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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26]안정면 신전1리(살포정)

단산사람 2017. 2. 18. 21:16

쌀의 고장 안정면의 중심 마을 ‘살포정’

우리마을탐방[126]안정면 신전1리(살포정)

 

   
▲ 신전1리 마을전경
조선말 개척된 마을 ‘새밭들(新田里)’
윤기 자르르, 북적이는 ‘안정쌀밥집’

 

안정면 살포정 가는 길
안정면 ‘살포정(殺浦亭)’ 마을은 영주와 풍기 사이 안정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서천교를 건너 풍기방향으로 향한다.

나뭇고개(木峴)를 넘어 비상활주로(2천5백m) 끝 지점에서 내리면 안정면소재지 신전1리 살포정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신전1리 살포정」이란 표석이 보인다. 그 뒤로 예안민물매운탕, 자연식당, 개나리식당 등 밥집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13일 오후 신전1리 ‘살포정’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권영호 이장, 김성배 노인회장, 권오엽 전 교장, 오은주 부녀회장 그리고 선비골아씨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살포정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살포정 표석
역사속의 신전리
신전1리 지역은 조선초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풍기군 생고개면(生古介面)에 속했다. 그 후 풍기군의 이름을 영정군(永定郡), 안정군(安定郡)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849년 이후에서 1890년 사이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풍기군지에 보면 「생고개면에는 생현리(생峴里), 부왕리(夫王里), 송동리(松洞里), 신전리(新田里), 내줄포리(內茁浦里), 외줄포리(外茁浦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될 때 풍기군 생고개면이 생현면으로 개칭되고, 순흥부 대룡산면이 용산면으로 개칭되면서 풍기군에 편입된다. 이 때 생현면은 생현동, 외부암동(外夫岩洞), 내부암동, 내줄동(內茁洞), 향산동(香山洞), 신전동, 송동 등 7개 동으로 개편됐다.

   
▲ 안정면사무소(1930년대)
1914년 일제가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여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폐합하고, 풍기군의 동촌면과 생현면, 용산면을 통합하여 ‘안정면’이라 칭했다. 당시 총독부가 발행한 ‘면동리 명칭일람’에 보면 안정면 내줄동에 면소재지를 설치했다고 되어 있다.

 

   
▲ 오부섭 어르신(웃내줄)
기자는 14일 오후 당초 안정면소재지의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내줄리 일대를 수소문했다.

 

웃줄포에 사는 오부섭(92) 어르신은 “바로 우리 앞집(장안로 757번길 82-1) 터에 면사무소가 있었다고 선친께 들었다”면서 “초대면장은 황기덕(풍기 희여골)씨로 기억하고 있으며, 몇 대를 지나 안용호 면장이 이어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어르신은 또 “당시 한옥 기와집 청사가 있었다”며 “안정면사무소는 일제 초기 내줄동에 있다가 1925-30년경 면의 중심지인 신전리로 이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명 유래
신전1리 지역을 살포정 또는 ‘살포쟁이’라고 구전으로 전해 오고 있다.
장복규(78) 전 시의원은 “안정면지에 보면 신전1리의 옛 이름이 ‘살포쟁이’로 나온다.

살포(殺浦)란 도살(屠殺) 또는 도축(屠畜)과 같은 뜻”이라며 “살포정은 마을이 형성되기 전 죽령을 넘나들던 길손이 남원천 강가에서 말(馬)에 물을 먹이거나 쉬어가던 길목이었다. 이 무렵 이곳에서 ‘소나 말을 도살’하기도 하여 죽일 살(殺)자에 강가 포(浦)자를 써 살포정(殺浦亭) 또는 ‘살포쟁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말했다.

권오엽(81) 전 교장은 “예전에 풍기군수가 매봉산에 사냥 갔다가 매를 발견하고 활을 쏘았는데 그 매가 이곳에 떨어져 ‘살포정’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고 말했다.

   
▲ 신전1리 사람들
이곳을 ‘신전리’라 한 것은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 때 마을 사람들은 ‘새밭들’이라 불렀는데, 지역 유지들이 한자어를 붙여 신전(新田)이라고 명명했다.

 

또 ‘안정(安定)’이란 지명은 풍기군의 옛 이름이 조선초 풍기군에서 영정군, 안정군 등으로 변천해 왔다는데서 유래하여 ‘안정면’이라 했다는 설과 안심동의 ‘안’자와 살포정의 ‘정’자를 따 ‘안정’이라 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마을의 형성
이 마을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 1890년경으로 추정된다. 김성배(70) 노인회장은 “안정면지에 보면 1889년(고종 26년) 장수황씨(長水黃氏) 황복용이 최초로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 뒤 안동권씨 권태도(權泰道), 나주정씨 정희섭이 차례로 입향하면서 점차 취락이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최점순(여,80) 어르신은 “시댁이 장수황씨”라며 “100여년 전 시조부(복용)께서 이곳에 정착하여 농지를 개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은 모두 떠나고 두 집만 산다”고 말했다. 권오엽 전 교장도 “안동권씨(검교공파)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약 100년 전으로 알고 있다”며 “泰자 道자 할아버지 후손들이 5-6가구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고 말했다.

