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종합발전을 위한 중장기 방안 - 문화․역사․경제관점에서 -
박석홍(소수박물관장)
□ 여는 말
그러나 반대로 역기능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차제에 한 지역(local-area)이란 행정단위 구역이 때로는 인문사회적 중심생활권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해당지역의 발전저해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초생활권을 공유하는 인접지역들이 함께 공생하는 초광역 경제 생활권으로 거듭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읍단위 소도시 생활권인 경우, 외딴 오지보다는 생활에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귀촌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종전까지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목적으로 한 영구정착형 귀촌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즈음은 주말농장체험, 전원형 휴식공간 확보 등 다양한 유형의 귀촌 풍토로 바뀌는 추세이다.
정부의 ‘주5일근무제’정착으로 ‘4도(都)3촌(村)’이란 말이 유행되면서 도시생활의 찌든 때를 벗어보려고, 산이나 강을 끼고 있는 읍이나 면단위를 사전 터고름하기 위해 물어오고 찾아오기도 한다.
때로는 지인을 통해 때로는 무작정 아니면 등산이나 답사 여행길에 눈에 들어 이래저래 탐문하듯 물어보고, 다시 들르면서 제2의 삶의 처소로 결정하고 이주귀촌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이럴 때 소도시형의 풍기는 고착된 덩어리와 같은 지역이 아니라 물류의 이동이 빈번하고 사람들의 오고가는 발걸음이 잦은 생기가 넘치고 산업이 풍성한 편의위주의 삶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시의 유일한 읍단위 행정구역을 갖고 있고 풍기는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장차 미래지향적인 발전방안은 무엇인지? 한번쯤 검증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생활방식이 같고 기초생활권이 같다고 하더라도, 정책적인 필요에 의한 이웃 지역과의 협력이 밑받침이 되지 않으면, 성사는 불투명하다고 본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상대 지역과의 손익계산을 따지기 전에 먼저 무엇을 서로에게 베풀어 줄 것인가? 라는 열린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부 지역민들의 수요에 의해 추진하더라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제도적 한계나 시험적인 시도를 하는 일방의 경우라면, 힘을 하나로 결집하기 어렵다.
옛날 전제정권시절에는 향약(鄕約)과 향규(鄕規)가 있어서 지역민들의 의사결집이 가능했다.
양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를 찾아내어 장차 여론이 무르 익도록 허심탄회한 접근과 고민이 있어야 하며, 무엇이든 혼자서 하기는 어려운 시대이므로, 둘(We) 혹은 그 이상의 힘이 모여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지역문화도 역사의 과정가운데 발전해온 만큼, 역사없는 문화발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장답게 문화를 가진 고등동물이다.
일찍이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인 타일러(Tylor. E. B)박사는 문화를 “지식.신앙.법.도덕.관습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얻어지는 다른 모든 능력(습성)의 복합적 총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역시 영국의 문화사학자인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만남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풍기지역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맞대어 얘기할 시기는 된 것 같다. 풍기는 나름대로 도심지이지만, 근린생활시설(녹지대 포함)이 절대 부족한 편이다.
반대로 녹지대로 이뤄진 봉현면은 기초적인 생활에 있어 최소한의 경제생활이 가능한 공공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서로의 입장을 좁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문화.역사.경제적 입장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13년(1413년)에 기천(基川)으로 개칭하면서 현감을 두었으며, 다시 문종 1년(1451) 임금의 태실을 은풍현(신라 때 적아현) 명봉산에 봉안하게 되므로 은풍(殷豊)의 풍(豊)자를 따고 기천(基川)의 기(基) 자를 따서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어 오랫동안 한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세조 3년(1457년)에는 순흥도호부가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혁파되면서 행정구역 일부가 풍기군에 편입되었으나 숙종 9년(1683년)에 복설되면서 다시 옛 땅은 순흥에 환속되었다. 그리고 고종 32년(1895년) 칙령 제98호에 의거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이듬해인 고종 33년(1896) 칙령 제36호에 의거, 풍기군으로 독립하였다.
풍기군의 원래 경역은 현 풍기읍 전지역(동부면, 서부면, 창락면 등)과 봉현면 전지역(臥龍面, 魯佐面)과 안정면의 일부(生古介面?東村面)까지였다.
