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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26] 순흥면 읍내3리 사현정

단산사람 2014. 11. 30. 16:59

경로효친을 으뜸으로 하는 유학의 마을 ‘사현정’
우리마을탐방[26] 순흥면 읍내3리
[488호] 2014년 09월 25일 (목) 09:55:09 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사현정 마을전경
고려 충열왕 때 안석이 아들 축, 보, 집과 쓰던 우물
지역 최초 자력 ‘새마을다리’ 놓고 ‘경로당’을 지은 마을

   
▲ 마을표석
순흥면 읍내3리(사현정) 가는 길

순흥면사무소에서 소수서원 방향으로 돌담길 50여 m 쯤 올라가면 도로 왼쪽에 한국 최고의 경로정원인 봉도각이 있고 담장길 끝 지점에 이르면 읍내3리(사현정→400m)로 가는 길 표석이 나타난다.

표석에서 바로 우회전하면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게 되고 순흥소방서 앞을 지나 약간 내리막 길을 내려가면 유서 깊은 죽계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사현교(다리)를 건너면 천년 역사를 간직한 뿌리 깊은 유학의 마을 사현정에 이르게 된다.

마을 북쪽은 소수서원과 가깝고 마을 남쪽은 석교1리로 이어진다.

옛날 이 마을 뒷산에 신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신당으로 가는 골짜기를 신당골이라고 부른다.

신당골에는 300여(약 9만평) 마지기 가량 되는 농토가 있어 옛 순흥안씨 가문의 ‘문전옥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읍내3리 노인정에서 임광희 이장과 김창건 노인회장, 박정숙 부녀회장,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사현정의 내력과 옛 이야기를 들었다.

   
▲ 돌담길
사현정(四賢井)에 대한 기록
순흥성 동쪽 1리에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순흥안씨 5세조 밀직공 석(碩,고려 충열왕 1282년 문과급제)이 그의 아들 문정공 축(軸), 문경공 보(輔), 재주공 집(輯) 등 4부자가 한 집에 살 때 쓰던 우물이다. 4부자는 덕행과 학문이 뛰어났고 벼슬이 높았으므로 훗날 사현의 유덕을 기리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사현정이라 불렀다.

조선 인종(仁宗) 1년 1545년 신재 주세붕 선생이 풍기 군수로 재임 시 ‘사현정’ 이란 세 글자를 돌에 새겨 우물곁에 세우면서 한 가문의 충효와 우애 그리고 청백의 가풍이 예학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 온다고 일찍이 찬양한 바 있다.

효종 7년 1656년에 순원군 안응창이 다시 비를 세웠고 순조 21년 1821년에 목사 안성연이 비각을 건립했다. 1962년에는 안상규, 안학준이 우물과 비각의 돌담을 조성하고 수리하였으며 1986년 경상북도 기념물(제69호)로 지정이 되었다.

 

   
▲ 사현정과 비각
뿌리 깊은 샘 사현정(四賢井)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길 왼편에 ‘사현정’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 세거해 온 순흥안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용한 샘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현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사현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깊이가 6m쯤 되어 보이는 이 우물은 영주지역에서 현존하는 우물 중 가장 오랜 우물로 기록되고 있으며 족보가 있는 우물로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 순흥안씨 사현기적비
우물 겉모양은 화강암 사각기둥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3단 조립하여 높이가 73Cm 이고 가로, 세로가 118Cm인 정사각형이다. 우물 위에는 화강암 판석을 덮었는데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 우물은 1980년대 까지 마을사람들이 공동우물로 사용했으나 상수도가 공급된 이후 사용이 중지됐다.
이 마을 김쌍란(86) 할머니는 “우리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었다. 새댁 시절에는 하루 종일 버지기로 물 여 나르는 게 일이었다”며 “이 샘은 두레박 샘으로 물맛이 좋아 동네사람 모두 이 물 먹고 장수(長壽)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지역 최초 자력으로 ‘새마을다리’를 놓다
1960년대 당시 우리 지역 농촌에는 어디에도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면 학교에 갈 수 없었고 학교 수업 중에도 비가 많이 오면 일찍 하교를 서둘러 선생님이 아이들을 하나하나 업어서 물을 건너 주어야 했던 때다. 사현정 마을도 비가 많이 오면 읍내리에 있는 학교에 갈 수가 없었으며 계곡에 물이 줄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 사현교(지역최초 마을다리)

이에 마을 사람들은 콘크리트 다리를 놓을 구상을 하게 됐고 정부에 건의도 하였으나 당시 나라의 재정이 다리를 놓아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 공부가 중요하다’며 동회를 소집하여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으기로 하여 모곡(곡식을 모음)이 시작됐고 뜻있는 분의 기부금도 다소 있었다.

