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수함이 가득한 평화로운 마을 ‘옹암리’ | ||||||||||||||||||||||||||||||||||||||||||||||||||||||||||||||||||||||||||||||||||||||||||||||||||||||||||||||||||
우리마을탐방[110]안정면 옹암리 (독바우, 선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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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도 고라니가 마당에서 노는 곳 ▲안정면 옹암리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서천교를 건너 안정·풍기방향으로 향한다. 나무고개(木峴)를 넘으면 넓은 안정들이 펼쳐지고 왕복 8차선 비상활주로 끝 저 멀리 죽령이 보인다. 안정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신안교(신전리-안심리)를 건너 안심·오계 방향으로 간다. 농업기술센터 앞을 지나 철도건널목을 건너면 안심1리 평장마을이다. 안심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풍기읍 산법리 방향으로 1.5km 쯤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옹암리(甕岩里) 독바우」 표석이 나타난다. 표석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곧바로 ‘독바우’마을이고, 자락길을 따라 500여m 쯤 올라가면 ‘선돌’마을이다. 지난 22일 오후 옹암리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김재규 이장, 서우선 노인회장, 권영희 노인회여부회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옹암리의 역사와 마을의 내력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옹암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안심동 일부를 병합하여 영주군 안정면 옹암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언서인 정감록에 의하면 이 마을은 삼암지간(三岩之間) 피난지 중 한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 마을의 구성
그러나 최근 들어 귀농·귀촌이 늘어나고 있어 활기찬 마을로 변모하고 있는 마을이다. ‘도치봉’과 ‘독바우고개’가 각각 동서에 위치해 있고, 그 사이에 300마지기 옹암들과 150마지기 선돌들, 150마지기 해치골들 등 벼농사가 발달한 마을이다. 서우선(80) 노인회장은 “예전에는 비스듬한 경사지에 층층 다락논이 많았으나 지금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큰 배미는 3-4마지기, 작은 배미는 1-2마지기 정도된다”며 “요즘 모내기가 한창인데 이앙기가 하루에 20여 마지기씩 심는다”고 말했다.
▲ 지명 유래
권영희(82) 노인회 여부회장은 “예전에는 ‘독바우’라고만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옹암리가 됐다”고 하면서 “마을 뒤에 독을 닮은 바위가 있어 ‘독바우’라 부른다”고 말했다.
선돌마을은 마을 북쪽 산 중턱에 높이 6m(가로 2m, 세로 1m) 가량 되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선돌’이라 불렀다. 선돌마을에 사는 전영인(76) 할머니는 “예전에 선돌 위에 올라서면 풍기가 보일 정도로 높았는데 일제가 마을의 정기(精氣)를 끊으려고 칼로 쳐서 깨뜨렸다”고 하면서 “선돌 밑에 보면 부서진 돌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 초계정씨가 개척한 마을 옹암리는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이 없어 물이 귀한 마을이다. 남원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홍교천도 멀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한 한적한 마을이다. 안정면지에 보면 「조선 영조 26년(1750년) 초계정씨 정정규(鄭鼎圭)와 김해김씨 김창길(金蒼吉)이 최초로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했다」라고 기록했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초계정씨 후손 정영주(85) 어르신은 “선조들로부터 독바우의 주인은 ‘초계정씨’라고 들었으며, 할아버지 대에서는 여러 형제가 독바우에 살았다”고 말했다. 초계정씨(草溪鄭氏)의 본관 초계는 경남 합천군의 한 면이다. 시조(始祖)는 고려 초 대학자 정배걸(鄭倍傑)이다. 배걸은 초계 출신으로 1017년(고려 현종 8년)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문종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초계정씨 후손 정상태(60)씨는 “옹암리 입향조이신 정규 선조는 저의 증조부”라며 “선조께서는 합천군 초계에 태어나셨다. 당시 초계군수(일선김씨)의 사위가 되셨고, 김 군수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사위를 데리고 떠남에 따라 선산군(현 구미시) 도계면에 정착하게 됐다. 지금도 도계면에 선조들의 묘소가 있다”고 했다. 정씨는 또 “증조부(정규)께서는 조선말(1880년대로 추정) 나라 사정이 어지러워지자 정감록 예언서에 따라 ‘풍기에서 10리 안에 들어있고, 바위 암(岩)자가 들어 있는 마을을 찾아 나섰는데 물어물어 찾아와 정착한 곳이 옹암리였다”며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마을을 개척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김씨 입향조에 대한 내력은 후손이 없어 찾지 못해 아쉽다.
▲ 중앙선 복선전철 마을관통
김재규 이장은 “중앙선 복선전철이 독바우와 선돌 사이를 통과함에 따라 마을이 두 동강나게 됐다”며 “국책사업에 지역주민들이 적극 협조하지만 마을사람들의 피해와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영주시가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7년전에 귀농한 강충열(69)씨는 “우리 옹암리는 대낮에도 고라니와 친구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 가운데로 고속전철이 지나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황당하다”며 “자연 파괴와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을 통과 구간은 교량으로 하고, 소음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말했다.
▲ 옹암리 사람들 김재규 이장은 “옹암리는 현재 독바우에 30호, 선돌에 8호, 호치골에 6호 등 44가구에 100여명이 산다”며 “최근 들어 청년회 운영이 활발하여 활기찬 마을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로회관 앞에 유모차가 여러대 있다. ‘아마도 할머니들이 여러분 모이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십 여분이 두 패로 나누어 민화투를 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점당 10원인 듯 1원짜리에서부터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이 수북하다. 권상도(83) 할머니는 “아침저녁 시원할 때는 일하고, 낮에는 이렇게 쉰다”면서 “마을회관은 겨울에는 따뜻한 쉼터, 여름에는 무더위 쉼터”라며 만족해 했다. 머리가 허연 백금순(87) 할머니는 “이곳에서 68년 살았다”고 하면서 “예전에는 마을이 토담 초가집뿐이고, 길은 사람이 다니는 지겟길 밖에 없었다. 세상 밖을 모르고 독 안에서만 살았다. 빨리 버스가 들어와 마음대로 장보러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계연(84) 할머니는 “우리 마을은 물이 귀했다. 버지기로 하루 종일 물 길어다 물두멍에 채우는 게 제일 큰일이었고, 개울이나 도랑이 없어 빨래는 샘에서 했다”고 말했다.
해질 무렵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회관 앞에서 만났다. 윤경식(48) 새마을지도자는 “옹암리는 낮은 지역은 논이고 산 중턱에는 인삼포와 사과 농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젊은 농업인들이 늘어나면서 해마다 소득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강석언(46) 청년회장은 “우리마을 4-50대 젊은 청년들 10여명이 청년회를 조직하여 농지확장, 인삼재배, 과수경작, 농산물 인터넷 판매, 어르신 모시는 일 등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연구·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치골로 귀촌한 이기락(38)씨는 “철도복선화 공사사무실이 마을 앞에 있다. 공사가 끝나면 철거한다고 하니 이 건물을 인수하여 어린집이나 어린이도서관, 농촌체험학습장 등으로 활용하였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안정면과 영주시가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원식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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