8사단은 병력·무기·장비 등 상대적으로 절대 열세(劣勢)인 상황에서 교대병력도, 병력충원도 없이 10일 동안 적군의 남진(南進)을 사력(死力)을 다해 저지하다가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고 723일 아침 드디어 영주읍내를 적군에게 내주고 서천을 도하(渡河)하여 옹천으로 이동을 하면서 풍기전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우리 국군의 전략은 적군을 섬멸(殲滅)하고 또 격퇴시키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적군의 남진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었다. 주한 UN지상군 사령관 Clark 장군(외아들 월리안 도란 소령은 단장의 능선에서 전사)은 미국을 출발한 증원군이 상륙할 수 있는 부산항을 반드시 확보하기 위해 84일까지 지연작전을 전개할 것을 지시하였다. 적군 역시 부산항을 점령해서 미국 증원군의 상륙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하였다. 그래서 미 8군 사령관 Waker장군(501223일 서울 북방전선에서 전사)은 이것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국군 8사단이 여러모로 열악(劣惡)한 여건 속에서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오는 적군의 남진을 10일간이나 저지시킨 풍기전투는 뒷날 915일 인천상륙작전과 928일 서울수복 그리고 10138선을 돌파해서 북진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 전과(戰果)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며 국방전사(戰史)에도 재평가 되어야 하고 영주시 당국에서도 깊이 고려할 역사적 사안(事案)이라고 생각한다.

6.25전쟁 시 풍기전투는 6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미완의 장()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전사자 유해 수습이다. 전투중 전사자의 시신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풍기전투같이 밀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사자는 수습이 거의 불가능한데 더구나 928일 서울 수복까지 2개월 이상을 적 치하(治下)에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습이 어려워졌다. 지금도 당시 치열했던 격전지의 산과 계곡에는 장렬히 산화(散華)하신 장병들의 수습하지 못한 유해가 곳곳에 묻혀있다.

그동안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향토부대인 제50보병사단 영주대대가 수차례 풍기전투 전적지에서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지속하였는데 영주시민의 제보와 협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금년에도 328일부터 422일까지 풍기전투 적전지에서 발굴 작업을 실시하는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바친 임들의 유해를 한 조각이라도 더 찾아서 국립 현충원에 편히 모실 수 있도록 영주시민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과 협력을 당부 드린다.

<님들의 못난 옛 후배 전우 박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