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09]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마을, 안동권씨 집성촌 ‘돗밤실’ | ||||||||||||||||||||||||||||||||||||||||||||||||||||||||||||||||||||||||||||||||||||||||||||||||||||||||||||
이산면 원리(돗밤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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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저율곡(猪栗谷), 우리말로 ‘돗밤실’
이산면 돗밤실 가는 길 술바우사거리에서 직진한 후 선영여고 앞에서 좌회전하여 영주고등학교-용암대마을 앞을 지나 솔내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망월봉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돗밤실(栗谷)을 만나게 된다. 마을 표석에 ‘추로지향(鄒魯之鄕) 돗밤실’이라고 새겨져 있어 ‘아! 선비의 마실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돗밤실은 이산면소재지이고 원리의 중심마을이다. 여름 더위가 물씬 느껴지는 지난 20일 오전 돗밤실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권정우 이장, 권정식·권태식 어르신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안동권씨 세거 내력과 지명유래를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돗밤실 돗밤실은 조선 태종(1413) 때 영천군 산이리(山伊里) 저율곡방(猪栗谷坊)이라 부르다가 조선 중기에는 산이면 저율곡리(猪栗谷里)라 했고, 조선 후기에 산이면 원리(院里)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이산면 원리가 됐다. 이 때 산이면(山伊面)이 이산면(伊山面)으로 개칭되었는데 ‘이산면’이라 한 것 또한 이산서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면 ‘옛 산이면(山伊面)의 지명유래는 무엇일까?’ 옛 문헌에 보면 「山伊의 이(伊)자 ‘尹’은 천하를 다스림이며, ‘人’을 덧붙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또 신라 때 높은 벼슬 이름에 ‘伊’자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伊’는 ‘훌륭한 인재가 태어나는 곳’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마을 권정돈(77) 어르신은 “원래 산이면 원리는 옛 이산서원(남간재 우측에 있었음) 구지(舊地)를 중심으로 서원의 윗마을인 상구동(上舊洞, 용암대 지역)과 아랫마을인 하구동(上舊洞, 구서원, 둘개비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었으나 1983년 원리 대부분이 영주시에 편입되어 원리는 돗밤실과 한성골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지명유래 아주 옛날 이곳에 꿀밤나무가 많아 마을이름이 ‘돗밤실(도야지+밤)’이 됐다고 전해진다. 옛 사람들은 꿀밤을 ‘돼지밤’이라 했고, 돼지의 옛 이름인 ‘도야지’에서 ‘도’자를 따 ‘돗밤실’이 됐다고 구전(口傳)되기도 한다. 영주지에 보면 조선조 때는 저율곡방(猪栗谷坊)이라고 기록됐다. 돼지 저(猪)와 밤 율(栗)자를 합성한 ‘저율(猪栗)’을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돗밤실(꿀밤마을)’이 된다. 또 어느 때부터인가 ‘도율리(道栗里)’라는 기록도 보인다. 마을 앞 길가에 큰 밤나무 한 그루가 상징적으로 우뚝 서 있어 길옆에 밤나무(70년대 고사)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길 도(道)자 ‘도율리(道栗里)’가 돗밤실이 됐다는 설(說)이다. 문중에서 전하는 유래도 있다. 안동권씨 후손인 권정우(60) 씨는 “입향조 권항(權沆)선조께서 이곳에 터를 잡으신 후 마을 이름을 율곡(栗谷)이라 했다”고 하면서 “그 내력은 검교공파 파조이신 권척(權倜, 검교대장군) 선조의 단소가 상주군 공검면 율곡리에 있다. 그래서 검교공의 단소가 있는 마을이름을 따 와서 ‘율곡’이라 했다”고 설명했다.
안동권씨 입향 내력 안동권씨는 고려 초 개국공신으로 삼태사(三太師)의 한 사람인 권행(權幸)을 시조로 한다. 영주시사에 보면 ‘권요의 육남 경주(景柱, 1414-미상)의 후손들이 영주 밤실(栗谷)에 세거했다’라는 기록과 ‘권요의 육남 경주의 아들 권항(權沆, 1465-1520)이 원리에 정착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안동권씨 권정우 종인에 의하면 “이 지역은 단양우씨가 살았는데 권항(權沆) 선조께서 영주 성밑에서 이거하여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며 “선조께서 장성하여 살림을 날 무렵 입향하셨다면 아마도 1485년 전후로 추정되며, 그 후 53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선비들이 남긴 흔적 돗밤실은 망월봉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마을 뒤쪽에 있는 안동권씨 종중고택이 2015년 7월 13일자로 ‘도율종중고택(道栗宗中 古宅)’이란 이름으로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632호로 지정됐다. 이 고택은 영주에 500여 년 간 세거한 안동권씨 사용공파의 대표적인 건물로 경북 북부지역의 뜰집이 ‘튼ㅁ’자형에서 ‘ㅁ’자형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배치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중부형 살림채의 평면구성을 잘 유지하고 있으면서 정자까지 갖춘 상류주택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고택에 딸린 모운정(慕雲亭)은 사용(司勇)을 지낸 권경주(權景柱)의 후손들이 그 유덕을 추모하여 건립했다. 그 동쪽 지근에 있는 율오정(律吾亭)은 생원(生員) 권상성(權象星, 1811-미상)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했다. 권상성은 호가 율오재(律吾齋)이고, 1844년(고종19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선조의 유훈 ‘효제충신(孝悌忠信)’ 안동권씨 원리문중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인성교육 교재 예기(禮記)가 있다. 권원식(權元植, 전 이산면장, 권정우 이장 아버지) 종중이 1970년대 한문과 한글 혼용으로 현대에 맞게 재편찬한 이 책에는 ‘안동권씨 시조 이야기로부터 분파 및 파조, 선조묘소, 입향내력, 전래예법, 선조들의 유훈(遺訓) 등이 실려 있다. 안동권씨 원리문중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전한 유훈은 ‘효제충신’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이란 어버이에 대한 효도, 형제끼리의 우애, 임금에 대한 충성과 벗 사이의 믿음을 통틀어 이르는 가르침으로 ‘항시 잊지 말고 성심껏 실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돗밤실 사람들 권정우 이장은 “산 좋고 물 맑은 청풍명월의 고장 원리는 예로부터 충효를 근본으로 삼아 상부상조하고 인심 후덕한 마을”이라며 “1950-60년대에는 안동권문만 120호 넘게 살았으나 지금은 60여호 살고 있다”고 말했다.
권태식(80) 어르신은 “원리 안동권문은 입향조 이후 조선말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초중학교장, 20여명의 교원, 다수의 공무원, 경찰간부 등이 많이 배출됐다”며 “최근 들어 권춘탁(장수초) 교장의 딸(권유현)이 행정고시에 합격(2014년)하였고, 권오영(영주고 교사)씨의 아들(권하빈)이 사법고시에 합격(2015년)하는 등 나라의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권춘원(77) 어르신은 “이산면 치안파출소 옆 ‘사모바위’는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며 “이곳에 기도하면 출세하고 벼슬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무더위 쉼터(노인회관)에서 안동권문의 며느리들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채봉랑 할머니는 “60년 전 마을의 모습은 집은 토담 초가집이고, 길은 지겟길뿐이었다”며 “보릿고개를 넘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조이분(71)씨는 “2011년에 만든 ‘돗밤실 둘레길’은 망월봉-흑석사-제비봉-명학봉-묘봉을 돌아오는 5.6km 2시간 코스로 찾는 사람이 많아 영주의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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