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사랑 이야기/영주의 전설

영주의 지명유래

단산사람 2020. 7. 15. 16:53

 

지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물과 산이다. 따라서 지명형성에는 내와 산의 이름이 바로 특정 지역의 지명으로 통용되는 보기들이 많다. 산과 물이 있는 곳에 농경문화가 발달하고 사람이 자리를 잡고 마을이 함께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영주의 옛 지명인 ‘나이(奈已)’ 혹은 ‘내기(奈己)’의 ‘내(奈)-’가 물을 뜻하는 ‘내(川)’를 드러내는 형태이며 여기에서 영주가 비롯하였음을 언어 지리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지명소 ‘내(奈)-’는 소백산을 동과 서로 하여 영주는 ‘내기(奈己)’, 영월은 ‘내생(奈生)’ 그리고 제천은 ‘내제(奈堤)’로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도 ‘내(奈)-’는 냇물을 뜻하는 지명소로 볼 수 있다.


영주의 경우, 전래 지명으로서 가장 오래된 이름이 ‘나이(내이/날이/내기)’라 하였고 영주의 속현으로서 ‘선곡(善谷)현’이었는데 ‘선곡현’의 본디 이름은 고구려의 ‘매곡(買谷)’이었다. 여기서 ‘매곡’의 ‘매(買)-’ 는 지명 변천의 대응으로 보아 물을 뜻한다. 이와 관련한 선행 논의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1)


영주의 옛 지명을 ‘내이군(奈已郡)’으로 번역한 것은 민족문화추진회(1970)의 번역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독음은 류렬(1983)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이(奈已) : 내이(?已) : 날이(?已)’로 대응관계를 상정하고 ‘나이’를 기본으로 읽고 있다. 정문연의 『삼국유사』 색인에서도 ‘내이군(?已郡)’으로 읽는다. 이러한 지명 읽기는 노중국(1993)에서도 나이로 읽는다. 같은 글에서 『고려사』와 『여지도서』,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순흥과 영주가 본디 고구려 지역임을 드러낸 것으로 미루어 『삼국사기』 자료에서만 백제 지역으로 기술하고 있다.


양주동(1947:565)에서 ‘내기(奈已)’는 ‘?기’로 읽는데 이 형태는 ‘디’의 속음으로 보았다. 여기서 ‘-디’를 성(城)의 뜻으로 상정하였다. 한편 권상로(1960)에서는 ‘내기(奈己??己)’로 읽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고, 김방한(1982)에서는 ‘기(己)’의 기원형을 ‘구루(kuru)’에 소급하고 있다. 유창균(1983:220)에서도 ‘내기(奈已)’를 ‘날거(narke)’로 읽고 ‘날(nar)-대(大)’로, ‘기(己)’를 ‘k?r’로 ‘성(城)’의 훈이며 ‘기(己k?)’는 고구려의 지명소 ‘-홀(忽)’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김종택(1992:47-54)에서는 ‘내토(奈吐)-대제(大堤)’와 ‘내혜(奈兮)-백(白)’의 대응됨을 들어 ‘*나(na)’를 재구하였다.


도수희(1980)에서도 같은 논의를 한 바 있다. 『삼국유사』 권3 에 나오는 ‘내리(?李<자료2 참조>)’에 착안하여 ‘기(己)-이(李)’의 대응을 제기하였다. 여기서 ‘기(己)’를 ‘이(李)’로 읽은 흔적이라 하였으며, 다시 ‘이(李)’가 ‘계(季)’의 오기일 것을 고려, ‘계(季)-기(己내긔<광주천자문>)’임을 미루어 ‘기(己)-이(已:奈已<삼국사기(이병도)>)-사(巳:奈已『삼국사기』(민추/육당))’의 글자꼴이 비슷함으로 일어난 혼기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


영주 옛 지명의 기본형은 ‘내기’이며 이 지역이 백제 전기어에 속하는 지역인데, 성읍을 뜻하는 백제어 지명의 대응이 이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높기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도수희(1977)에서는 ‘내토(奈吐)’를 일명 ‘대제(大堤)’라 한데 착안하여 ‘내이’는 ‘내기’이고 ‘내(奈)’는 ‘크다’의 뜻이고 ‘기(己)’는 지명이 변천하는 과정에서 그 대응성으로 보아 ‘기-걸(k?l)’이 되어 마침내 ‘내기-큰 성’이라는 풀이를 하였다. 그러니까 일단 ‘내기’를 ‘내(奈)’와 ‘기(己)’로 나누어 형태분석하고 여기서 그 뜻을 ‘큰 성’으로 상정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선 ‘내(奈)-대(大)’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본디의 글자는 ‘내(奈)’이고 한자의 음을 빌린 것이다. 한 마디로 물을 뜻하는 ‘내(奈)’는 ‘내(川)’ 혹은 ‘나리(鵝川-아치나리<영주문수>)’라고 상정할 수 있다. 여기 ‘대(大)’는 지명을 바꾸어 쓸 때, ‘내(奈 : 大 + 示)’의 한자 구성에서 가장 대표성이 있고 글자가 간편한 ‘대(大)’를 따서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는 달구벌(達句伐)을 대구(大邱)라고 고친 경우와 다르지 아니하다.