그 후, 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3호로 풍기면이 풍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0년 4월 1일에는 법률 제3188호에 의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면서 풍기읍과 9개 면은 영풍군으로 시군이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다시 1994년 8월 3일 법률 제4774호로 도농통합형시설치령에 의거 영주시 풍기읍으로 통폐합이 되면서 지금의 1읍 9면 13동의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탄생되었다.
조선지도(풍기) 비변사 인방안지도(풍기)
대동여지도(풍기지역)
풍기군의 경역변천도(영주시, 풍기도시공간 현황조사, 2012)
□ 풍기는 과연 어떤 고장인가
● 그러나 풍기읍 문헌자료상의 주산(主山)은 전해오지 않는다. 굳이 얘길 한다면, 지금의 용천동(龍泉洞) 뒷산이 되어야 한다. ● 하지만 주산의 모습을 갖추기에는 모자람이 많은 산이므로 결코 주산 노릇을 하기엔 거리가 먼 경우이다. 산강수약(山强水弱)의 지형에다 조산웅위(祖山雄衛)의 배경에 수원무처(水源無處)이기 때문에서이다.
2. 그러므로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다.
● 조선중기 인문지리학자였던 청화산인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풍기를 높이 평가하기를 “한반도 내에서 취락(聚落)가운데 이만한 복지도 드물고, 이곳에 견줘 겨룰만한 땅도 희박하다.”고 한 바 있다.
3. 주산 영봉(主山 靈峰)에도 불교식 이름의 차례를 두었다.
● 신라 경덕왕 5년 전국 산천지명을 불교식 지명으로 개칭하였다. ● 민배기봉(上元峰)을 비로봉(毘盧峰)으로, 참산내기봉(白山,큰 산)을 국망봉(國望峰)으로, 다리안 산(橋內山)을 연화봉(蓮華峰)으로, 두산(斗山)을 도솔봉(兜率峰) 등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그 중 최고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으로 붙인 것은 역시 수미산(須彌山) 최상봉에 좌정하고 있다는 비로자 나불(毘盧遮 羅佛)의 이름을 딴 것이다. ● 도솔봉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는 곳이 도솔천(兜率天)이라고 한다. 그래서 ①국망, ②비로, ③연화 다음으로 ④도솔이라 명명한 것이다.
4. 수목비보(樹木裨補)를 한 곳이다.
● 옛날 생고개(生古介)라고 불렀던 지금의 안정면 생현고갯길에서 풍기 시가지를 바라보면, 북천 남천의 합류하는 물줄기가 감춤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이 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을 애써 감추고 보태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흔적들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 앞서 밝힌 대로 水口가 열려있는 곳은 안의 좋은 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되고, 밖의 안 좋은 기가 안으로 들어 오는 경우가 생기므로, 인위적이나마 차폐과정이 필요하였다. 흔하게는 자연석 바윗돌을 소재로 사용했거나, 흙더미를 쌓아 조산(造山)을 만들어 주거나, 밤나무?소나무 등 장기수를 심어 시야를 가려주므로 은폐?엄폐를 했다.
도표 1 : 좋은 지형 도표 Ⅱ : 좋은 지형 도표 Ⅲ : 풍기사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풍기
□ 자연,지리,역사적 관점에서 본 풍기
풍기를 비롯, 순흥, 영주, 봉화, 예천 등의 영하취락(嶺下聚落)들이 모두 이 소?태백산맥이 만나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속해 있어서 선인(先人)들이 일찍부터 점찍어 두었던 천혜의 고장이기도 하다.
남북의 자오선 상에서 횡축으로 북위 36.5° 선상을 지나는 전형적인 온대지방 중부권에 속해 있어서 기후는 4계절이 뚜렷하고, 공기 맑으며, 물맛도 좋은 가거지(可居地)로 으뜸이 되는 곳이다.
소백산은 민족의 영산(靈山)답게 동북에서 서남으로 1,400여 고지의 고봉준령(문수, 선달, 어래, 형제, 신선, 국망, 비로, 연화 1?2, 두솔봉 등)들이 종주하고 있어, 서북에서 불어오는 대륙풍과 남동에서 불어오는 해양풍이 맞교차 하다 보니, 비를 뿌리는 낮은 저기압 층의 구름띠가 소백 산마루에 오래 머무를 겨를 없이 흩어지게 된다.
이런 기후조건 때문에 풍기는 비교적 다른 지역보다 전국에서 일조량(日照量)이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이며, 쾌청일수가 전국 최고지역이기도 하다.
