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187]안정면 내줄리 ‘웃줄포’

단산사람 2018. 7. 9. 20:21

사육신(김녕김공 문기)의 후손 세거지 내줄촌(內茁村)

우리마을탐방[187]안정면 내줄리 ‘웃줄포’


줄포(茁浦)의 원조(元祖)는 ‘웃줄포’ 마을
글로벌 인재 배출한 풍요로운 선진 농촌

웃줄포 마을전경
웃줄포 동수나무

안정면 웃줄포 가는 길
안정면사무소 남쪽 안정교차로에서 줄포방향으로 직진한다. 600m쯤 가면 동명마을이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내줄리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이 ‘점마’다. 점마 삼거리에서 우측 서쪽방향으로 1km쯤 올라가면 매봉산자락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이 줄포의 원조 웃줄포 마을이다.

지난 4일 내줄리에 갔다. 이날 내줄노인회관에서 김연도 이장, 반윤학 노인회장, 김미순 부녀회장, 백현철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줄포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내줄마을 표석

역사 속의 내줄리
내줄리 지역은 예로부터 풍기에 속했다. 신라 때는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때는 기천현(基川縣)이라 부르다가 1450년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됐다. 조선 중기(1700년 경)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생고개면(生古介面) 내줄포리(內茁浦里)가 됐다가 1896년(고종33) 행정구역 개편 때 생고개면이 생현면(生峴面)으로 바뀌면서 생현면 내줄동(內茁洞)이 됐다. 1914년 일제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의 생현면, 동촌면, 용산면을 통합하여 새로운 안정면(安定面)을 만들었다. ‘안정’은 풍기의 별칭(속칭)이었다. 이 때 영주군 안정면 내줄리가 되었다가 1995년 영주시 안정면 내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연도(56) 이장은 “내줄리는 넓을 안정평야를 문전옥답으로 쌀생산 중심마을이자 선진농업의 상징적 마을”이라며 “웃줄포에 40가구, 점마 30, 동명 30 등 100여 호에 250명이 산다. 비교적 젊은 세대가 많은 편으로 대농(大農), 축산, 야생화 등으로 소득이 높다”고 말했다.

지명유래
줄포는 안정비상활주로 서편 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면서 상줄리줄포-솔안마을-나주정씨종택-서당마을-너서리(汝西里)-매름마을-점마-웃줄포-동명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마을이 모두 ‘줄포’이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남원천이 마을 앞을 흐른다. 예전에 이 지역은 지대가 낮아 습지(늪)가 많고 풀이 무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풀이름 줄(茁)자’에 ‘물가 포(浦)자’를 써 줄포(茁浦)라고 불렀다. 조선 때 상줄리 줄포는 영천군(옛영주) 가흥면 줄배방(茁排坊)이었고, 안정면 줄포는 풍기군 생고개면 내줄동방(內茁洞坊)이었다. 지금도 상줄리 지역을 ‘아랫줄포’, 내줄리 지역을 ‘웃줄포’라 부른다.

줄포의 원조는 웃줄포
줄포지역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은 ‘웃줄포’이다. 웃줄포 김병년(69) 노인회 총무는 “예전에 영월엄씨가 마을을 개척하고, 김녕김씨와 해주오씨가 입향하여 3성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박순희(80) 할머니는 “예전에 엄 첨지(정3품 벼슬)가 살다가 대가 끊어졌으나 재산을 마을에 남겨, 지금도 마을에서 벌초와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김녕김씨 후손 김명규(82) 어르신은 “김녕김씨 내줄문중은 사육신 김문기(9세손) 선생의 후손들로 1540년경 저의 13대조 계정 할아버지께서 내줄촌에 입향하신 후 그 후손들이 500여년동안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 왔다. 1960년대에는 40여호가 살았다”고 말했다.

입향조 김계정의 묘

사육신 김문기 후손 세거지
내줄의 김녕김씨는 시조 김알지下, 중시조 경순왕(시조의 28세)下, 관조 시흥(時興,경순왕의 11세)下, 사육신 문기(文起,관조의 9세)下, 내줄 입향조 계정(季正,문기의 현손,13세)으로 세계를 이어왔다.

김춘영 어르신

웃줄포 김춘영(80,26세손) 어르신은 “선대의 내줄리 입향 내력은 한고개에 있는 계정 선조님 비문에 잘 나와 있다”고 했다. 이튿날 한고개 계정의 묘에 갔다. 묘비에는 ‘증통정대부용양위부호군김녕김공계정(季正,小菴公)지묘’라 새겨져 있다. 비문에 보면 「고조부는 이부상서(吏部尙書)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선생 휘 문기(文起,1399-1456)이고, 증조부는 군수공 휘 현석(玄錫)이며, 군수공의 차자는 의금부사 휘 번◯이다. 단종복위를 위한 비밀결사를 지휘했던 백촌(공조판서) 선생은 아들 현석(영월군수) 그리고 사육신과 함께 1456년 순절했다. 백촌 선생의 현손인 계정은 아버지를 따라 소백산 순흥부 북십리 점동(店洞,순흥덕현 추정)으로 낙남하여 두문불출 초근목피로 궁벽한 삶을 살다가 기주(옛풍기) 남쪽 내줄촌(內茁村)으로 이거하여 숨어 살았다」는 내용이다.