달구벌의 ‘달(達)-’을 보면 본디의 글자 가운데에서 ‘대(大)’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달구벌의 ‘달(達)’은 ‘대(大)’와 ‘양(羊)’을 합치고 여기에 다시 착 받침(?>?)을 더한 것이다. 여기 달에서 ‘대(大)’만을 대표글자로 따 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달(達dda)’과 ‘대(大dda)’의 한자음이 상통함을 전제로 한 차용이었다.


‘내(奈)-’의 전차형을 ‘*나리>나이>내’로 보고 ‘내기-내성(奈城/乃城)’은 냇물이 성처럼 둘러 흐른 곳에 형성된 고장의 이름이라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내-’와 관련한 이 지역의 마을 이름들을 찾아 그 계열 관계를 검증하도록 한다.


‘매곡’의 ‘매(買)-’를 지명 변천 과정의 대응관계로 볼 때. ‘매(買)-물(水)’로 보아 풍기 쪽에서 흐르는 남원천과 순흥쪽에서 내려오는 죽계천이 영주 창진(倉津)에서 만나고 다시 봉화에서 내려오는 내성천과 평은에서 합류하여 흐르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제 영주 지명과 함께 소백산을 남북으로 한 영월과 제천의 지명에서도 ‘내(奈)-물’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표기에 따른 ‘내(川)-’의 변이 계열을 언어지리적인 방법으로 그 분포와 의미를 살펴보도록 한다.


2. 내(奈)-의 자료와 의미


(1) 奈靈郡本百濟奈已郡婆娑王取之景德王改名今剛州領縣二善谷縣本高句麗買谷縣景德王改名今未群玉馬縣本高句麗高斯馬縣景德王改名今奉化縣(삼국사기)/ 馬靈廢縣在縣南三十里本百濟馬突縣一云馬珍一云馬等良(삼국사기)/ 悅己-悅城/ 結己-潔城


(2) 榮川本高句麗奈已郡(奈一作?)新羅婆娑王取之景王改奈靈郡(신증동국여지승람)


(3) 本捺已新羅婆娑王取之置郡景德王十六年改奈靈郡領縣二善谷玉馬高麗太祖二十三年改剛州成宗十四年置團練使顯宗九年屬安動仁宗二十年置順安縣令高宗四十六年陞知榮州事以衛社功臣金仁俊之鄕本朝太宗十三年改榮川郡世祖二年革順興府以馬兒嶺下水東之地浮石水息串川破文丹四里割屬干本郡肅宗九年復設順興還屬(대동지지)/(捺巳-奈靈-剛州-榮州-榮川)/ 奈城


(4) 奈城 - 北九十里本退串部曲高麗忠惠王以鄕人宦者姜金剛入元侍衛之功陞縣/北初五十終一百十越在奉化西崇川順興之東寧越永春之南(대동지지)(지금의 봉화/영주)


(永春) 本新羅乙阿旦一云阿達成景德王十六年改子春訪呼子爲阿達爲奈城郡領縣高麗太祖二十三年改永春顯宗九年屬原州本朝定宗元年自江原道移隷本道始置監務


(5) 奈小里部曲今沙奈里東一里(대동지지)/ 沙奈(=沙川: 지금의 영주 단산)(신증동국여지승람)


위의 자료로 보면, 영주의 옛 지명인 ‘내령(奈靈)’은 본디 백제의 지명으로 내기였다. 지명에서 ‘령(靈)-진(珍)-등량(等良 : ?라/?)’의 대응으로 미루어 ‘내령’의 ‘-령(靈)’은 군-현-읍-성 의 뜻으로 쓰였다. 그럼 ‘내기’의 ‘기(己)’는 어떠한가. 이 또한 군-현-읍-성의 뜻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지명 가운데 ‘결기(結己)-결성(潔城)’과 ‘열기(悅己)-열성(悅城)’의 대응에서 ‘-기(己)’는 영주의 옛 지명인 ‘내기’의 ‘-기(己)’와 같은 맥락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알맹이가 되는 ‘내기’의 ‘내(奈)-’가 어떤 점 때문에 ‘내〔川〕’의 뜻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보기(5)의 자료를 보면, ‘내소리(奈小里)’ 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쓰여진 당시에는 ‘사내리(沙奈里)’로 쓰였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더욱 우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내리’의 ‘사내(沙奈)-사천(沙川)’의 대응이다. 여기서 ‘내(奈)’와 ‘천(川)’이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가 있다.


