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현대사 100년

영주의 뿌리, 오래된 것들의 함성

단산사람 2014. 10. 18. 20:18

미래는 현재를 발판 삼아 성립되는 것....오래된 것들의 함성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뿌리를 중시해 온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찾기 위한 현재 진행 과정이고, 미래의 우리를 가꾸기 위한 귀중한 밑거름이다. 과거 없이 현재가 존재할 수 없듯이 미래 또한 현재를 발판으로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우리는 나라를 잃었고 60년 전 6.25를 겪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도 나라를 지켰고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자식 공부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온 길을 돌아보며 갈 길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 가흥동 한정마을 서릿골 우물
예전에는 물이 귀했다. 동네마다 마을 어귀에 우물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물 긷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 삼가동 당골 맷돌
예전에 맷돌은 집집마다 생활필수품이었다. 삼가동 사람들은 지금도 곡식을 갈아 두부, 묵, 국수, 떡 등을 만들어 먹는다.

 

   
 
■ 평은면 천본리 내매교회
경북북부지역 최초 교회로 10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주댐 수몰지역에 있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기독교 사적으로 지정했다.

 

   
 
■ 문수면 적동리 문수교(다리)
1943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됐다. 문수면사무소로 가다가 문수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리인 ‘문수교’는 1939년 10월에 준공되어 영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 풍기읍 삼가리 달밭골 양철집
넘어질 듯 지탱하고 있는 100년 전에 지은 이 토담양철집에는 지금도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소백산 1자락길 달밭골 주막집 뒤에 있다.

 

   
 
■ 평은면 평은리 잠실(누에치는집)
60~70년대에는 집집마다 누에를 쳐서 자식 학비를 마련했다. 당시 농가 부업 1위가 누에치기였다. 이 잠실은 벽돌집으로 스레트지붕을 이었다.

 

   
 
■ 휴천3동의 한주택에 남아있는 펌프
1950년대 들어 펌프가 설치되기 시작해 60년대엔 여러집에 펌프가 설치되어 어머니들의 물긷는 일이 크게 줄어 ‘대단한 발전’이라고 기뻐했다.

 

   
 
■ 옛 금강여관
50~60년대 고급 여관으로 경찰서 앞 골목에 있다.

 

   
 
■ 오거리~세무서 방향 옛버스터미널
영주시외버스터미널의 모습이다. 60-70년대 교통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으로 현재 철거를 앞두고 있다.

 

   
 
■ 옛 대구병원
영주기독병원의 전신으로 남서울예식장에서 제일교회 방향 좌측에 있다. 당시 영주에서 현대화된 병원으로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 풍기읍 성내동 풍기인견공장
1960년대 우리 지역 모든 누나들은 풍기직물공장에 가서 일을 했다. 1980년대 까지 ‘달그락 달그락’ 인견을 짰다. 사진은 크고 웅장했던 옛 대신직물 모습이다.

 

   
 
■ 귀내보트장
60~70세대들은 귀내보트장에서 노를 젓는 보트를 탔다. 영주의 유일한 유원지였던 귀내보트장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코스였다.

 

   
 
■ 휴천1동 문화철공소
1952년에 문을 연 이곳은 6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 안정신전정미소
안정면 신전리에 있는 정미소로 물레방아간이었다. 70년대 초까지 물레방아가 돌아갔고 그 후 토매방아간이 되었다가 80년대에 멈췄다.

 

   
 
■ 안정면 신전동 안정양조장
안정면 소재지에 있는 양조장으로 술독 50여개로 하루 100말 이상 막걸리를 생산했던 규모가 큰 양조장이었다. 아직 막걸리 냄새가 나는 것 같다. 90년대 들면서 생산이 멈췄다.

 

   
 
■ 웃귀내 영주송어양식장
영주 최초의 송어양식장이며 전원 횟집으로 90년대 초까지 성업했다.

 

   
 
■ 영주1동 진안상회
문을 연지 48년이 됐다.

 

   
 
■ 영주1동 협립양산총판은 6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 구역통 고추전 골목
일제 시대 건축양식이 그래도 남아 있다.

 

   
 
■ 상망동 협동 이발관
46년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 하망동 일광세탁소
50년이 된 이세탁소의 간판이 아직도 ‘2국’으로 시작되는 간판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시외버스터미널 옆 유성다방

 

   
 
■ 하망동 중앙초등 앞 영풍사

 

이원식 권영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