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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245] 풍기읍 백2리 속계·미안마을

단산사람 2020. 4. 26. 16:17

 우리마을탐방[245] 풍기읍 백2리 속계·미안마을 [탐방일 2019.1.25]

두 내(川) 사이에 마을 형성, 빨래하기 좋다하여 ‘속계(涑溪)’

조선 말 김해 김씨 일족이 정착 집성촌 형성
풍기 최초 대규모 비닐하우스 인삼재배 시도


속계마을 전경


미안마을의 봄
속계교(涑溪橋)

풍기읍 백2리 속계 가는 길
풍기읍 십자거리에서 죽령방향으로 향한다. 풍기 119안전센터에서 1km 가량 올라가면 백동교차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백2리 속계마을이고, 오른쪽은 미안마을이다.

신설 중앙선철도 교각 아래로 난 속계교(涑溪橋)를 건너면 솔마을황토펜션이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마을이 속계이다. 지난달 21일 속계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이병팔 이장, 임휘원 노인회장, 김광훈 노인회 총무, 장숙자 씨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미안마을 전경

역사 속의 속계마을
진흥왕이 18세가 되던 해인 551년 신라는 죽령을 넘어 남한강 상류쪽(단양) 고구려 영토를 공격한다. 이 때 죽령 아래 (풍기지역) 신라의 군사기지 기목진(基木鎭)을 설치했다. 군사기지 ‘기목진’은 통일신라 때 현(縣,행정구역)의 역할을 하다가 풍기의 옛 지명이 됐다.

고려 때는 기주(基州)로 개칭됐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기천현(基川縣)이 됐다. 1414년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李珦)의 태(胎)를 은풍현 명봉산에묻었는데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그 보상으로 은풍(殷豊)의 풍(豊)자와 기천(基川)의 기(基)자를 따 풍기(豊基)라 하고 군(郡)으로 승격됐다.

백리(白里) 지역은 160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서부면 백야동리(白也洞里)가 됐다가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속포동(涑浦洞,속계)이 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풍기면 백리에 편입됐다가 얼마 후 백2리로 분리됐다. 1973년 풍기읍 백2리, 1980년 영풍군 풍기읍 백2리, 1995년 통합 영주시 풍기읍 백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백2리는 남원천을 사이에 두고 내(川) 동쪽은 ‘미안마을’이고 서쪽은 ‘속계마을’이다. 예전에 백1리로 올라가는 계단식 논둑에 억새가 많았다. 가을이면 억새꽃이 지천으로 피어 허옇게 보였고, 밤이면 허연 물결이 바람에 일렁거렸다고 한다. 그래서 ‘허옇다’에서 유래하여 ‘희여골’이라 부르다가 흰 백(白)자 백리가 됐다. 미안마을은 희여골 남쪽 산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미안에 사는 정보성(89) 어르신은 “원래 산 안에 있다하여 뫼 산(山)자에서 ‘뫼’자를 따고 안 내(內)자에서 ‘안’자를 따 ‘뫼안’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미안’이 됐다”고 말했다. 백2리 본마의 속칭은 속계(涑溪)다. 지금도 모두 ‘속계’라 부른다.

김광훈(64) 총무는 “속계는 소백산에서 발원한 큰 물줄기(남원천)와 마을 남서쪽 찬물내기에서 솟아나는 물줄기(소하천) 등 두 물줄기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라며 “당시 이 마을 선비들이 모여 물줄기가 많아 빨래하기 좋은 마을이라 하여 헹굴 속(涑)자를 써 속계(涑溪) 또는 속포(涑浦)라 불렀는데 행정구역 상 ‘속포’가 되고, 사람들은 ‘속계’라 불렀다”고 말했다. 27살 새댁 때부터 속계에 살았다는 김필녀(89,1930生) 할머니는 “예전에는 제방이 없어 마을이 온통 거렁이었다”며 “바깥양반이 마을 일(이장)을 볼 때(1979년) 마을북편에 제방을 쌓은 후 문화주택 20여 호를 지었다”고 말했다.


들 가운데 형성된 마을
우리나라 마을은 대부분 산자락이나 산줄기가 감싸 안은 아늑한 곳에 자리 잡았으나 속포마을은 들판에 자리 잡았다. 마을 남쪽 들 가운데 우뚝 솟은 작은 산봉오리를 마산(馬山)이라 하고 그 북편에 있는 들을 ‘적전들’이라고 부른다.

옛 문헌에 왕건이 고려를 건국(918년)했으나 견훤이 항복하지 않자 왕건이 직접(936년) 군사를 이끌고 죽령을 넘는다. 죽령을 지키던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이곳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하여 ‘접전들’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적전들’로 발음이 변했다고 한다. 왕건은 이곳(마산=등항성)에서 7일을 기다려 견훤의 항복(降伏) 문서를 받았다 하여 등항성(登降城,왕건의 가마가 머문 곳)이라 부른다. 

