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양성/"영주문화 실버기자"

영주 풍물(사천농악)의 뿌리를 찾자!

단산사람 2013. 11. 3. 18:44

영주 풍물(농악)의 뿌리를 찾자

-사천농악은 영주지역의 대표적인 농악

-유계 선생의 향토지에 ‘새내농악’이라 기록

-계승․발전을 위한 관계기관과 풍물인들 노력 기대

 

영주시 읍·면·동대항 풍물경연대회가 18일 영주문화원 마당에서 9개 풍물단이 참가하여 지역의 명예를 걸고 열띤 경연을 펼쳤다.

단산면 사천농악은 전년도 최우수팀으로 식전 공연을 하게 됐다.

김주영 영주시장은 개막 축사에서 “영주 풍물의 뿌리를 찾아 전통을 살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영주 풍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살리면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풍물 경연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성만 도의회부의장은 “일본은 일제 36년동안 우리 풍물을 억압했고, 중국은 풍물을 자기네 ‘전통음악’이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풍물인들의 더 깊은 연구와 노력을 당부했다.

영주의 전통문화 보존과 복원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서중도 문화원장은 “사천농악은 영주지방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풍성한 수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였으며, 마을 공동체 재원 염출방책이 되기도 했고 마을을 단합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사천농악이 8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90년대 이후 맥이 끊겨 아쉽다”고 했다. 서 원장은 또 “사천농악의 뿌리를 찾기 위해 사진 자료 일부를 확보하였으며 분실된 악보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사천농악보존회 허규정(57, 단산병산리, 상쇠) 회장은 “정통 사천농악에 대한 기록도 근거도 없고 전수자도 없어 강사가 가르치는대로만 하고 있는 실정이여서 아쉽다”며 “사천농악의 옛가락과 대형, 상모 등이 재현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영주 향토사를 연구한 박하식(소설가, 전 매일신문 기자) 선생은 “송지향 선생이 1987년에 발행한 영주영풍 향토지에 의하면 ‘이 고장의 농악으로는 새내(단산면 사천리)농악을 일컬어 왔으나 요즈음에는 그 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이고 근년에는 필두(영주시 상줄리) 농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 대목에서 영주지방 농악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면서 “옛 순흥도호부 때부터 봉화, 예천, 안동 경북북부지역 관례행사 때마다 사천농악이 초청되어 공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유계 송지향(2004 작고) 선생은 향토지 집필 당시(1987) 영주 농악에 대해 “현재 이 고장의 원로 농악인으로는 순흥에 김순생(안동 소산출신)이 있다. ‘요새도 농촌마다 농악이 있고 도시에는 사물놀이패가 있기는 하나 제대로 격을 익힌 농악군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김옹은 ‘텔레비젼이나 혹 농악대회 같은데서 보아도 한결같이 한심스러울 지경’이라며 오늘 우리 농악의 상태를 못내 개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경연대회 심사위원장으로 초청된 강원희 예천통명농요보존회장은 “영주에는 사천농악, 흥주농악, 필두농악이 유명했다”며 “어느 지역이나 전통 전수자로 맥이 이어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2013 영주시 풍물대회 최우수상을 차지한 순흥초군농악 정창순(75, 전수자) 상쇠는 “해방 후 마을마다 농악대가 조직되어 억압의 한을 풀었고 무척 번성했었다”면서 “영주에는 사천농악, 필두농악, 순흥농악, 오계농악이 유명했고 각 면마다 2-3개의 농악단이 있었다”고 회고 했다. 그는 또 “사천농악이나 순흥농악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순흥이 이 지역의 원조일 것”이라고 했다. 순흥초군농악보존회 박백수 회장도 “오랜 역사만큼이나 순흥농악이 이 지역의 뿌리이며 현재 모든 자료를 확보하여 무형문화재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애 대해 서중도 문화원장의 의견을 달랐다. “영주농악의 뿌리는 사천농악이며 그 전수자로 단산면 옥대리에 임순모(90년경 작고) 옹이 있었으나 연로하여 맥을 잇지 못하자 동산여고에서 10여 년 간 맥을 이어오다가 최근 흐지부지한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사천농악의 깃발을 들고 10여(1990년대)년 간 학생지도를 한 동산고 권혁기 교사는 “당시 순흥 정창순 선생과 소백풍물 이준우 강사가 직접 지도를 해서 경북풍물대회 우수상(2위)까지 받았었다”며 “현재 학교에 악기는 있으나 악보나 역사적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지역의 풍물 역사를 끌어안고 발굴․복원에 안간힘을 쏱고 있는 이준우(소백풍물) 씨는 “흥주(순흥)농악 전수자 정창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동산고와 단산면에서 사천농악을 지도했었다”며 “순흥농악은 곧 흥주농악이며 초군이 활동하던 일제 (1930)때부터 활동이 시작됐고 해방 후 크게 번창했다”고 말했다.

농악이란 ‘농촌의 음악’이라고 도시인들이 많이 사용하다보니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으나 실제 이름은 '매구', '풍물', '두레'등으로 불리어졌다. 서민문화로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옛(조선시대) 문헌기록은 찾을 수 없다. ‘농악’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6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부락제(部落祭)라는 책에서 처음 나타났고, 영주 농악의 기록은 유계 송지향 선생이 발간한 영주․영풍 향토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문헌과 사진, 풍물인들과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영주 풍물의 뿌리는 ‘사천농악’에서 찾을 수 있으나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사천농악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하는 흥주농악이 순흥초군농악으로 전수돼 오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풍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영주풍물의 뿌리를 찾는 노력이 요구되며 관계기관은 적극적인 관심과 행․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1930년대 단산면 사동농악

 

 

 

2013 단산면 사천농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