한마디로 ‘내기’의 ‘내(奈)-’는 냇물의 ‘내〔川〕’를 뜻할 개연성이 있다. 영주 지역에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보기로는 ‘아천(鵝川)’을 ‘아치나리’라 함이다. ‘천(川)-나리’의 대응에서 ‘나리’의 소리가 줄어 ‘내’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보기(4)의 ‘내성(奈城)’은 오늘날의 봉화의 내성면과 물야면의 지역을 이르는 것이지만 『대동지지』가 쓰여진 당시에는 안동 땅이었다. 소백산에서 흘러내린 내성천이 영주와 순흥, 그리고 봉화를 감돌아 흐르는 모양이 마치 성과 같다는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명소 ‘내(奈)-’가 냇물을 가리킬 가능성은 빌려다 쓴 한자 ‘내(奈)’의 구성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6) ‘내(奈)’-의 자소 분석

奈 : 大 + 示(二 小 ⇒ ? ⇒ 水)≒川) > 大水(큰 물/큰 내)%永(二水之合)


보기 (6)에서 ‘내(奈)’의 글자를 절음하여 아래와 위로 갈라 읽을 수가 있다. 결국 큰 물 혹은 큰 내라는 뜻으로 읽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렇게 ‘내(奈)’의 자소로 보거나 지명이 바뀌는 과정의 대응 관계로 보아서 ‘내(奈)-내(川/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지명소 ‘내(奈)-’ 계열의 지명 가운데 고구려 땅이었던 제천의 옛 이름 ‘내토(奈吐)’에서도 그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제천의 자료를 들어보기로 한다.


(7)奈?郡本高句麗奈吐郡景德王改名今湜州領縣二淸風縣本高句麗沙熱伊縣景德王名今因之赤山縣本高句麗縣景德王因之今丹山縣(삼국사기)


(8) 本新羅奈吐景德王十六年改奈?郡領縣二赤山淸風隸朔州高麗太祖二十三年改堤州成宗十四年置刺史穆宗八年罷之顯宗九年屬原州睿宗元年置監務本朝太宗十三年改堤川縣監(대동지지)
(9) 吐上縣>堤上縣, 漆吐縣>漆?縣, 主夫吐>長堤(삼국사기)


제천의 옛 이름은 ‘내토(奈吐)’였다. 후부 지명소 ‘-토(吐)’는 보기 (9)에서와 같이 〔둑堤〕을 이른다. 이르자면 오늘날의 제방을 말한다. 제천 지명의 변천과정을 간단하게 줄이면 ‘내토(奈吐)>내제(奈堤)>제주(堤州)>제천(堤川)’이 된다.


여기서 ‘제천(堤川)-내토(奈吐)’의 대응을 들여다보면, ‘제(堤)-토(吐)’이니 나머지 ‘내(奈)-천(川)’이 대응됨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이와 함께 지명소 ‘내(奈)-’ 계에 속하는 것으로는 소백산 남쪽의 영주는 물론, 북쪽의 영월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영월의 옛 이름은 ‘내생’이었다. 이제 영월의 자료를 들어보기로 한다.


(10)在溟州?李郡按地理志溟州無?已郡唯有?城郡本?生郡今寧越又牛首州領縣有?靈郡本?已郡今剛州牛首州今春州今言?已郡未知孰是(삼국사기)


(11) 寧越本新羅奈生郡景德王十六年改奈城郡(대동지지)


보기(10-11)을 동아리 지으면, ‘내생(奈生)-내성(奈城)-영월(寧越)’이라 할 수 있다. 앞선 ‘내생-내성’에서 후부 지명소의 뜻을 고려하면 ‘-생(生) : -성(城)’이 된다. ‘내생’의 경우, 영월의 서강과 동강이 만나 합쳐지면서 그 어름에 생겨난 고장이란 말이고, ‘내성’은 영주의 ‘내성’과 같은 뜻으로서 냇물로 성을 이룬 고장이란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밖에도 신라 제 17대 임금이었던 내물왕(奈勿王 一云 那密王)이 있다. 적기만 한자이지 속뜻은 내물왕의 ‘내물(奈勿)’은 큰물 혹은 큰 내로 상정할 수 있다. 이제까지 지명소 ‘내(奈)-’의 속뜻은 자료의 분포와 대응으로 보아 ‘내(川)’를 뜻하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내’는 ‘나’로도 읽는바, ‘나리>나이>내’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지명소 ‘내(奈)-’는 ‘내(川)’를 뜻한다. 한자를 빌려 쓰는 과정에서 한자의 뜻과 소리를 중심으로 쓰는 일이 많다. 이르러 음독과 훈독의 표기라 할 수 있다. 한자 차용의 단계로 보아 소리 쪽이 뜻 쪽보다 더 먼저 빌려 썼을 가능성이 높다.

또 ‘내(奈)-’의 분포 유형에 따른 지명 방사의 언어지리적인 분포의 특징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3. 지명의 분포와 언어지리


전부 지명소 ‘내(奈)-’는 ‘내(川)’를 뜻한다. 이 같은 지명소 ‘내-’가 지명으로 적히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분포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하나는 한자의 소리로 우리말의 소리를 적는 음독 계열의 지명들이 있다. 다른 하나는 한자의 뜻을 빌려 적는 훈독 계열의 지명분포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지명의 방사가 이루어지는 지역으로는 우선 ‘내기(奈己)’와 ‘내토(奈吐)’, 그리고 ‘내생(奈生)’으로 범위를 좁혀 알아보기로 한다. 오늘날로 오면, ‘내기-영주’, ‘내토-제천’, ‘내생-영월’로 이어지는 지명들이다.


