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입구에 들어서면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절에서 보니 의아하다. 홍살문은 향교나 관아 입구에서 보는 유교의 문화유적인데, 왜 절 안에 자리잡은 것일까?
동학사 내에 옛 시대의 충신을 기리는 동계사, 삼은각, 숙모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 3사는 유교식 사당이 맞다. 그것도 아주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먼저 동계사(東鷄祠)는 신라 눌지왕 때 왜국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몰래 구출해내고 회유와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한 충신 박제상을 모신 곳이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건립했다고 전한다.
삼은각(三隱閣)은 고려 말기의 충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가 망하고 3년 후인 1394년, 길재가 동학사의 스님들과 함께 절 옆에 단을 쌓고 스승 정몽주의 제사를 지낸 게 시초라고 한다.
그럼 숙모전(肅慕殿)은 무엇인가? ‘숙모’란 말은 요즘 잘 쓰지 않는데, ‘엄숙하고 정중하게 그리워함’을 뜻한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을 기리는 사우다.
아울러 1453년 수양대군에게 척살당한 절재 김종서를 비롯한 충의인물들,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참형을 당한 성삼문 등 사육신과 김시습 등 생육신과 같은 충절인물들의 위패를 모셨다.
숙모전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세워진 것일까? 여기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애통한 사연이 서려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세조가 마침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머리를 깎고, 동학사에 와서 곡을 했다.
이듬해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참수를 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삼은각 옆에 단을 쌓고 초혼제를 지냈다. 모든 이들이 두려워 감히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이가 매월당이다.
한데 2년 뒤에 세조가 속리산을 거쳐 동학사에 왔다가 이러한 내력을 듣게 되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기리라고 명을 내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피부병, 눈병 같은 병마가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많은 이들을 죽인 업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세조는 자신을 만나지 않고 피해다니는 김시습을 좇아 마곡사로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단종을 비롯한 안평대군·금성대군·김종서·황보인·정분 그리고 사육신 등의 이름을 비단 여덟 폭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하고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했다고 한다. 계속 제사를 모실 수 있게 토지와 임야를 따로 떼어주기도 했다.
지금 숙모전의 정전에는 단종과 왕비 정순왕후를 모시고 있고, 동무에는 안평대군·금성대군 등 왕실 종친들과 정인지·김종서·정분 등 계유정난 때의 삼정승,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 등 생육신(生六臣)의 위패를 모셨다.
맞은편 서무에는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사칠신’으로 꼽히기도 하는 김문기 등이 모셔져 있다.
선조·광해군·인조 때 내의원 침의로 명성을 날린 허임의 8, 9대조 조상인 허후, 허조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이들 또한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후손들은 노비로 전락했던 것이다.
숙모전에 기려진 충의인물은 모두 280여 분이나 된다. 1963년에 발족한 사단법인 숙모회가 봉안 인물과 의례절차를 정비해 해마다 두 차례 제향을 올린다.
음력 3월 15일에 지내는 춘향은 김시습이 단종의 원혼을 불러 최초로 제사한 날이고, 음력 10월 24일에 지내는 동향은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날이다.
숙모회의 살림을 오랫동안 맡아 오다가 공주사람으로는 최초로 올해부터 숙모회를 대표하게 된 정문화 이사장은 “전국 64개 가문의 선조들이 한곳에 모셔져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뼈대가 굵은 사당”이라고 말한다. 어찌 뼈대뿐이랴. 이분들의 충절 기개는 후세사람은 물론 하늘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웅진백제의 고도이자 조선 300년간 충청도의 수부였던 공주땅에 통일신라·고려·조선 등 시대를 망라한 충절인물들이 한데 배향된 것은 아주 특별한 감흥을 준다. 660년 백제가 망한 뒤에도 굴복하지 않고 3년 동안이나 부흥전쟁을 벌인 곳이 이 땅 아니던가.
전국의 서원과 사우 하나하나 의미가 작지 않지만, 숙모전은 일반적인 건립 배경과 뚜렷이 구별된다. 유교와 불교가 함께하고 있음은 더욱 독특하다.
불교가 유교를 품은 것일까, 유교가 불교를 용인한 것일까? 1800년대 중후반 태화산 마곡사에서도 쫓기는 서학(천주교) 죄인들을 품어주고, 동학 접주 김창수(백범 김구)를 출가시켜 수개월동안 관헌으로부터 보호한 적이 있음이 겹쳐서 생각난다.
같은 공주땅 계룡산 남쪽 자락에 있는 신원사에는 숙모전 같은 사우는 아니지만 특별한 제사처가 있다. 중악단(中嶽壇)이다. 조선조 왕실에서 계룡산 산신에게 나라와 왕실의 평안을 기원하던 곳이다.
중악단처럼 숙모전도 한 종교, 종파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크게 보면, 사람의 기개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상과 종교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그 정신을 더욱 잘 기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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