이병팔(55) 이장은 “우리마을은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선대 어르신들께서 ‘조선말경 마을이 개척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은 모든 농촌이 인구 감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우리마을은 최근까지 귀촌이 늘고 있으며, 80여 가구에 150명이 사는 큰 마을”이라고 말했다.


김해김씨 집성촌
속계에서 태어나 미안으로 시집간 김경임(85,1934生) 할머니는 “저(김해인)의 선대는 원래 밀양에 살았는데 1890년경 조부님과 그 형제들이 이곳에 터를 잡아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됐다”며 “1970년대까지 8촌 이내 친척 30여 세대가 살았고, 마을 전체는 12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학업 따라 직장 따라 도시로 많이 떠났다”고 말했다.

50년 전 속계로 이사 왔다는 김영대(69) 씨는 “저는 속계 김해김씨와 갈래는 다르지만 중시조는 같은 종친이라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다”며 “우리 마을은 들이 넓고 물이 흔한 장점이 있고, 시내가 가까운 잇점도 있다. 하루종일 햇빛을 많이 받아 달고 색깔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길서연 씨

과수원에 둘러싸인 마을
도솔봉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과수원에 둘려 싸여 있고 길은 모두 과수원길이다.

서울 살다가 신혼 때 남편 따라 속계에 와서 살게 됐다는 길서연(54,이장부인) 씨는 “처음엔 닭똥냄새가 지독했지만 석천(石川) 맑은 물과 과수원길이 마음에 들었다”며 “인심 좋고 지극한 효심이 마을의 전통이요 자랑”이라고 말했다. 임명덕(47) 새마을 지도자는 “예전에 마을 주변은 논과 밭이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점차 과수원으로 바뀌었다”며 “평지 과수원이어서 작업 환경이 좋고 생산량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우스 인삼재배

대규모 비닐하우수 인삼재배
마을의 자랑 이야기를 하다 조순옥(74) 씨가 “우리마을에는 대형 비닐하우스에서 인삼재배하는 집이 있다”며 “김경임 할머니댁”이라고 말했다. ‘참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 현장에 가볼 것을 청했다. 김숙자 씨 안내를 받아 김경임 할머니를 모시고 미안마을 하우스 인삼재배 현장으로 갔다. 초등학교 체육관만한 대형하우스 3동이 있다. 첨단시설과 규모에 놀랐다.

정보성(89) 어르신은 “아들(건영)이 하고 있는데 풍기 최초 대형하우스 인삼재배”라며 “작년(2018)에 시설을 하고 토양소독을 한 후 올해 첫 파종하여 지금 싹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건영(63) 씨는 전화 통화에서 “선진지 시찰과 농업기술센터, 인삼연구소의 지도를 받아 비닐하우스 무농약인삼재배를 시작하게 됐다”며 “최신 시설과 기술이 적용되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조정희·김월년·허춘희 할머니
박승춘·조순옥·강선녀 할머니
속계정(涑溪亭)
새로 지은 마을회관
속계마을 사람들
이명환 씨

속계마을 사람들
마을 초입에 속계정(涑溪亭)과 마을회관이 있다. 임휘원(81) 노인회장을 마당에서 만났다. 임 회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으면서 “3년 전 회관을 새로 신축했다”며 “현대식 양옥에 넓은 거실과 방이 있고, 편리한 주방, 회장실, 사물함, 식탁 등을 실제 생활에 편리하도록 꾸몄다”고 말했다.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장숙자(73) 씨가 기자에게 커피를 권하면서 “오늘도 마을 어르신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며 “이렇게 매일 점심을 같이 먹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김기자(58) 부녀회장은 “노인회장 사모님(김숙자)께서 직접 장을 봐서 어르신 점심을 매일 챙기신다”며 “속계는 선대로부터 경로효친을 생활화해 온 마을로 어르신들을 잘 모시는 효(孝)의 마을”이라고 말했다.

이병팔 이장은 “속계는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 친구들이 많고 유치원·초등학생도 8명이나 있어 활기 넘치는 마을”이라며 “농업의 기술화·대형화·기계화·고소득을 꿈꾸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단호박농장을 경영하는 이명환(67) 씨는 “속계는 과수 중심 농업이 발달한 마을”이라며 “저는 단호박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서울·부산으로 출하한다”고 말했다.

김월년(90,미안댁) 할머니는 “이병팔 이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시고, 임휘원 노인회장님이 노인회를 잘 경영해 주셔서 참으로 고맙다”며 “특히 매일 점심을 해 주시는 회장 사모(김숙자)님과 어버이날 행사 등 마을 행사 때마다 수고가 많은 김기자 부녀회장과 새댁네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병팔 이장
임휘원 노인회장
김광훈 노인회 총무
김기자 부녀회장
임명덕 새마을지도자
정보성 어르신
김필녀 할머니
김경임 할머니
장숙자 씨
김영대 씨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