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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88] 장수면 반구2리 ‘덕바우’

단산사람 2018. 7. 9. 20:24

사람에 이로움(德) 준 바우(岩)가 많은 마을 ‘덕바우(德岩)’

우리마을탐방[188] 장수면 반구2리 ‘덕바우’


임진왜란 때 김해김씨가 마을 개척
김해김씨·경주손씨·반남박씨 세거지

덕바우 마을전경

장수면 덕바우 가는 길
덕바우 마을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연화산 정상 서쪽 기슭에 있다. 장수면사무소에서 시내방향으로 500m 가량 가다가 독질바우 마을 맞은편 대각사 표지판 방향으로 1km쯤 올라가면, 400년 수령 동수나무 안쪽으로 자리 잡은 마을이 덕바우다.

집들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옛 담배건조실도 보인다. 지난달 11일 덕바우에 갔다. 독질바우에서 김성호 이장과 김종철 노인회장을 만나고, 덕바우경로당에서 손대원·손정원·김종록·장정웅·손학원 어르신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덕바우(팔두바우)

역사 속의 덕바우
덕바우는 역사적으로 독립된 행정구역을 갖지는 못했으나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이다.

반구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지할 때 영천군(榮川郡,옛영주) 서부면에 속하게 됐다.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리방(里坊)으로 정비할 때 영천군 두전리(豆田里) 두전방(豆田坊)에 속했다가, 1700년경 군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두전면 두전리에 속하게 됐다. 1896년(고종3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두전면 반구동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장수면 반구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성호(60) 이장은 “반구2리는 덕바우에 35가구, 독질바우에 15가구, 문화마을에 20가구 등 70가구에 150여명이 살고 있다”면서 “400년 역사를 가진 덕바우 마을은 김해김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나중에 경주손씨와 반남박씨가 입향하여 3성이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덕암 성황단 동수나무
담배건조실

지명유래
마을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큼직한 바우가 여럿 보인다.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팔두바우는 10여명이 둘러 앉아 새끼를 꼴 수 있을 만큼 넓다. 어느 집은 바우를 주춧돌삼아 반석 위에 집을 지었고, 바우가 대문이 되기도 하고 담장이 되기도 했다. 마을 뒷산 자락에는 집채보다 더 우람찬 바우도 보인다. 아마도 바우가 많아 ‘덕바우’ 마을이 된 것 같다.

이 마을 원로 손준원(83) 어르신은 “우리 마을 팔두바우는 일꾼들의 쉼터이자 공동작업장”이라며 “바우에 둘러 앉아 멍석을 만들기도 하고, 영을 엮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보통 바우 위에서 잠을 자고나면 입이 돌아가는 등 부작용이 생기는데, 우리 마을 바우는 사람에게 천지기운을 주어 힘센 장정(壯丁)이 됐다. 그래서 선조들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바우’라 하여 ‘덕바우(德岩)’라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덕바우 맞은편에 있는 마을은 독질바우다.

이 마을 남쪽 도로변에 독(옹기)을 닮은 바위가 있어 ‘독질바우’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덕바우에서 한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진고개’라 부른다. 고개가 길어서 ‘긴고개’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진고개가 됐다고 한다. 지금 진고개는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덕암 경로당

김해김씨 덕바우 개척
조선 때 영천에 사는 한 선비가 연화산(蓮花山) 응석사(凝石寺)에서 과거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연화산 서쪽 양지바른 곳에 은거해 있다가 이곳에 눌러 앉아 마을 개척하게 됐다. 김 선비에 대한 전설은 구전으로만 전해 올 뿐 기록이 없어 아쉽다.

이 마을 김종철(77) 노인회장은 “저의 선조께서 임진왜란 때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여러 성씨가 하나 둘 옮겨와 살면서 차차 마을이 형성됐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후손 김종록(79) 씨는 “제가 어릴 적에는 김해김가만 30가구가 넘었다”면서 “저의 고조부님 후손만 해도 150명이 넘는다. 김해김씨 덕암문중은 영주에서 가장 큰 집성촌”이라고 말했다.

독질바우

경주손씨 입향 내력
경주손씨 덕암파 후손 손학원(73,영주동) 씨는 “덕바우 경주손씨는 별좌공파로 1세 경원(敬源) 下-4세 사장(士章,別座公) 下-9세 도(禱) 下-12세 유성(有聖,德岩波祖) 선조로 세계를 이어왔다”면서 “현재 후손 21세, 22세, 23세 150여 세대가 전국 각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 출신 손광웅(80,초등교장) 교장은 “저의 선조들은 경주를 중심으로 사셨는데 9세 도(禱,1547-1610) 선조께서 임진왜란 때 경주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시다가 당시 안동부 감천현 미석으로 피난한 후 의병활동을 계속하셨다”며 “도 선조의 증손 12세 유성(有聖,증호조참판,1627-1684) 선조께서 벼슬을 마치고 낙향하였다가 1670년경 미석에서 덕바우로 이거하여 덕암 입향조가 되셨다”고 말했다.