지리용어로 풴현상이 두드러지는 이 곳 풍기는 자연이 주는 천혜의 혜택을 골고루 받아 식물을 심으면 잘 자라고 여물이 잘 된다. 그래서 우수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답게, ‘인삼하면 풍기, 사과하면 풍기, 인견하면 풍기’와 같은 랜드마크를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소도시(읍)이기도 하다.
□ 풍기지역의 역사문화자원 ○ 지정문화재 현황 2012. 06. 기준
백룡사(원래 죽령마루 소재), 영전사(동부동), 정림사지(통일신라, 향교 인근), 영전사지(금계호 인근), 수락당(황섬거처, 정면4칸, 측면 2칸), 숭덕사(황사우, 황섬 제향), 교촌 지석묘군(향교 인근), 교촌 와요지(동양대 경내), 삼가 사고터(史庫址, 고려실록보관), 노좌 추월당(한산두 건립), 관아터 주세붕선정비(황준량 찬), 금선정(황금계 후손 건립), 비로사 부도, 희방사 부도, 풍기 관아옛터 돌비군(청덕비), 죽령 대나무 모양 석물 ● 기타 문화유산 : 제운루 현판(傳 공민왕 필), 기주절제아문현판
● 반출 문화유산 : 금동 당간 용두(1973 성내동 출토, 現 대구국립박물관, 보물제1410호) ● 명승 : 희방폭포(H 30), 소백산 국립공원, 소백산 천문대
●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까지 남과 북을 넘나드는 교통의 요지요, 경상좌도의 군사요충지였다. 겸암 류운룡 선생은 임진왜란 직전, 직후 풍기군수로 재임 시 나라 영토를 튼튼히 할 것과 죽령을 관방유적으로 삼아 풍기를 진관(鎭管)으로 승격시켜 줄 것을 건의(겸암집)한 바도 있다. ● 일찍이 관리의 공문서 수발, 관원이나 외교사절의 숙박과 왕래, 주요 물자 수송, 인마(人馬)의 지원 등을 돕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따라 역참(驛站)도 두었으니 나라의 국방에도 일익을 담당했던 흔치 않은 관방(關防)유적이기도 하다. ● 죽령을 사이에 두고 영남에선 이곳 창락역(昌樂驛)이 순흥의 죽동역, 영주의 창보역, 평은역, 봉화의 도심역, 예안의 선안역, 안동의 옹천역, 안기역, 예천의 유동역, 통명역 등 9개 역을 거느렸던 으뜸 역이었다.
● 죽령옛길(국가명승 30호)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울고 넘던 애환의 아흔 아홉 구비길이기도 하다. ● 산 정상 요새와 같은 곳에는 산적들이 있어서 고갯길을 오르내리던 길손들을 위협하매, 단양?풍기 양 고을의 원은 한 때 골머리를 앓았었다고 한다. ● 어느 날 죽령아래 주막집 할머니의 기지로 산적떼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하게 되어 그 후로는 길손들의 통행에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훗날, 그녀를 기리고자 세운 사당이 지금은 죽령 너머 용부원리 할미사당이란 성황당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 근대 교통망 ● 1920년대에 풍기에 처음으로 신작로(新作路)가 개설되면서 안정을 거쳐 영주(영천)까지 연결되었으며, ● 1933년에는 죽령잿목을 거쳐 단양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한 새 길이 뚫렸다. ● 1942년도에는 부산과 서울을 잇는 경경선(慶京線 : 후에 중앙선으로 개칭)이란 철도가 개통되면서 경북북부 내륙의 교통 흐름과 물류 이동이 원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 현대 광역교통망 현황 : 고속도로 개통, 철도 복선화 ● 1942. 4. 1 개통된 중앙선 철도는 서울 청량리~원주~제천~영주~안동~영천~경주를 잇고 있어 경부선에 이은 이 나라 제2의 종관철도이다. ● 중앙선 복선화 추진 등은 국토건설에 있어서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임. ○ 풍기지역 교통사정
풍기읍을 관통 .교차하는 고속도 .국도 지방도와 철도
□ 소백산 국립공원 현황
○ 국립공원 연혁
○ 국립공원 내 자연자원 국립공원 소백산 홈페이지 자료 참고
○ 국립공원 내 역사문화유산 국립공원 소백산 홈페이지 자료 참고
○ 기타 소백산의 희귀한 생태자원의 종자보전과 육성
○ 예천군 지역 : 우수한 자연환경에 맞는 장기체류형으로 인기예상 ○ 수 용 능 력 : 1일 최대 2064명 연간 206.418명 정도 추산 ○ 이 용 대 상 : 만성질환자(고혈압, 당뇨, 우울증 등) ● 유관기관 : 봉화군, 춘양면, 물야면
국립백두대간 테라피 단지
○ 기본현황 2011. 12 기준
※ 국립공원지역 49.9㎢(65.7%)
○ 사과재배 및 생산량 2011. 12. 기준
※ 부석면 518호 761ha, 13658t, 22% 22.761백만원
※ 인삼제조업 : 인삼농협 등 26개 업체(추정소득 130.000백만원)
※ 이산 336호 / 8.449두, 장수 332호 / 7.690두, 안정 287호 / 6.993두
○ 비교분석 2012. 영주축협자료(www.yjhanwoo.com)
○ 섬유업체 내역
○ 생산량 및 생산총액
□ 천혜의 자연환경이 상수원수로도 증명된다.