3.1. 훈독 계열의 지명

흐르는 시내를 표기함에 있어 내와 물에는 엄격한 구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한강을 한수(漢水), 청천강을 살수라 하였다, 이제 빌어다 쓰는 한자의 경우를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훈독 계열에 드는 한자로는, 일반적으로 ‘수(水)-영(永)-지(池)-진(津)-만(灣)-계(溪)-천(川)-하(河)-강(江)’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들 수가 있다.


내성천 어름의 봉화를 어우르는 영주, 그리고 영월과 제천을 중심으로 ‘내-’의 훈독 계열에 드는 지명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여기 봉화 지역은 지난 날 내성현에 속하였던 물야(勿野), 봉화(奉化), 상운(祥雲) 면 지역을 이른다.


영주와 봉화, 그리고 예천과 문경과 안동 일부를 싸안아 흐르는 내성천은 이른바 영주 지역의 젖줄이다. 내성천(乃城川)의 ‘내성(乃城)’은 본디 ‘내성(奈城)’이었던 것을 1914 년 일본 강점기에 지방 행정지명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고쳐 적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物野面) 북쪽의 선달산(先達山)과 옥석산(玉石山)에서 흐르기 시작, 강의 길이는 101.8킬로미터다. 남쪽으로 흘러 봉화의 도촌리에 이르러 북쪽에서 오는 낙화암천(落花巖川)과 합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에 이르러 북쪽에서 흘러드는 서천(西川)과 합친다. 이어 영주시의 중앙을 흐르다가 다시 안동?문경을 거쳐 하류에 이르러 예천 분지를 이루어 놓는다. 문경시 영순면(永順面) 달지리(達地里)에 이르러 북서쪽에서 오는 금천(錦川)이 합쳐져 예천군 용궁면 남쪽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11) 영주 지역의 땅이름

가. (水一) : 수한동(水寒洞)(영주봉현), 수철리(水鐵里)(풍기), 백수동(白水洞풍기백동), 웅수동(熊水洞풍기창락), 수식리(水息里봉화물야), 수가(水家봉화물야), 수도(水道봉화봉화),수현(水峴봉화물야), 수도리(水島里)(영주문수)2)

나. (川-) : 도천리(刀川里), 분천리(汾川里), 서천리(西川里)(봉화명호면), 화천리(花川里)(봉화내성), 마흘천리(馬屹川里), 소천리(韶川里), 교천리(交川里)(영주부석), 사천리(沙川里)(영주단산), 송천동(松川洞영주하리), 신천리(新川里영주이산), 천본리(川本里), 원천동(元川洞), 사천동(沙川洞), 오천동(?川洞영주평은), 휴천(休川), 고천(古川)(영주시), 월천(越川봉화봉화), 화천(花川봉화봉화), 구천리(龜川里봉화상운)3), 오록하천(梧鹿河川봉화물야), 두천(斗川)(봉화물야), 사천(沙川봉화봉화)

* 내성천(奈城川) ⇒ ‘내매(乃梅)’4)(영주이산) : 내 이름으로 달내 동쪽에 있는 마을, 내성천 강변 일명 양지 내매 : ‘내(乃)’자처럼 생긴 성모양의 강물(한국지명총람)

* 사천(沙川→沙奈)(단산사천), 일명 ‘새내(봉화사천)’

다. (溪-) : 삼계리(三溪里)(봉화내성), 운계리(雲溪里)(봉화상운), 보계리(寶溪里)(영주부석)// 미곡동(彌谷洞)(영주문수), 미곡동(味谷洞)(영주풍기), 월계(月溪봉화물야)5), 봉계(鳳溪봉화물야), 운계리(雲溪里봉화상운), 계동(溪洞봉화물야), 죽계(竹溪)

라. (浦-) : 전포(前浦봉화불야), 후포(後浦봉화물야), 분포(汾浦봉화물야), 포저(浦底봉화봉화)

마. (池-) : 창동지(倉洞池봉화물야), 진전지(鎭澱池봉화물야), 유록지(幼鹿池봉화봉화), 지동(池洞 봉화상운)

바. (기타) : 영모리(永慕里영주부석), 영정(永定)(풍기), 강동리(江東里), 천동(泉洞영주봉현), 산정(山井봉화상운)6), 해저(海底 봉화봉화)7), 창해(蒼海봉화상운)8), 천곡(泉谷봉화물야), 행정(杏井봉화봉성)9), 연곡(淵谷봉화봉성)


