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상징 영주동 구역마을 | ||||||||||||||||||||||||||||||||||||||||||||||||||||||||||||||||||||||||||||||||||||||||||||||||||||||
우리마을탐방[78]영주1동 구역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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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중앙선 개통, 영주문화의 중심지로 번성
구역마을의 입지(立地) 어릴 적부터 구역마을에 살았다는 안재훈(58, 만물상회)씨는 “중앙시장 내 우랑돈식당 지점이 역 대합실 자리이고, 기독병원 쪽으로 역사가 있었다”며 “저쪽(골목시장)에 소화물 취급소와 객화차 대기소가 있었다”고 말했다.
구역지역은 중앙시장, 골목시장, 한국전력, 아디다스 주변, 불바우마을에 걸쳐 있었으며, 총 부지는 2만평에 달했다. 구역마을의 중심지는 현 기독병원과 중앙시장이고 행정구역으로는 영주1동 17통 지역이다. 마을의 역사 영주지(榮州誌)에 보면 「봉향리는 관아와 산성과 향교가 이었으며, 속방은 8개 동네가 있는데 성저(城底, 성밑)와 화천(禾川)과 망동(望洞)과 원당(元塘)과 광승(廣升)과 지천(至川)과 마암(馬巖)과 증귀(增貴)가 있었다. 이 마을은 땅이 비옥하지는 않지만 홍수와 가뭄의 재해가 없고 여염집이 땅에 가득하며 사족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영주면 영주리가 되었다가 1980년 시 승격으로 영주시 영주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선 건설과 영주역 설립 중앙선(청량리-경주)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1923년 조선 제2의 종관선 건설계획을 세워 1935년 노선을 확정하고, 1936년 11월 청량리에서 12월 영천에서 착공했다. 1937년 9월 철도국 건설과장이 역사 선정을 위해 영주를 방문했다. 당시 제1후보지로 휴천리 광승 앞(현 남산초 인근), 제2후보지로 예천통로(현 꽃동산 인근), 제3후보지로 두서지역(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등을 1차 선정해 두었다.
그해 12월 건설과장이 영주에 다시 내려와 김규년 군수, 영주번영회장, 면장과 함께 읍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성저(성밑마을)에서 장시간 숙의(熟議)한 결과 성저를 중앙선 영주역 부지로 결정했다. 그 때 성저농촌진흥조합을 비롯한 10여 채의 가옥이 철거됐다. 영주역 주변 시가지 형성 6.25 이후 후생시장, 채소시장, 염매시장이 형성되고,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 철도가 개통된 후부터 더욱 호황을 누렸다. 이때부터 영주는 경북북부지방의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였으며, 영주역에서 분수대에 이르는 구역통로는 영주문화의 중심으로 번성했다.
영주 대수해와 역 이전 1961년 7월 성저마을을 비롯한 영주동 전 지역이 물에 잠기는 대수해를 당했다. 당시 5.16 군사정부(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는 현 삼판서고택 산을 끊어 서천의 수로를 변경(직강공사)하고 새로운 도시 계획을 수립하여, 1973년 영주역이 신영주로 이전하게 됐다. 이후 구영주역 부지에는 구성로 도로가 생기고 기독병원을 비롯한 중앙시장, 골목시장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됐다. 중앙시장 북문 입구에 있는 구영주역 표지석에는 「여기는 1941년 7월 1일 중앙선 개통과 함께 개설되었던 본래의 영주역 자리이다. 시가지 확장으로 1973년 12월 23일 휴천동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까지 33년 간 교통대동맥을 이룩한 영주역은 지역 발전사에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반세기 시민건강 지킴이 기독병원 영주기독병원은 현 서익제 원장의 선친 서진민 박사가 1965년 제일교회 앞에서 개원한 ‘대구의원’이 전신(前身)이다. 1980년 영주시 승격과 더불어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기독병원’이란 이름으로 증설(지상 5층 지하1층, 70병상) 재개원했다. 서익제 원장은 1985년부터 병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1, 2내과와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에 전문의 5명 등 56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대상지역 거점산부인과병원으로 지정됐다. 서 원장은 “반세기의 경험을 기반삼아 앞으로 100년의 비전으로 지역사회 건강지킴이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사업에 박차 영주시는 지난해 4월 국토교통부에서 실시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전에서 영주 1,2동 지역인 후생시장과 중앙시장, 구성공원 지역이 대상지로 선정됐다. 경북에서 유일하게 도시재생 선도지역 대상지로 선정된 영주시는 국비 100억 원과 시비 100억원, 연계사업 140억 원, 총 340억 원을 지원받아 2017년까지 4년 동안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구역마을(중앙시장) 세부사업을 살펴보면 「창업지원센터 건립, 지하주차장 환경개선, 먹거리 골목 조성, 청년공예가 공방 및 판매점, 공연무대 설치, 중앙시장 옥상 공원화 등」이다. 중앙시장상인회 강성윤 회장은 “옥상 공원화 사업을 비롯하여 1층 주차장자리에 공연무대를 설치하고, 지하주차장을 현대식으로 환경 개선하는 한편, 2층에는 화랑을 설치하는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중앙시장이 활기를 되찾아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구역마을 사람들
서석표(75) 상인회 이사는 “중앙시장은 영주 시장(市場)의 뿌리”라며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으로 옛 명성을 되찾고 사람이 북적이는 시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골목시장에서 20여 년째 식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춘홍(여, 60)씨는 “영주여객이 이곳(한전 인근)에 있을 때는 사람도 많이 다녔고 장사도 잘 됐다”며 “지금은 기독병원이 중심을 잡고 있어 골목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의류상을 하고 있는 정원식(여, 41)씨는 “기독병원과 한전 사이에 15층 주상복합 건물이 신축될 예정(2016년)이라는 설이 있다”며 “상가주택이 완공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이 지역은 활기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지금도 일제 만행을 규탄하고 대일청산을 위해 일제 때 강제징집(일본군)이나 징용(보국대)으로 끌러 갔다가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보상금 신청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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