※ “매우 좋음”인 경우,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을 기준으로 1mg/L이하일 경우를 말하며, 여과?산균 등에 의한 간단한 정수처리 후 사용가능한 수질을 말함.
● 풍기와 봉현이란 지역(Rocal-area)은 공간상으로 같은 범주의 영역에 속해 있다. ● 해당지역은 연계, 협력이상의 방법으로 정보화, 네트워크화시켜 산업영역의 광역화가 필요하다.
○ 두 지역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지금까지 기초생활권이 같다. 분위기에 젖는 동기부여를 만들어야 한다. ● 연계?협력범위 : 단기적으로는 환경?문화?산업분야에서 불필요한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고, 장기적으로 행정통합을 이루는 등의 공동발전 모색이 가능하다.
○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는가? ● 인구감소(이농, 고령화, 저출산), 귀농귀촌(4도3촌) 유입인구 ● 지리적 위치, 문화, 성장여건, 생활서비스 공유 등 상호 인식도 부족했다.
□ 같은 기초생활권과의 연계협력
● 당초 읍면이란 행정단위로 구분했으나, 이제는 주민생활중심으로 활용방안을 바꿔야 한다. ●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인구감소는 공공시설 운영 등에 있어 비효율적인 예산낭비로 이어지게 되므로 장차 행정통 합도 고려해볼 때이다.
□ 유형별 공동연계 협력을 공론화
● 마을과 마을간, 마을과 기관단체간의 지속적인 네트워크의 구축 ● 정기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함. ● 국가시설 조성지 향후연계
풍기읍의 인구밀도가 높은 중심시가지
□ 닫는 말
○ 풍기는 유독 바람이 세찬 곳이니 풍력에너지源을 개발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고, 정감록마을의 구체적인 실시 방안도 계속 추진하여 21세기 새로운 “이상향”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내세울 만한 곳이다.
○ 타 시군보다 인삼 사과 인견 등 특화산업부문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므로, 고부가가치 관광자원화를 위해 주변의 경제적 효용가치를 높여주는 문화유산과의 연계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이러한 우리 시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잘 접목시켜 문화산업의 일익을 담당케 한다면, 대내외적인 환경이 비록 어렵더라도 경북 북부지방의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의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할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 ● 경북북부권 발전협의회, 2012, 경북북부지역 미래발전전략(제 14차) ● 경북북부권 발전협의회, 2011, 경북북부권 연계협력활성화를 위한 지역발전토론회 ● 경북북부권 발전협의회, 2012, 산림휴양도시구축을 위한 전략 방안 ● (재) 영주풍기인삼축제 조직위원회, 2012, 풍기인삼발전 심포지엄 ● 영주시, 2011, 영주시 통계연보 ● 순흥면, 2002, 순흥지역 문화산업발전 세미나 ●영주시, 2002, 국역 「죽계지」 |
'영주사랑 이야기 > 영주의 역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고 탄신 500주년 기념 시비제막 및 학술발표 (0) | 2018.01.07 |
---|---|
[한국여성인물사전] 145. 벽화(碧花) (0) | 2017.07.26 |
풍기군의 역사 (0) | 2017.03.16 |
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 (0) | 2014.04.04 |
정도전이 영주에 남긴 흔적 (0) | 201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