   
▲ 옛 정미소
면소재지의 성립과 발전
안정면사무소는 당초 내줄리에 있었으나 1930년경 신전리로 이전한 것이 확실하다.
신전리가 마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30년 전후라고 볼 수 있다. 1929년 안정공립보통학교가 현 위치에 세워지고, 내줄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신전리로 이전하게 된다.

 

또 1933년 영주경찰서 안정주재소가 면사무소 옆에 들어서면서 신전리는 면소재지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 마을 장복규씨는 “우리집이 신전리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기와집이다. 대들보에 보면 ‘1936년 상량’이라고 씌여 있다”며 “이 집은 안용호(대룡산) 초대 안정면장(1930-1940)이 지은 집”이라고 말했다. 이상과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신전리는 1930년경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후 1940-45년경 양조장과 정미소가 들어섰다고 한다.

권오근(60) 안정면장은 “영주시민신문에서 안정면의 역사와 지명유래를 찾아 밝혀 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쌀의 고장 안정’을 띄우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안정쌀’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남기(61) 안정초 교장은 “1929년 교실 3칸이 지어지고 2학급에 학생 106명으로 개교했다. 1970년대 학생수 1천명이 다니는 큰 학교로 발전하였으나 지금은 전교생 65명의 소규모학교가 됐다”며 “87년 역사를 가진 본교는 5천 60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고 말했다.

   
▲ 배남기 안정초 교장
   
▲ 권오근 안정면장

 

신전리 살포정 사람들
기자가 살포정 표석 앞에 차를 세우자 권영호 이장이 다가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권 이장은 “살포정 표석은 2010년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며 “신전1리는 74가구에 150명이 산다. 마을 동쪽엔 남원천이 흐르고, 서남북에는 구억들을 비롯한 넓은 들을 보유한 ‘쌀의 고장’”이라고 설명했다.

권 이장의 안내로 농협자재센터 뒤 마을회관으로 갔다. 김성배 노인회장과 이옥현 총무, 장복규 전 시의원 그리고 선비골아씨들의 환영을 받으며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진열장에는 신전1리 사람들이 각종대회에 참가하여 받은 상장과 트로피로 가득하다. ‘아! 신전1리는 화합하고 활기찬 마을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선비골아씨’가 뭐냐?”고 여쭈니, 황병은(71) 선비골아씨회장은 “100세 건강프로그램 실버댄스단의 예쁜 이름”이라며 “안정 선비골아씨는 경북북부지역을 대표하여 경북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지역행사나 요양원 위문공연 등 연30회 이상 출연한다”고 말했다.

   
▲ 신전1리 사람들
강순녀(70) 총무는 “실버댄스단에는 김순조(86)·금순조(84) 어르신을 비롯하여 6-70대 아씨들로 구성되어 있다”며 “함께 모여 춤추고 운동하다 보면 친교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우록자(76) 노인회부회장은 “노인회와 100세건강프로그램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권영호 이장님과 김성배 노인회장님, 오은주 부녀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옥현(65) 노인회총무는 “우리 신전1리는 ‘쌀의 고장’ 중심마을답게 밥맛 좋기로 소문난 밥집이 많다”며 “명품 안정쌀로 인해 10여개 밥집들이 호황을 누린다”고 말했다.

선비골아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은주(62) 부녀회장이 금방 만든 손두부를 가지고 와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오 회장은 “우리마을은 서로서로 아껴주고 안아주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며 “강산이 아름다우려면 길을 닦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 마을을 위해 앞장서 일하시는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마을이 더욱 아름답다”고 말했다.

오후 4시경 어르신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마을회관을 나왔다. 권오엽 전 교장과 살포정 표석 옆 정자로 갔다. 느티나무 세 그루가 큰 숲을 이루었다. 이 느티나무는 권 교장이 1979년 한국교육대상을 받은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역사는 ‘오늘이 모여 만들어 진다’는 마을 생각하면서 새밭들 뒤안길을 걸었다.

이원식 시민기자 

<안정면 신전1리 살포정 사람들>
 

   
▲ 권영호 이장
   
▲ 김성배 노인회장

 

   
▲ 오은주 부녀회장
   
▲ 김순조 할머니

 

   
▲ 금순조 할머니
   
▲ 권오엽 전 교장

 

   
▲ 이옥현 노인회총무
   
▲ 황병은 선비골아씨회장

 

   
▲ 우록자 노인회부회장
   
▲ 강순녀 선비골아씨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