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14] [탐방일:2020.7.9]
소수서원 향사 때 부르는 ‘도동곡’
도동곡은 주세붕이 안향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긴 노래이다
총 9장을 3장씩 나누어 초헌, 아헌, 종헌을 드릴 때 창한다
내용은 주자를 존경하고 안향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 핵심
한 선비가 소수서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유생이 문성공묘 앞에서 경독하고 있는 모습
죽계지에 실린 도동곡
소수서원 보존용 도동곡
도동곡을 창하는 모습
도동곡을 창하는 모습
도동곡을 창하는 모습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으로 한국의 서원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국보 제111호 회헌영정과 보물 제1402호 문성공묘 등 보물이 수두룩하다. 또 옛 숙수사지에서 발굴된 보물도 있고, 아직 곳곳에 숨겨져 찾지 못한 보물도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소수서원 향사 의례 속에 불리어지고 있는 ‘도동곡(道東曲)은 소수서원에 숨겨진 또 하나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서원은 201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서원통합관리단’은 ‘2020세계유산축전’ 때 소수서원 향사(享祀)를 재연하여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는 소수서원 향사례 속에 ‘도동곡’을 창하는 특별한 순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례 때 노래(樂)를 부르는 것은 종묘(宗廟)와 문묘(文廟)를 제외하고는 소수서원이 유일하다. 또 도동곡은 한글과 한문을 혼용했다는 점 또한 아주 특별함을 인정받고 있다.
도동곡(道東曲)이란
도동곡은 주세붕 선생이 1541년(중종36) 6월 기천(基川, 옛 풍기) 군수로 부임하여 고려 말 유학자 안향 선생을 찬양하는 긴(張哥)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경기체가(景幾體歌) 형식의 ‘도동곡’이다. 도동곡 이전의 경기체가는 괘락적 흥취를 도모하는 노래로 인식됐다면 도동곡은 주자학적 가치체계를 담은 시가를 통해 수기(修己)와 교화(敎化)의 달성을 도모하는 한편 신과 인간의 조화를 위해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도동곡은 1543년 주 선생이 세운 백운동서원에서 봄과 가을에 행해지는 향사 때 ‘의식노래’로 불러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500여년 역사를 가진 보물급 ‘무형문화재’라 할 수 있다.
도동곡은 총 9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3장으로 나누어 초헌, 아헌, 종헌을 행할 때 부른다. 노래는 잔을 올리는 절차가 시작될 때 부르기 시작하여 절차가 끝날 때 노래도 끝나도록 되어 있다. 도동곡은 결정적으로 안향의 공과 덕을 알리고 찬양하는 것이 노래의 핵심이다. 노래를 통해 풍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그 공을 가슴에 새기고, 배우는 선비로서 태도를 잊지 않아야 된다는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다.
도동곡(道東曲)을 창(唱)하다
초헌관이 첫 번째 잔을 올리면 도동곡 1, 2, 3장을 창(唱)한다.
▶1장 伏羲神農黃帝堯舜 <再唱> 偉 繼天立極 景幾何如. (복희신농황제요순 <재창> 위 계천입극 경기하여) ▷해설: 복희는 중국 고대 인물로 밭 갈고 고기 잡고 축산을 가르쳤다. 신농 때 와서 농사짓는 법과 질병을 다스렸다. 황제는 중국고대 전설상 제왕으로 중국 민족에게 문명을 전해 준 개조(開祖)다. 요와 순은 중국 고대 성군(聖君)이다. 偉(위)는 노래에 쓴 감탄사이고, 계천입극은 유학의 천도를 이어 유학의 근본을 세웠다는 뜻이다.
▶2장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偉 주거니 받거니 聖人의 心法이 다믄 잇분니이다.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위 주거니 받거니 성인의 심법이 다믄 잇분니이다) ▷해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의롭고 오직 한결 같아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리라 위대하도다! 주고받는 성인의 마음 쓰는 법을 담은 것은 이뿐입니다. 전심전력으로 시종일관하면 진실로 그 바른 길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3장 禹湯文武 皐伊周召 <再唱> 偉 君臣이 相得 景幾何如. (우탕문무 고이주소 <재창> 위 군신이 상득 경기하여) ▷해설: 우왕 탕왕 문왕 무왕 고도(皐陶) 이윤(伊尹) 주공단(周公旦) 소공석(召公奭)은 백성을 사랑하고 교육에 힘쓴 고대 중국의 성군과 재상들이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마음이 맞아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면 도동곡 4, 5, 6장을 부른다.
▶4장 下土茫茫 커날 上帝是憂하샤 玗頂大人을 洙泗으해나리오시니 偉 萬古淵源이 그츨뉘업사샷다. (하토망망 커날 상제시우하샤 우정대인을 수사으해나리오시니 위 만고 연원이 그츨뉘업사샷다. ▷해설: 하늘 아래 이 세상이 망망하거늘 상제께서 근심 하사 우정대인(공자)을 수수(洙水)와 사수(泗水,공자의 고향) 위에 내리시니 위대하도다! 오랜 세월! 영원히 그칠 까닭이 없으셨다. 즉 공자의 태어남과 위대함 그리고 영원함을 찬양하고 있다.
▶5장 顔生四勿 曾氏三省 仰高鑽堅 瞻前忽後 偉 學聖忘勞 景幾何如. (안생사물 증씨삼성 앙고찬견 첨전홀수 위 학성망노 경기하여 ▷해설: 안생과 증씨는 공자의 수제자다. 삼가하고 반성함을 자신의 수양 방법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안생은 네 가지 하지 말 것을 스스로 지키고 증씨는 세 번 반성 하였도다.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굳다. 앞에 계신 듯 바라보면 홀연히 뒤에 있도다. 위대하도다! 성인의 배움에 수고로움을 잊었으니 그 광경이 어떠한가?