위의 자료로 보자면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물의 이름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이 ‘-천(川)’ 계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내의 경우다. 한자를 빌어다 쓴 또 다른 사내를 가리키는 이름의 대응을 보면 ‘사내(沙奈)-사천(沙川)’의 보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대응 관계로라면, ‘천(川)-내(奈)’의 표기는 다르지만 그 뜻은 같은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도 단산면의 ‘사내(새내)’에서 사내의 옛 자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예전에 쓰이던 지명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그림자를 남기게 되어 있다. 사내는 봉화에도 있어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실개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914 년에 고친 내성의 ‘내(乃)’도 알고 보면 ‘물 수(水)’의 행서체와 이어 내(乃)의 자형이 아주 흡사하다. 원래의 뜻은 아이가 태반에서 구부리고 있는 모양을 이른다. 실상 영주의 지역을 흐르는 내성천과 남원천이 만나 영주를 에워싸고 흐르는 모양이 마치 이어 ‘내(乃)’를 거꾸로 놓은 모양이다. ‘내(奈)’의 가나자〔な〕와 ‘내(乃)’나 ‘물 수(水)’의 행서체와 비슷하다.

분포로 보아 ‘물 수(水)-’ 계 지명은 단독으로 흐르는 냇물을 이르는 경우는 적고 지명 가운데 한 요소로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계(溪)’의 경우, 죽계와 봉계처럼 흐르는 물의 이름으로 쓰인 경우가 있다. 영주의 지명 가운데 ‘영(永)-’자 계의 지명은 두 물줄기가 만나 흐르는 곳을 이르는 경우가 많다.10)

이제 영주와 함께 제천의 지명 가운데 한자를 빌려 쓴 훈독 계열의 보기를 알아보도록 한다.


(12) 제천 지역의 땅 이름

가. (水-) : 약수동(藥水洞)(금성적덕), 수곡(水谷)-수라곡(水羅谷)-수촌(水村)(덕산성암), 억수리-파수(巴水)(한수읍리), 억수리(億水里)(덕산월암), 수리(水里)(수산사리), 수산(水山)(수산수산)

나. (川-) : 광천(廣川)(덕산도전), 성천(星川)(덕산도전), 둔지천(屯知川)(백운평동), 내리천(內里川)(수산내리), 대전천(大田川)(수산대전), 상천천(上川川)(수산상천), 천상리(川上里수산상천), 하천(下川)(수산하천), 대거천(大巨川)(제천신월), 마천리(馬川里)(제천신월), 사천(沙川: 모라내)(제천영천), 구룡천(九龍川)(금성활산), 고명천(高明川)(청풍고명), 고교천(高橋川)(금성동막), 두학천(頭鶴川)(제천영천), 산곡천(山谷川)(금성산곡), 수산천(水山川)(수산오티), 용두천(龍頭川)(제천청전), 운학천(雲鶴川)(백운운학), 원박천(院朴川)(봉양원박), 장성천(長善川)(청풍장선), 팔송천(八松川)(봉암명암), 화당천(花塘川)(백운화당), (黑石溪)(송학무도)

다. (津-) : 청초호(淸草湖)(청풍), 청풍진(淸風津)(수산오티), 읍진(邑津)(청풍읍진), 진두(津頭)(청풍도리), 황강진(黃江津)

라. (浦-) : 포전리(浦田里)(금성포전), 주포(周浦)(봉양주포)-주포교/주포장

마. (池-) : 지곡(池谷)(덕산선고/수산지곡), 대갈야지(大葛也池)-미기지(美機池)(제천고명), 의림지(義林池)(제천모산)-모산동, 못안, 안모산, 밧모산, 영호정(映湖亭), 용폭포(龍瀑布), 경호루(鏡湖樓)

바. (泉-井-) : 한천(寒泉)(금성구룡/제천두학/한수한수), 천남(泉南)(봉양천남 - 저남들, 즈남, 천남교, 천남역, 장정(獐井노루물)(금성강제), 구세정(救世井)(봉양명암), 남천동(南泉洞)(제천남천) - 저남들, 천남역터, 저남다리

사. (灘-) : 전탄(箭灘)(청풍방흥), 포탄리(浦灘里)(한수포탄), 호탄(虎灘)(한수상로), 노탄(老灘)(한수상로), 사탄(沙灘)(제천두학)

아. (기타) : 강제리(江諸里)(금성강제), 장담(長潭)(봉양공전)


‘내토(奈吐)’에서 비롯한 제천의 내 이름으로는 그 분포로 보아 후부 지명소 ‘-천(川)’계의 보기가 가장 많다. 이 가운데 제천 영동의 ‘사천(沙川)’이 영주의 그 것과 같은 뜻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내토’가 내를 막아 이루어놓은 제방이라면 그 내는 어디일까. 지금의 용두천이 흐르다가 제 2 의림지를 이루고 다시 흘러내려 의림지를 이룬다. 제천의 어떤 곳보다도 가장 많은 수량을 확보함으로써 제천 인근의 넓은 들판의 젖줄이 되었다. 마침내 의림지를 중심으로 하여 호서와 호남을 나누고 기호 지방이라는 지역 이름이 생겼다는 풀이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강으로는 황강이 있는데 이는 청풍강으로 들어가는 제천천과 만나 어우러지는 어름을 흐르는 강이다. ‘강제리’도 마찬가지다. 한자로는 강제의 제도 물가 ‘저(渚)’를 씀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모두라는 뜻의 ‘강제(江諸)’를 썼음이 두드러진다.