손정원(75) 씨는 또 “유성 선조께서 입향하신 후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1960년대에는 30여 호가 사는 집성촌을 이루었다”며 “산업화 이후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현재는 10여 호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좌승지 박사기의 묘
장정웅 고택(150년)
마을 뒤 큰바우

반남박씨 덕바우 입향
마을 가운데 솔숲이 아담하여 가봤더니 묘 자리였다. 좌청룡 우백호를 잘 갖춘 명당자리로 보인다.

마을 안길에서 만난 장정웅(76) 씨께 “누구의 묘냐?”고 물으니 “반남박씨 묘”라면서 “이곳 집터와 산 모두 반남박씨 소유”라고 했다. 묘소 상석(床石)을 살펴보니 「증좌승지반남박공휘사기지묘(贈左承旨潘南朴公諱嗣基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이 묘의 주인은 반남박씨 판관공파 15세 사기(嗣基,1469-1727)이다. 사기는 소고 박승임의 현손으로 한정에 살다가 사후 이곳에 묻혔다. 사기의 후손 중 현손 시원(時源)과 시원의 손자 명수(明壽)는 문과에 급제하였고, 진사도 6명이나 나왔다.

반남박씨판관공파 박춘서 도유사는 “반남박씨 덕바우 입향조는 16세 문섬(文暹,1688-1768)이다. 문섬은 사기의 아들로 1730년경 덕바우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됐다”면서 “반남박씨 덕암 종중은 판관공 형(珩,10세)-소고 승임(承任,11세)-녹(녹)-삼락당 종무(종茂)-합(합)-사기(嗣基,15세)-입향조 문섬(文暹,16세)-문섬의 아들 삼형제 경익(慶益)·희천(希天,진사)·명천(命天)으로 세계를 잇는다”고 말했다.

덕바우 출신 인물들
덕바우 마을 사람들은 선조들이 남긴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학문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신교육이 시작되기 전에는 골목마다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학교교육이 신작된 후에는 자녀 교육 뒷바라지에 성심을 다했다고 한다.

손대원(80) 어르신은 “우리마을 출신 인물로는 김석기(고) 교장, 김병기(고) 교장을 비롯하여 손광웅(80) 교장, 손용호(70) 교장, 손철원(62) 국민은행지점장, 하바드대 심리학전공 손명호(50대) 박사, 손용석(44) 의사협회 행정관, 장순길(47) 부산역간부 등 각계각층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말했다.

또한 반남박씨 덕바우 종중에 의하면 “주손 박찬정 씨는 서울공대를 나와 건축설계 전문가로 활동 중이고, 그의 누나 박찬자 씨는 영덕교육장을 역임했다. 또 박승규(고인)·류단(80) 부부의 아들 박득서(45,부이사관) 씨는 행정고시 28회로 중앙부처에 근무하고 있으며, 그의 누이 박지향(54,서기관) 씨는 서울시에, 형 박태서(52) 씨는 서울메트로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덕바우 사람들

 

김성호 이장
김종철 노인회장
손대원 어르신

 

류단 할머니
김종록 씨

 

손정원 씨
장정웅 씨

 

김숙자 씨
전석구 씨
정부교 노인회총무

하회마을에서 덕바우로 시집 왔다는 류단(하회류씨) 할머니는 “예전에는 마을길이 소발이가 겨우 다닐 정도로 좁은 길이었고, 집은 모두 초가집이었다”며 “새댁시절 부녀회장으로 일할 때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개량을 했다”고 말했다.
덕바우 사람들은 바우(岩)의 덕(德)으로 자손이 번성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장정웅 씨는 “해마다 정월보름날이면 동수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서낭제)를 지낸다”면서 “마을의 길복은 바우에서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50년 고택에 살고 있는 장정웅·김숙자(76) 부부는 “설 쇠로 부산 아들집으로 간다”면서 “예전에 설 준비하러 영주장 갈 때는 진고개 넘어 한정으로 가서 외나무다리 건너 시내로 갔는데, 지금은 행복택시가 있어 넘넘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부 때부터 덕바우에 살았다는 전석구(76) 씨는 “마을에는 팔두바우, 용바우, 탕건바우, 갓바우 등 바우가 많다”며 “모두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바우”라고 말했다.

정부교(70) 노인회총무는 대각사 신도회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마을과 친해져 덕바우 사람이 됐다며 “덕바우는 덕이 많은 마을”이라며 “오랜 세월 덕을 실천해 온 마을사람들에게는 ‘덕바우정신’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