▶6장 率하리 天命之性 養하리 浩然之氣 <再唱> 偉 至誠無息이아 本니이다. (솔하리 천명지성 양하리 호연지기 <재창> 지성무식이아 본니이다) ▷해설: 率(솔)은 좇다, 따르다란 뜻이다. 좇(率)을 것은 하늘의 성품이요 기를 것은 호연지기로다. 위대하도다! 지극한 정성이 끊임없는 것이 근본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에 성심 전력을 다하라는 뜻이다.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리면 도동곡 7, 8, 9장을 부른다.
▶7장 光風霽月 瑞日祥雲 <再唱> 偉 그처딘 긴날 엇뎨하아 니아신고. (광풍제월 서일상운 <재창> 위 그처딘 긴날 엇뎨하야 니아신고. ▷해설: 송나라 때 유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비유하였다. 비 그친 하늘에 달이 뜨니 대지는 밝고 바람은 시원한데 상서로운 해와 구름이로다. 광풍제월 서일상운 위대하도다! 공자 이후 1500여년 긴 세월 동안 유학이 끊어졌는데 이어진 것을 찬양하고 있다.
▶8장 人欲이 橫流하야 浩浩滔天일새 一千五百年에 晦翁이 나샷다 敬오로 本날셰어 大防을 맹가라시니 偉 繼往開來아 仲尼나 다라시리잇거. (인욕이 황류하야 호호도천일새 일천오백년에 회옹이 나샷다 경오로 본날셰어 대방을 맹가라시니 위 계왕개래아 중니나 다라시리잇거)
▷해설: 사람의 욕심이 넘쳐흘러 하늘까지 덮었는데 일천오백년만에 회옹(주자)이 나셨다.
경(敬)으로 근본을 세워 큰 제방을 만드시니 위대하도다! 지나간 성인의 심법을 잇고 미래까지 전하였으니 그 공이 공자나 다르시겠는가?
▶9장 三韓 千萬古애 眞儒랄 나리오시니 小白이 廬山이오 竹溪이 濂水로다 興學衛道난 小分네이리어니와 尊禮晦菴이 그 功이 크삿다 偉 吾道東來 景幾何如. (삼한 천만고애 진유랄 나리오시니 소백이 여산이요 죽계이 염수로다 흥학위도난 소분네이리어니와 존례회암이 그 공이 크삿다 위 오도동래 경기하여) ▷해설: 천만년 이어온 우리 역사에 참된 유학자 안향 선생을 내리우니 소백산은 주자의 고향 중국 여산 같고, 순흥의 죽계수는 중국 여산의 염수 같다. 학문을 일으키고 도를 지켜나가는 것은 작은 한 명분에 일이겠지만 주자학을 일으킨 주자를 존경하고 예우하며, 도학을 우리나라로 들여온 그 공이 크셨다. 아, 위대하도다 도학이 해동으로 들어온 그 광경이 어떠한가?
1543년 8월 11일 주 선생이 문성공 영정을 봉안할 때 “오직 공께서는 회옹(晦翁,주자)을 사모하여 도(道)가 동쪽으로 왔습니다. 아, 아름다운 경학(經學), 백세의 조종(祖宗)이십니다”라고 고했다.
도동곡 보존·계승 노력
1543년 문성공 영정 봉안례 이후 소수서원 봄, 가을 향사를 행할 때 도동곡을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난과 기근에도 제향을 이어왔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도 보존과 계승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덕에 세계유산의 영광을 안았다.
근대에도 노력은 계속됐다. 2009년에 발행된 ‘도동곡 자료조사 보고서’에 안문현 향토사학자의 ‘소수서원 제례악 도동곡’이란 제목의 자료집이 있고, 음 채록에 권영부·이갑선·김호철 씨 등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도동곡 복원을 위해 권정선·김응한·송원태·권영표·권영봉·김여학·류준희·권기열 씨 등 유림 원로들의 숨은 노력도 영주 역사에 남아 있다.
도동곡에 관한 연구논문도 수없이 많다. 박현숙(숙명여대)의 ‘주세붕의 도동곡 연구’, 하미정(창원고교사)의 ‘도동곡의 형식 변화 양상에 대한 연구’, 허철회 교수의 ‘주세붕의 도동곡 역주해설’ 등 수많은 연구논문이 있다. 이는 도동곡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2020 세계유산축전 소수서원 향사(香祀) 재연 행사에는 강구율 동양대 교수가 직접 지도했다. 서승원 소수서원 도감은 “소수서원은 지역사회와 대학 그리고 각계각층과 합력하여 도동곡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공동노력은 물론 ‘국가무형무화재’로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성공묘 내부 안향 선생 신위
회암 주희(주자) 영정
보물 제717호 주세붕 영정
국보 제111호 회헌 안향 영정
문성공묘에서 향사 지내는 모습
'책사랑 >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5 때 희방사와 함께 불타버린 잃어버린 보물 ‘월인석보’ (0) | 2020.09.01 |
---|---|
1625년 취사 이여빈이 만든 최초의 군지 ‘영주지(榮州誌)’ (0) | 2020.09.01 |
1953년 소수중 건립 때 학생들이 발굴한 신라불상 25구 (0) | 2020.09.01 |
1953년 소수중 건립 때 학생들이 발굴한 신라불상 25구 (0) | 2020.09.01 |
단종절신 휴계 전희철의 충정과 절의, 연꽃으로 피어나다 (0) | 202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