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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27] 장수면 반구1리(반두들)

단산사람 2017. 2. 18. 21:19

장수면의 중심마을 반구1리 ‘반두들’

우리마을탐방[127]장수면 반구1리(반두들)

 

   
▲ 반두들 마을전경
소반(小盤)처럼 ‘둥글다’고 반두들(盤邱)
반구전문농공단지에 베어링아트 등 입주

 

반구1리 반두들 가는 길
장수면 반구1리 ‘반두들’ 마을은 영주 IC에서 영주로 들어가는 관문에 있는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가흥교를 건너 가흥리마애삼존불 앞을 지나 영주IC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이 예전에는 걸어 넘기에 ‘애먹는다’하여 ‘애고개’라 불렀으나 지금은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겨 쉽게 넘을 수 있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가면 장수·두전리 방향으로 내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내려 면소재지를 향해 2Km쯤 가면 장수면소재지 반구1리 반두들이다. 2016.11.2020일 반두들에 갔다. 반구1리 노인회관에서 김수일 이장, 김영주 노인회장, 권남교 부회장, 양준석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반구리의 역사와 반두들의 유래를 듣고 왔다.

   
▲ ‘내고향 장수’ 표석
역사속의 반구리
반구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영천군(榮川郡, 영주의 옛이름) 두전리(豆田里)에 속했다. 영주지에 보면 두전리에는 두전방(豆田坊,모전), 가라방(加羅坊,가래), 반지산방(盤之山坊,반지뫼), 지곡방(池谷坊,못골), 별태방(別太坊,배태), 파지곡방(破之谷坊,파지), 갈산방(葛山坊,갈미) 등 7개 방(坊)이 있었다. 그러나 ‘반구방’은 없다.

 

그 후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될 때 영천군 두전면에 ‘반구리’라는 마을이 처음 등장한다.

이 때 두전면은 반구리, 두전리, 갈산리, 성곡리 등 4개리로 개편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폐합하고, 영천군 두전면과 호문면을 통합하여 ‘장수면(長壽面)’을 탄생시킨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장수면 반구리, 1995년 영주시 장수면 반구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반두들 서낭당
지명 유래
영주시사에 보면 “반구리는 500년전 경주최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 후손이 없어 세거 내력을 확인할 수 없었다. 마을의 이름을 ‘반구’라 한 것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 소반(小盤)과 같이 ‘둥글다’ 하여 ‘반두들’이라 불러오다가 조선말(1895년경)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지역 유지들이 상의하여 소반 반(盤)자에 언덕 구(邱)자를 써 반구(盤邱)라 했다고 전한다.

 

민병태(80) 전 장수면장(92-97)은 “장수면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두전면과 호문면을 병합하여 장수면이라 칭했다”며 “장수면이라고 한 것은 지역 유림에서 두전면과 호문면의 중심지가 장수원(화기2리)이고, 또 ‘장수’라는 명칭이 저명함에 면명(面名)으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 옛 영천군수 선정비
마을의 형성
구전(口傳)에 의하면 조선초 경주최씨가 마을을 개척하고 이후 의성김씨와 야성송씨가 세거하였으나 집성촌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은 인근 마을에 비해 규모가 작은 산재 부락이어서 조선 중렵까지는 마을이 없다가 조선 후기에 ‘반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구릉성 평지인 이 지역은 수백마지기에 이르는 농지가 있고, 용암산에서 발원한 옥계천이 반구들을 적셔 일찍 농업이 발달했다. 반구1리는 본동인 안(內)장터를 비롯하여 교회가 있는 연화동, 철길 넘어 계림, 두전리 방향의 직골, 파출소 주변마을, 면사무소 주변마을 등 크고 작은 산재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김태우(69) 노인회총무는 “반구1리의 본리라고 할 수 있는 안장터는 일제 때 반구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 1961년 대수해 때 옥계천이 범람하여 집들은 다 떠내려갔으나 서낭당만 온전히 남아 있었다”며 “그 후 일부는 면소 주변으로 이주하고 일부는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지어 현재 안장터 모습이 됐다”고 말했다.

   
▲ 장수초등학교
면소재지의 성립
조선 후기(1890년경) 상업이 발달하면서 반구리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중심지가 됐다. 또 사람들이 모이면서 점점 마을이 커져 큰 마을로 발전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새로 생긴 장수면소재지를 면의 중심지인 반구리에 두기로 함에 따라 반두들 안장터에 면 청사를 건립하게 된다.