사육신 김문기는 옥천군 백야리 출신으로 142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함길도관찰사 등 요직을 역임 후 공조판서에 올랐을 때 계유정란이 일어나 단종복위를 주관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후손들은 재산이 몰수되고 노비로 전락했다. 세월이 흘러 1731년에 복관되었고,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 논의 끝에 그의 가묘가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설치됐다.

내줄 출신 인물들
이 마을 김화순(70) 씨는 “내줄리는 농촌이지만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며 “대표적인 인물로 송필현 선생과 그 아들 4형제가 있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신재균 변호사가 있다”고 자랑했다.

송우달 사장
송의달 대표
송웅달 PD

반윤학(79) 노인회장은 “이 마을 출신 송필현(宋必鉉,85) 선생은 안정국민학교 출신으로 초등교감, 교장, 학무과장, 교육장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장남 우달(宇達,59,중앙대)은 한겨레신문 비즈니스포스트 사장, 2남 의달(義達,54,서울대)은 조선일보 조선비즈 대표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인 AI(인공지능) 선도자다.

3남 명달(明達,52,서울대)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장(부이사관), 4남 웅달(雄達,48,서울대)은 ‘만리 밖의 일을 훤히 내다본다’는 뜻의 ‘KBS 명견만리’ PD”라고 했다.

또한 “송필현 선생의 증조부이신 진사 송엽(宋曄,여산인)은 풍기향교 도유사로 향시(鄕試,지방과거초시) 때 시관으로

선임됐고, 조부 송원성과 백부 송면구(冕求)는 도유사로 봉직했다는 기록이 풍기향교지에 수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안줄포 신성균(66) 씨는 “신재균(申在均,58,건국대,사법고시36회) 변호사는 저의 6촌 동생”이라며 “안정초 출신으로 철도청에 근무하다가 사법고시에 도전 칠전팔기 감동의 주인공이다. 법무법인 서해 대표변호사, 한센인 복지증진 대통령표창, 대한변협 대변인, 신지식인·변리사 등 자랑이 많다”고 했다.

동명마을 전경

동명(東明)마을과 점마
면사무소 남쪽 1km 지점(비상활주로) 도로변에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밭들’이라 불렀다. 1977년 도로 확·포장공사 때 19가구가 매봉산 동쪽 기슭으로 이주하여 ‘동명마을’이라 했다. 이 마을 박찬금(85)·정복순(85) 할머니는 “당시 이만규 면장님이 아침마다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다 하여 동명(東明)이라 이름 지었다”며 “새집 지어 이사 온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내줄리의 중심에 위치한 점마는 예전에 옹기굴이 있었고, 옹기를 파는 점방(店房)이 있어 ‘점마(店村)라 불렀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 옹기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내줄리 경로당
웃줄포 새마을회관

웃줄포 할머니 4인방

내줄리 사람들
마을회관 앞에 ‘농촌을 풍요롭게’라고 새긴 큼직한 표석이 눈길을 끈다. 백현철(59) 새마을지도자는 “안정면은 영주농업의 중심이고 내줄리는 쌀생산 중심마을”이라며 “현대 농업은 대농화, 기계화, 과학화로 경작방법이 바뀌고 있으며, 고소득 선진농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순(66) 부녀회장은 “예로부터 내줄리는 예절바른 마을로 알려져 있다”며 “예전에는 설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르신께 세배를 올렸으나, 마을회관이 건립(2007)된 후부터는 1집1음식을 가지고 와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합동세배’를 올린다. 또 지난달 4일 김선도·정몽윤·이상희 어르신 팔순잔치를 해 드리고 100세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고 말했다. 반윤학 노인회장은 “1914년 안정면이 처음 발족할 때 면사무소가 웃줄포에 있었다”며 “우리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안정면의 중심이다. 김연도 이장, 김미순 부녀회장, 백현철 지도자, 청년회장이 마을을 위해 수고가 많다. 또 경로효친을 잘 해 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후 4시경 회관에서 나와 신성균 씨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입향조가 심었다는 늙은 느티나무(수령 500년)는 몸을 지탱하기가 힘든 듯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다. 이 마을 최장수 어르신 4분이 계신 곳에 갔다. 임갑희(94)·박인숙(87)·우영옥(87)·이하임(84) 할머니로부터 웃줄포 100년 이야기를 들었다.

김연도 이장
반윤학 노인회장
김미순 부녀회장
백현철 새마을지도자
김병년 노인회총무
박찬금 할머니
정복순 할머니
김명규 어르신
박순희 할머니
김화순 씨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