‘수(水)-’의 경우, 홀로 냇물 이름으로 쓰인 것은 파‘수(巴水)’뿐이다. ‘파수’의 ‘파(巴)-’는 ‘뱀사(巳)’를 기본으로 하는 글자인데 이르자면 파수는 뱀같이 생긴 모양으로 흐르는 내란 뜻이다.


흔히 사행천이라 한다. 지명의 분포로 볼 때 ‘뱀 사(巳)’ 혹은 ‘파(巴)’가 지명소로 쓰이는 보기들이 폭 넓은 분포를 보인다.11) 영주 지역에 비하여 ‘-진(津)’ 계와 ‘-탄(灘)’ 계 지명이 많고 아울러 샘이나 우물을 이르는 ‘-천(泉)’ 계와 ‘-정(井)’ 계 지명의 분포가 많다.


영주의 ‘내기(奈己)’와 제천의 ‘내토(奈吐)’와 함께 영월의 옛 이름인 ‘내생(奈生)’이 있다. 그러면 영월 지역의 냇물과 상관을 보이는 한자 계열의 땅이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3) 영월 지역의 땅이름

가. (水-) : 수회동(水回洞)(남면연당), 수회촌(水回村)(남면토교)

나. (川-) : 오무천(烏舞川)(영월영흥), 문천리(文川里)(영월문산), 덕천(德川)(하동대야), 직동천(稷洞川)(중동직동), 상천곡(上川谷)(중동직동), 달천(達川)(상동내덕), 하천평(下川)(상동천평), 도천리(桃川里)(주천도천), 만천(滿川)(주천도천)

다. (江-) : 금강정(錦江亭)(영월영흥), 서강(西江)(영월방절)

라. (浦-) : 청령포(淸?浦)(영월방절), 덕포(德浦)(영월덕포)

마. (灘-) : 장탄(長灘)(영월문산), 용탄(龍灘)(하동각동), 광탄(廣灘)(서면광전)

바. (池-) : 만지(滿池)(영월거우)

사. (泉-/井-) : 영천(靈泉)(영월장릉), 천곡(泉谷)(하동주문), 산정(山井)(서면후탄), 주천(酒泉)(주천주천)

아. (기타) : 영흥리(永興里)(영월영흥), 금봉연(金鳳淵)(영월하송), 어라연(魚羅淵)(영월거운), 양연(楊淵)(남면연당), 연당(蓮塘)(남면연당), 용연(龍淵)(하동외룡), 팔계(八溪)(영월정양)


영월은 본디 ‘내생(奈生)’에서 비롯하여 ‘내성(奈城)’으로 다시 영월로 바꾸어 불렀다. 한자계의 지명분포를 보면, 동강과 서강으로 흘러드는 영흥리와 하송리 어름에서 동강과 서강이 합쳐지는바, 이 부근의 지역에 강과 관련한 지명이 많을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흥의 ‘영(永)-’은 말 그대로 동강과 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서 흐른 곳을 상징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경상도 영천(永川)이 남천과 북천이 만나 흐르는 이수삼산(二水三山)의 고장이라 함과 같은 맥락이다.


3.2. 음독 계열의 지명 분포

한자의 소리를 빌려다 적는 지명은 기본적으로 본디 우리말일 가능성이 높다. 먼저 소리에서 뜻으로 발달하여 가는 글자 빌려 쓰기의 순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기(奈己)’나 ‘내생(奈生)’, 그리고 ‘내토(奈吐)’의 ‘내(奈)-’는 우리말이다. 기원적으로 물을 바탕으로 하는 형태로 보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표기상의 변이형 ‘매-미-무(물)-못’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14) 영주지역의 땅 이름

가. (내-) : 새내(단산?사천), 사느래(문수적동), 아치나리(鵝川문수적서), 달내(이산서천), 시낼(新川평은용혈)

* 正月나릿므른아으어져녹져?논?(동동)

나. (매-) : 내매(乃梅이산신천), 내매(內梅평은천본)

* 買忽-水原 薩買-淸川 甘買-林川(삼국사기)

다. (미-) : 미곡동(彌谷洞 영주문수), 미곡동(味谷洞 영주풍기)

* 買召忽 - 彌鄒忽(삼국사기)

라. (무/못) : 무섬(평은 수도), 자래못골(문수적서), 못골(순흥지동?장수성곡)


뜻은 같으면서도 서로 다르게 쓰인 ‘내-’의 변이형이 ‘나리-나르-낼’과 같이 쓰임을 알 수 있다. ‘내-’와는 그 형태가 완전히 다르지만 같은 ‘물(水)-’ 계의 형들이 있음도 알게 된다. 이르자면 ‘물-매-미-못’ 계이다. 고구려 지명에서 ‘매(買)- 수(水)’의 대응은 앞에서 제시한 각주 (1)과 같다.

