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송씨 500년 세거마을 ‘광승’ | ||||||||||||||||||||||||||||||||||||||||||||||||||||||||||||||||||||||||||||||||||||||||||||||||
우리마을탐방[80]휴천1동 광승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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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 송석충이 1498년 세거지지 마련
휴천1동 광승마을 입지(立地) 이 마을 어르신들과 마을을 둘러보면서 옛 집들의 흔적을 찾아봤다. 이 마을 김종남(84) 어르신은 “휴천1동사무소 앞에서부터 작은 골목을 따라 남쪽방향으로 내려가서 동부맨션(2차) 건물이 있는 곳까지 마을이 있었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송영선(전 중앙초 교장)씨는 “1960년대 광승마을은 200여 호에 1천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휴천1동 소공원(놀이터) 정자에서 이은희 통장(6통), 최옥근 어르신, 김영갑 광승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내력과 옛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광승마을의 역사
광승마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때는 영천군(榮川郡) 봉향면(奉香面) 광승동(廣升洞)이었다. 당시 봉향면은 철탄산 아래 관아(현 시의회)가 있고 마을은 성저(城底, 성밑)와 화천(禾川, 봉화통로)과 망동(望洞, 상망동)과 원당(元塘, 하망동)과 광승(廣升, 휴천1동)과 지천(至川, 휴천2동)과 마암(馬巖, 말바위)과 증귀(增貴) 등 8개 마을이 있었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영주면 휴천리가 되었다가 1980년 시 승격으로 영주시 휴천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지명 유래 광승마을의 지명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이 마을 최옥근(92) 어르신은 “옛날 마을 뒤 산속에 광승사(廣昇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 이름에 연유(緣由)하여 ‘광승’이라고 불렀다”면서 “현재 휴천1동 4, 6, 8통 지역“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지리원에 등록된 지명유래에는 「마을 앞 평야가 넓고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물 속 물고기가 뛰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여 넓을 광(廣)자와 오를 승(昇)자를 써서 광승(廣昇)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주지에는 광승(廣升)이라고 되 승(升)자로 기록되어 있고, 야성송씨 문중 기록에는 오를 승(昇)자 광승(廣昇)으로 쓰고 있다. 또한 현재 쓰고 있는 휴천(休川)이라는 명칭(名稱)은 옛날 마을 앞으로 내가 흘렀는데 물이 자주 말라붙어 물이 흐르지 않을 때가 많아 내(川)가 쉬어 흐른다는 뜻에서 휴계(休溪)라 했는데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휴천동이라는 새로운 지명을 만들었다. 당시 일제는 광승이라는 지명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옛 지명 사용을 금하고 새로운 지명으로 창지개명(創地改名)한 것이다.
야성송씨가 광승에 터 잡은 내력 광승마을은 야성송씨가 500년 세거한 마을이다. 지금도 마을에는 야성송씨들이 수 십호 살고 있다. 기자가 광승경로당에 갔을 때 할머니 10명 중 여섯 분이 “시댁이 야성송씨”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계시냐?”고 물었더니 “돈 벌로 산에 갔다”고 하면서 웃는다. 야성송씨(冶城宋氏)가 광승에 자리 잡은 것은 눌재(訥齎) 송석충(宋碩忠, 1454~1524)에 의해서다. 눌재는 단종 2년(1454년) 5월 28일 한성 호현방(충무로)의 본집에서 태어나 점필재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했다. 1478년(성종 9)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과거를 준비하는 한편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 교유하던 인물들이 화를 입자 서간과 저술을 강물에 던지고 병을 빙자하여 영천군 광승으로 내려가 경서와 역사공부에 몰두했다. 눌재가 낙남(落南)하여 영주에 자리 잡은 것은 처가가 광승에 있었기 때문이다. 눌재의 부인은 옥천전씨로 통정대부를 지낸 휴계(休溪) 희철(希哲)의 딸이다. 휴계(눌재의 장인)는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상장군에 이르는 명문거족이었다.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12살에 즉위하였으나 숙부 수양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것(1455년)을 본 휴계는 분연히 벼슬을 버리고 옥천으로 낙향하였다. 그는 1457년 신병을 핑계 삼아 가솔을 거느리고 처가 곳인 영천(광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니까 휴계(장인)는 1457년에 광승에 터를 잡았고, 눌재(사위)는 1498년에 광승에 은거하였다. 휴계와 눌재는 모두 처가 곳에 터를 잡았은데 휴계가 41년 앞서 자리를 잡았으며, 눌재는 처가 곳에 세거지지(世居之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몸으로 역사를 남긴 기려자 송상도 괴나리봇짐에 죽장망혜(竹杖芒鞋, 대지팡이와 짚신) 차림의 기려자(騎驢子) 송상도(宋相燾, 1871-1946)는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애국선열들의 항일투쟁사를 붓으로 기록하여 ‘기려수필’을 완성했다. 송상도는 1871년(고종 8) 4월 12일 광승마을 가난한 양반가에서 부친 송학영(宋學永)과 모친 박재천(朴齋天)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기려자는 송상도의 호(號)이다.
말탈 기(騎)자에 당나귀 려(驢)자를 써서 스스로 기려자가 된 송상도는 실제 나귀를 타고 팔도강산을 두루 누비면서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기록했다. 그는 이름난 독립운동가 외에도 민초들의 독립운동 사례까지 낱낱이 수집하고 기록하여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현대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1986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장’, 1990년에는 ‘애국장’을 받았다. 1991년 광승에 있던 묘소를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했다. 휴천동 지석묘 및 입석
오랜 옛날부터 이 마을에 살아온 야성송씨들은 이 지석묘에서 매년 정월보름날 동제(洞祭)를 지내왔는데 1972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2010년 이후) 마을노인회 주관으로 다시 동제를 이어가고 있다. 광승마을 사람들 김영갑(여, 82) 광승노인회장은 “2010년에 광승경로당이 개관되어 편히 쉬면서 각종 운동과 친교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휴천동 광승마을은 야성송씨 집성촌으로 역사 깊은 양반마을”이라고 했다. 이갑녀(87) 할머니는 “경로당에 나오는 대부분이 야성송씨 며느리들”이라며 “5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전체가 야성송씨뿐 이었다”고 말했다.
권태임 할머니는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면서 “보름골에서 흘러 온 시내(원당천)가 마을 앞으로 흘렀는데 물이 시름시름 쉬면서 흐른다고 해서 ‘휴천’이라 했다”고 말했다. 류말한(80) 할머니는 “60년전 마을의 모습은 넓은 들판 사이로 안동통로 신작로가 있고 길가에는 미루나무 가로수가 있었다”면서 “당시 들판 가운데 동수나무가 우뚝했는데 그 나무가 지석묘에 있는 동수나무”라고 했다. 권화자(84) 할머니는 “혹시 미나리꽝을 아느냐?”고 물은 후 “미나리꽝은 ‘미나리 논’으로 마을 앞에는 미나리꽝이 여러 군데 있었다”고 말했다. 손봉희(81) 할머니는 “마을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뚜께바위 전설이 있다”고 하면서 “이 전설은 집안과 가문을 살리기 위해 아들(송석장수)을 희생시킨 어머니의 슬픈 사연이 담긴 송씨 가문의 전설”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김수명(72) 어르신은 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이 지역은 원래 논이었으나 영주 대수해(1961년) 이후 개발되기 시작하여 1980년경부터 슬라브단독주택이 많이 들어섰다”며 “30여년이 지난 지금 슬라브 방수가 새기 시작하여 최근(2010년 이후) 마을 전체가 옥상에 비가림지붕을 설치한 것이 마을의 새로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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