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의 토반(土班)마을 ‘용암대’ | ||||||||||||||||||||||||||||||||||||||||||||||||||||||||||||||||||||||||||||||||||||
우리마을탐방[79]하망동 용암대마을 | ||||||||||||||||||||||||||||||||||||||||||||||||||||||||||||||||||||||||||||||||||||
| ||||||||||||||||||||||||||||||||||||||||||||||||||||||||||||||||||||||||||||||||||||
고려말 입향한 단양우씨 600년 세거마을 하망동 용암대 가는 길
용암대는 하망동 9통 지역으로 원당로 번개시장에서 철도건널목을 건너 원데이(元塘)고개를 넘어 영주고등학교 방향으로 가는 길도 있다. 지난 3일 오후 용암대 육각정에서 우혜경 통장과 백남옥(83)·우명호(82) 어르신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만나 용암대의 역사와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용암대마을의 역사
용암대 지명유래
단양우씨 세거 600년 우숭려는 안동 예안으로 낙남(落南)하였다가 옛 영천의 동쪽 용암대에 터를 잡았다. 당시 우거진 숲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용암서당을 지어 자제 교육과 후진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수암정은 옛 서당을 보수하여 우승려의 호를 취해 ‘수암정’이라 하고 숭조지소로(崇祖之所)로 사용하고 있다. 용암대의 전설 이에 크게 놀란 이여송은 ‘이 바위를 그대로 두면 조선에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 하여 차고 있던 장검(長劍)을 뽑아 용의 머리를 내리쳐 잘라버렸다고 한다. 당시 이여송의 칼에 맞아 잘려진 용의 머리 부분 바위는 지금도 소나무 우거진 용암대 오른편 아래쪽에 뒹굴고 있다. 1972년 이 마을에 영주고등학교가 세워지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 내고 있으니, 400여 년 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선견지명은 가히 놀랄 만하다 하겠다. 인재양성의 요람 영주고(榮州高)
김두혁 선생은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오면서 ‘인재양성’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회명산(晦明山, 어둠을 밝히는 산) 중턱에 학교를 세우고 인재양성에 힘썼다. 최근 영주고 출신이 3명이나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영주고에 따르면 “지난 2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우병우 수석(9회)과 함께 총무비서관실 J행정관(6회)과 홍보수석실 K행정관 등 3명의 동문이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주고는 개교 이래 우병우 수석을 포함해 서울대에만 44명을 진학시킨 지역 명문고이다. 마을의 구성
우혜경 통장은 “용암대마을은 육각정을 기준으로 거랫마와 안마로 구분되며, 거랫마에는 학교와 송암정사(松菴精舍), 수암정, 집들이 있고, 안마는 구 종택과 고목나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면서 “현재 50여호에 120여명이 살고 있는 안온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임병국(80) 어르신은 “예천임씨가 이 마을에 들어 온 것은 단양우씨가 마을을 개척한 후 약 100년 뒤”라며 “지금은 5-6집만 산다”고 했다.
수암정 옆에 사는 이홍련(67)씨는 “단양우씨 종중들은 훌륭한 선조를 모신다는 자부심과 숭모(崇慕)의 예가 각별하다”면서 “해마다 음력 10월 3일에는 수암정에서 많은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용암대마을 사람들 반장으로 마을일을 돕고 있는 김제희(62)씨는 “40년 전 이 마을에 왔을 때 가난한 농촌마을이었다”며 “그러나 서로 돕고 정나누면서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영주고 행정실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는 우명호(82) 어르신은 “영주고등학교를 설립한 고 김두혁 이사장은 ‘인재양성’에 뜻을 펼쳐, 국가적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명문고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활을 만드는 ‘궁장’인 권영덕(77)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햇살 잘 들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며, 공기 좋은 땅”이라면서 “도시주변 전원마을로 딱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용암대에서 80년을 살았다는 백남옥(83) 어르신은 “40년 전 우리 마을은 초가집에 지게길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현대식 집에 넓은 길이 생겨 살기좋은 마을이 됐다”고 했다. 이 마을 곽태원(80) 어르신은 “용암대 용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며, 꼬리는 둘개비쪽으로 두고 있다”면서 “이 용은 암용이라서 앞산 묘소들은 모두 부인들 묘소만 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고 살아 온 정정자(77)씨는 “새댁 시절에는 아궁이에 불때 밥하고 가마솥에 소죽 끊이고, 동네 우물가에서 물 길러다 살림했다”며 “지금은 나라가 발전해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마을의 역사를 설명해 준 전영하(71)씨는 “어릴 적 용바위는 마을 서낭신이었다”며 “정월보름날이면 마을 어르신들이 용바위에 서낭제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말했다.
|
'책사랑 > 우리마을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마을탐방[81] 이산면 원리 한성골 (0) | 2015.11.24 |
---|---|
우리마을탐방[80]휴천1동 광승마을 (0) | 2015.11.24 |
우리마을탐방[78] 영주1동 구역마을 (0) | 2015.11.24 |
우리마을탐방[77] 장수면 성곡1리(배태) (0) | 2015.11.24 |
우리마을탐방[76] 안정면 대평리 (0) | 201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