그러나 흔히 고구려 지명의 후부지명소로서 쓰이는 것은 ‘천(川)-’ 계이니 그 뜻으로 볼 때 ‘내-’계가 더 넓은 분포를 보인다.

그럼 제천의 경우는 어떠한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15) 제천 지명의 분포

가. (내-) : 한내(금성구룡), 너부내(덕산광천), 성내(덕산도천), 모라내(제천영천), 거믄들내(송학무도), 높은다리내(금성동막)

나. (매-) : 내매(內梅 수산지곡)

다. (물/무-) : 노루물(獐井금성강제), 물촌이(덕산성암), 물태리(勿台里청풍물태), 한내물재(수산고명), 무도리(송학무도)

라. (기타) : 못골(덕산선고), 모산(제천모산), 개여울(한수포탄)


이 지역에서는 ‘내-’를 중심으로 하며 ‘물-무-매-못’ 계의 지명이 많은 분포는 아니지만 눈에 뜨인다. 특히 ‘내-’ 계는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내-’를 훈으로 하는 한자를 쓸 경우라면 거의 예외 없이 ‘-천(川)’을 쓴다. 이는 고구려 지명의 후부 지명소로서 대표적인 보기라고 할 것이다. 후대로 올수록 ‘-천(川)’ 계가 남부지역에도 많은 분포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영주의 ‘내(奈)-’처럼 ‘나리-날-낼-느르’ 계의 보기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제천과 영주와 함께 소백산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 지역에 자리 잡은 영월의 경우는 어떠한가를 알아보도록 한다.


(16) 영월의 지명 분포

가. (내-) : 덕내(하동대야), 으내골(중동직동), 아시내(상동천평)→안새내(서면신천)→새냇돌(서면신천)→바깥새내(서면신천), 되내(桃川)?느지내(滿川)<주천도천>, 금마내(주천금마), 병지내(주천법흥), 지르내(하동예밀), 가르내(중동화원), 대내(영월덕포)

나. (무-) : 무도리(남면토교), 무내리(文川영월문산), 물도리(남면연당) 물골(영월방절), 물거리(영월영흥)

다. (-여울) : 살담여울(남면북쌍)


한자와의 대응 관계로 보아 ‘내-’ 계가 후부 지명소로서 폭넓게 분포하여 쓰이고 있다. -여울은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을 이르는데 이것도 ‘내-’의 범주에 넣었다.


3.3. 언어 지리적인 해석

앞에서 지명소 ‘내-’의 분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럼 영주를 포함하는 이 세 지역의 지명 분포의 경향은 어떠한가.

먼저 영주의 경우, <그림 1>에서와 같이 훈독 계열에서는 고유어 계통의 ‘내-’와 ‘물-’ 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영주 단산면의 사천(沙川)이 가장 대표적인 보기인데 고유한 우리말로는 ‘새내’라 한다. 이 유형으로는 모두 8 개인데 이 가운데 이산면과 평은면의 ‘내매’가 눈에 뜨인다. 이산의 ‘내매(乃梅)’와 평은의 ‘내매(內梅)’는 서로 ‘내-’의 한자가 다르다. ‘내매(乃梅)’에서 ‘-매(梅)’는 다른 지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명에서 물을 뜻하는 물의 변이형으로서 쓰인 한자가 아닌가 한다.

 

 

.(지도 보기: ○내 ㆁ물 ▲천(川) □수(水) ▨계(溪) ■기타)


이에 못지 않게 오히려 더 많은 분포로 ‘-수(水)’ 계 지명(8개)이 쓰이고 있다. 한자의 기원을 보면 ‘수(水)’나 ‘천(川)’이나 같은 글자꼴에서 비롯하였다. 그 밖에도 ‘-계(溪)’ 계 지명(3 개)도 쓰이고 있다.


그러면 ‘내매’는 곧 냇물이란 말이 된다. ‘내성천(乃城川)’은 1914 년 일본의 강점기에 행정 구역을 고칠 때 ‘내성천(奈城川)’을 ‘내성천(乃城川)’으로 바꾸어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뒤에 같은 뜻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 천(川)’의 개신 형이 쓰이어 ‘-내’형은 이산면과 문수면, 그리고 평은 면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단산면의 ‘새내’는 사천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이는바. 언어 섬처럼 떨어져 쓰이고 있다. ‘-내’ 형 가운데 주목할 것은 ‘나리-내’의 관계다. 문수면의 ‘아치나리(鵝川)’이 보이는데 ‘나리-나이-내’와 같은 과정을 거친 ‘-내’로 상정할 수가 있다.


이와 함께 한자 지명 계열의 보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명의 산포도로 볼 때 ‘-천(川)’ 계의 지명(18개)이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 주로 산포된 지역은 영주의 부석면과 단산, 그리고 영주시와 평은면으로 모여 있다. 이와 함께 봉화의 물야(物野)와 봉현에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야의 본디 표기는 물야(勿野)였다. 뒤에 글자를 다시 고쳐 물야(物野)로 하였다. 이른바 뜻이 보다 좋고 아름다운 가호자로 고쳐 쓴 것이다. 물야의 속뜻은 물들〔水城〕이란 말이다, 내성천으로 이루어진 들판에 많은 생산을 할 수가 있으니 그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소백산의 선달산과 어래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산의 서남으로 흐르는 영월의 ‘내생(奈生)’의 경우는 어떠한가.