   
▲ 임광희 이장
   
▲ 김창건 노인회장

이 마을 김순영(94) 할머니에 의하면 “당시 사현정 출신으로 영주군 국회의원을 지낸 황호영(5대 의원, 60.7.29-61.5.16) 의원이 서울 모 기업체의 후원을 받도록 주선해 주어서 다리발 하나 세울 분량의 시멘트를 지원받았다”고 하면서 “그 당시로는 큰 보탬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웃마을의 후원도 있었다. 소수중학교에 다니는 단산면 병산리와 사천리 중학생들 도 이 다리를 건너 다녔기 때문에 모금에 동참했다고 한다.

   
▲ 박정숙 부녀회장
   
▲ 박영구 씨
김창건 노인회장은 당시 공사 광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는 경운기도 없고 리어카도 없던 때라 부녀자들이 대야에 자갈과 모래를 담아 나르고 남자들은 지게로 물자를 운반하는 등 협동·단결로 다리를 놓았다”고 말했다.

3년간의 모금과 2년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65년 5월 10일 준공한 이 다리는 새마을 운동의 시초가 되었으며 배움을 중요시한 선비정신이 깃든 다리이다.

스스로 힘으로 경로당을 세우다

   
▲ 읍내3리 경로당
마을 가운데 읍내3리 경로당이 있다. 단층 건물이지만 옛 순흥도호부의 모습을 본 따서 지은 건물로 실내가 넓고 덩그렇게 높은 집이다.

이 경로당은 마을 사람들 스스로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마을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 2001년 세운 경로당이다. 경로당 앞 준공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 사현정은 경로효친을 으뜸으로 하는 유학의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힘을 모아 2001년 8월 25일 노인정을 준공하다”라고 기록하였다.

   
▲ 임위순 할머니
   
▲ 김순영 할머니
김창건 노인회장은 “노인정 건립 당시 1백만원을 기부한 사람이 18명이나 되고 70만원, 50만원, 30만원, 10만원 등 60여명이 동참하여 4천여 만원을 모금하였고 동기금과 정부지원금을 합하여 총 9천 940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노인정을 준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현정 사람들

   
▲ 김쌍란 할머니
   
▲ 최춘희 씨
마을탐방 갈 때마다 노인정을 제일 먼저 찾는다. 사현정에서도 노인정에서 박영구(72), 임위순(97), 최춘희(77), 김제영(67) 어르신들을 만나 차 한 잔 나누면서 시집살이 옛 이야기를 들었다.

안동 예안이 친정인 김순영(94) 할머니는 18살에 사현정 무안박씨댁으로 시집왔다고 하면서 “8월에 혼인하고 10월에 신행길에 올랐다.

예안서 순흥까지는 짚차를 타고 왔고 읍내에서 마을까지는 가마타고 올라왔는데 가마 밖으로 보이는 것은 긴 돌담만 보였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을 안길에는 돌담이 많이 남아있다. 할머니들과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임광희(54) 이장과 박정숙(60) 부녀회장이 새마을 복장 차림으로 경로당에 왔다. “순흥향교 향사(9.3)를 하루 앞두고 향교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왔다”고 했다. 순흥면은 지금도 주요 행사를 앞두고 스스로 협력하는 새마을운동이 잘 실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한 마디이다.

   
▲ 김제영 씨
   
▲ 권순관 씨(귀촌1년)

박정숙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은 물이 좋아 장수하는 마을이고, 유학의 마을답게 경로효친을 으뜸으로 여긴다”며 “해마다 정월 보름에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김 한 톨씩 선물을 드리고, 남녀 각 1명에게 신 한 결레씩 선물하는 전통이 50여년 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임광희 이장은 “지금 사현정은 여러 성씨가 살고 있으며 최근 귀촌한 권순관(69)씨 등 모두 34호에 80여명이 살고 있다”며 “사과와 복숭아 농사로 소득을 많이 올리고 있으며 마을 송계(松契)가 있어 마을 발전에 크게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