 

   
▲ 반구1리 경로당
김영주(82) 노인회장은 “면 청사는 현 노인회관 뒤 옥계천 둑방 밑에 초가집 청사가 있었다”며 “해방 후까지 이곳에 있다가 6·25 전 현 위치로 이전하고, 청사 건물은 고등공민학교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면 청사가 언제 건립됐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22년 조선호적령 공포로 호적등재 업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늦어도 1920년경 청사가 건립되고, 면 행정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장수면에는 학교가 없어 일부는 영주시내로, 일부는 감천면으로 8km 이상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1928년 쯤 인동장씨·야성송씨 등 지역 문중과 유지들이 학교 설립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문중에서 교지(校地)를 희사(喜捨)하는 등 학교 건립을 당국에 건의 하여 1930년 11월 1일 장수공립보통학교가 반구리에 설립·개교됐다. 또한 이무렵 영주경찰서 장수주재소가 설치되면서 반구리는 면소재지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 반두들 사람들
지금 반두들은
지금 반두들에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란 무척 어렵다. 혹시나! 옛 것을 찾아 헤매다가 장수면사무소 마당에서 조선 때 영천군수 선정비를 발견했다. 비문에는 ‘郡守趙公永和淸德善政碑(군수조공영화청덕선정비)’라고 새겨져 있다. 영주향토지에 보니 조 군수는 1860년(철종11)-1862년(철종13) 영천군수로 재직하다 상주목사로 승진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마을 최주섭(78)씨는 “이 선정비는 장수에서 영주방향 도로변에 있었는데 1980년대 국도 확장 포장공사 때 이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면사무소 뜰에 ‘吾亦愛吾鄕(오역애오향)’이란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 표석은 ‘사랑하는 나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후면에 보면 ‘2천년 장수향우회’에서 건립했다고 새겨져 있다. 반구리는 중앙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다.

면소거리 도로변에는 추어탕, 장어구이, 설렁탕, 돼지국밥, 짜장면 등 식당 간판이 여럿 보인다. 이 마을 양재만(73)씨는 “반구1리에는 베어링아트, 나노믹아트, 디자인랜드, 농협도정센터 등 큰 공장과 면 기관단체가 있어 식당이 많고 장사가 잘 된다”며 “이들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두들 사람들
기자가 노인회관에 들어서니 어르신들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경로당 큰 언니 이명희(84) 할머니가 물을 끓여 커피를 타 주신다. “반두들의 자랑이 뭐냐?”고 여쭈니 권남교(82) 할머니는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이렇게 모여 서로서로 돌봐주고, 편히 쉬고,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게 마을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반구장이 유명했다고 하던데?”라고 하니, 권옥순(82) 할머니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 본 사람은 없다”면서 “아마도 일제 때부터 장이 서다가 신작로(1940년)가 생기고 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없어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명희 할머니는 “60년전 새댁 때 시어른께 들었다”며 “안장터에 장이 섰다는데 곡식 팔아 이것저것 사는 장터, 소금전, 비단전, 옹기전, 소전, 도축장 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반두들 논 가운데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다.

김수일(64) 이장은 “구전에 의하면 야성송씨가 수백년동안 서낭제를 올리다가 해방 후부터 동제(洞祭)로 올리게 됐다”며 “전례에 따라 떡과 메, 육류와 어물, 과일과 포 등 기제사와 같은 제수를 마련하고, 3헌관이 술을 올리고 독축한다. 또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고 말했다.

우용진(65)씨는 “마을 사람들은 장수한의원 김성환 장로를 기억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의 추앙받았던 김성환 장로는 1964년 장수면 반구1리에 한의원을 열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양준석(43) 새마을지도자는 유황마늘의 5배 성분을 가진 삼채(부추과채소)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양 지도자는 “삼채는 현재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어 6차산업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 지도자는 또 “반구1리는 농림부 주관 면소재지 활성화 마을로 선정되어 60억원을 지원 받게 됐다”며 “주민 복지시설 등이 완성되면 더욱 살기좋은마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회관을 나와 김수일 이장과 반두들 들길을 걸었다. 김 이장은 “서낭당은 화합의 구심점”이라며 “130세대가 사는 반두들은 화합하는 멋진마을”이라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장수면 반구1리 반두들 사람들>

   
▲ 김수일 이장
   
▲ 김영주 노인회장

 

   
▲ 양준석 새마을지도자
   
▲ 이명희 할머니

 

   
▲ 권남교 할머니
   
▲ 권옥순 할머니

 

   
▲ 최주섭 씨
   
▲ 양재만 씨

 

   
▲ 김태우 노인회총무
   
▲ 우용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