 

 


영월의 본디 이름이 ‘내생(奈生)-내성(奈城)’이었으니 이 또한 영주와 같이 ‘-내(奈)’와 무관하지 아니하다. ‘-내’ 계 지명(9개)이 쓰이고 있다. 주로 상동면과 하동면, 그리고 주천면 쪽에 분포되어 있다. 이와 함께 우리말식 지명은 ‘-물’ 계 지명(3개)이 보인다. ‘-물’의 변이 표기로 보이는 ‘-무’ 계 지명도 보인다.


한자 지명의 경우, ‘-천(川)’ 계 지명(8개)이 영주의 지역에 비하여 보기들이 적다. 한편 ‘-수(水)’ 계 지명(2개)은 적고 오히려 ‘-계(溪)’ 형의 지명(4개)이 더 많이 쓰인다.


영주의 영모(永慕)와 같이 영월의 영천(永川)과 영흥(永興)은 모두 두 물줄기가 만나 모이는 곳으로 정선 쪽에서 흘러드는 동강과 주천 쪽에서 흘러드는 서강이 하송리에서 만나 하나의 성을 이루고 있음은 영주의 지형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제천의 경우를 알아보도록 한다. 제천의 옛 이름은 ‘내제(奈堤)’에서 비롯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르자면 제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평들에 안정적으로 물을 대도록 한 시설이 바로 의림지 못이었다. 제천하면 의림지를 떠올린다. 박의림이란 이가 지었다고도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제천의 옛 지명은 다름 아닌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 물을 가두어 쓸 수 있도록 한 저수지 둑이었다. 하긴 당시에 농사만큼 큰 산업이 달리 있었는가.

 

 


‘내제’의 ‘내(奈)-’가 내를 뜻함은 앞에서 일렀거니와, ‘-내’ 계 지명(8개)은 물과 관련한 지명(33개) 가운데 4 분의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명의 후부 지명소로 쓰이고 있으며 ‘-물’ 계 지명(3개)은 명맥만 잇고 있다.


‘-내’ 계가 자리한 것은 주로 수산과 덕산 쪽이어서 월악산에서 비롯하는 냇물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한자 계열의 경우, ‘-천(川)’ 계 지명(25개)이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덕산면으로 월악산에서 발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어 ‘-수(水)’ 계의 지명(5개)은 수산면이다. 주로 덕산과 수산이어서 큰 산 기슭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천의 지명은 ‘-천(川)’ 계와 ‘-수(水)’ 계 지명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내’ 계 지명이 공식적으로는 ‘-천’ 계 지명에 밀리어 한자계 지명 확장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옛 지명에 지명소 ‘내(奈)-’를 공유하는 영주와 영월, 그리고 제천의 지명분포로 볼 때, 기원적으로 ‘내-’는 냇물을 뜻하는 것이지만 한자 지명소 ‘-천(川)’ 계에서 비롯하는 개신파의 영향을 받아 ‘-천’ 계의 지명이 두드러진 분포를 보인다. 이와 함께 ‘-수(水)’ 계 지명이 많아 보이는 것은 쓰이는 글자의 계통으로 보아 ‘-천(川)’과 같은 글자이나 서로 다른 변별력을 지닌다.


적은 보기이기는 하나 ‘내(奈)-’의 형태변이의 과정으로 ‘*나리(날이)>내’에서 ‘*나리’를 ‘내-’의 앞선 형태로 상정할 수 있다.

 

4. 맺음말


우리는 앞에서 영주와 영월, 그리고 제천의 옛 이름이 공유하는 지명소 ‘내(奈)-’의 의미가 무엇이며 언어 지리적으로 어떤 분포와 산포도 경향을 보이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제 그 속내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가) ‘내기(奈己)’와 ‘내생(奈生)’, ‘내제(奈堤)’에서 드러나는 지명소 ‘내(奈)-’의 속뜻은 우리말 ‘내(川)’ 이다. 달리 ‘물(水)’로도 대응된다. 이러한 가능성이 지명의 대응에서 찾아짐은 물론, ‘내(奈)’의 한자 자원으로 보아도 ‘큰(大) 물(水)’의 합성자이니 그럴 개연성이 높다.

(나) 분포의 유형은 한자계가 있고, 고유어계가 있다. 앞의 것으로는 후부 지명소 ‘-천(川)’과 ‘-수(水)’ 계가 있고, 뒤의 것으로는 ‘-내’와 ‘-물’ 계가 있다.

(다) ‘내-’ 계를 중심으로 쓰이던 고유어계의 지명 분포가 한자계 후부 지명소 ‘-천(川)’의 개신 세력에 밀려 영주의 일부 지명에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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