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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28] 풍기읍 산법리(산의실)

단산사람 2014. 11. 30. 16:19

법 없이도 사는 마을 산법리(산의실) 사람들

우리마을탐방[28] 풍기읍 산법리

[490호] 2014년 10월 09일 (목) 14:07:10 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산의실 마을전경
   
▲ 마을후경

소백지맥이 동서로 감싸 안은 구릉(丘陵) 마을
94년 이어온 ‘호상계’는 마을의 자랑

       
▲ 산법마을표석

풍기읍 산법리 가는 길
산법리는 동양대에서 광복단, 축협한우프라자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면의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법리의 중심 마을인 산의실은 구릉 속에 숨어 있어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산법리로 가기 위해서는 광복단을 가기 전 굴다리 네거리에서 한우프라자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다보면 풍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도로 우측에 ‘산법 전원마을’이란 표석이 나타난다. 한우프라자 앞을 지나 내리막길을 300m 쯤 내려가다가 좌회전해 들길을 500m 정도 올라가면 멀리 비로봉이 구름 아래 선명하고 집들은 도로 좌우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24일 들판이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가던 날 산법리 산의실에 찾았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박상기 이장과 송대식 노인회장, 서경자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산의실의 유래와 옛 이야기를 들었다.

   
▲ 마을수호석, 거북바위

산법리의 유래
이 마을은 옛 풍기군 동부면 산법리(山法里)로 속칭 산의실, 산내실, 산내곡으로 불러 오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 시 영주군 풍기면 산법리가 됐다.

마을 북쪽에는 비로지맥에서 뻗어내린 노인봉(老人峰)이 우뚝하고 그 앞에 옥녀봉과 동자봉 줄기가 마을 동쪽을 감싸고 있다. 서쪽으로는 점방(点方)재에서 토성(土城) 마을 앞까지 쭉 뻗어내린 진등(鎭登)이 있다. 산법리는 동서로 소백지맥이 감싸 안고 있는 내부 구릉(丘陵)지대라는 뜻에서 아기자기한 지명이 생겼다고 박상기 이장이 설명했다.

   
▲ 약수터

산법리의 구성
산법리는 풍기읍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산의실을 중심으로 여러 골짜기에 산재해 형성된 마을이다. 산법리의 중심은 산의실이다.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집들이 있고 마을 공동체의 중심인 마을회관도 여기에 있다. 술바우마을은 산의실에서 북쪽으로 300여m쯤 올라가면 우측에 ‘술바우’라는 표석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옥녀봉과 동자봉 사이에 마을이 있다.
상골내기는 순흥방면 인삼시장 우측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뼈가 부러졌을 때 먹는 ‘산골(접골약)’ 즉 자연동(自然銅)이 나왔다 하여 상골내기라 한다.
산의실 앞들 동쪽 골짜기에는 미륵불이 있었다 하여 부처골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덟임금이 쉬어 갔다는 팔왕골, 재궁이 있었다는 재궁골, 동양대 자리의 잠뱅이들, 이응골, 도장골, 뱅기들, 용마루언덕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 술바우 터

술바우의 전설
송대식(75) 노인회장과 옛 술바우의 흔적을 찾아 술바우골로 올라갔다. 약수터에 차를 세우고 과수원을 가로 질러 술바우를 찾았으나 잡초와 칡넝쿨이 덮혀 술바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술바우는 노인봉 아래에 있는 옥녀봉과 동자봉 사이에 있는 큰바위로 술이 술술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송 회장은 술바우터를 가리키며 “옥녀봉의 옥녀가 노인봉의 노인을 모시고 술바우에서 술을 마시며 노닐던 자리”라며 “이 술은 딱 한 잔만 마셔야 하는데 욕심 많은 스님이 두 잔 먹는 바람에 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송 회장은 또 “이 술바우는 1937년 일제가 사방공사를 핑계로 바위를 부수었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라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술바우를 보존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술바우 맞은편에 약수터가 생겨 등산객들이 목을 축이고 간다.

   
▲ 경로당 안방

한 때 금전(金田)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마을
소금이 나는 밭을 염전(鹽田)이라하고 금이 나는 밭을 금전(金田) 또는 토금광이라 한다.

1930년 경 이 마을에 금전이 개발되어 마을 앞 논밭에서 사금이 많이 나와 수년 간 호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권오경(55) 마을 총무는 어른들로부터 들었다며 “금전이 번성할 때는 3천에서 5천명이 여기에 모여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마을 전체가 함바집(노무자 합숙소)이었다”며 “노무자들이 밥 먹고 간 자리의 흙을 쓸어 모으면 금이 나올 정도로 금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마을 앞 냇가 버드나무 밑에 돌거북 암수 두 마리가 마을 입구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송대식 노인회장은 “이 거북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석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장수(長壽)를 빌어준다”고 했다.

 

          
▲ 박상기 이장
          
▲ 송대식 노인회장
          
▲ 서경자 부녀회장

 

 

 

 

 

 

94년 이어온 ‘호상계’는 마을의 자랑
산의실에는 94년 전 조직된 호상계(護喪契)가 아직도 이어오고 있어 마을의 자랑이다.

호상계는 초상이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초상집에 돈이나 곡식을 태워주는 계로 이는 두레정신에서 나온 미풍양속이다. 이 마을 황필순(68)씨는 “당시 마을의 선비였던 송익순(40년 전 작고) 선생께서 호상계 조직을 주창하였다고 전해 들었으며 계에서 정한 금액을 태워 주고 마을 사람들은 상여매기, 덜구찧기, 부엌일 돕기 등 장례의 모든 일을 분담하여 도왔다”고 했다. 94년 동안 이어 온 계의 장부와 문서는 이장이 보관하고 있으며 마을의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 김태순 노인회총무(남)
          
▲ 박대한 노인회 총무(여)
          
▲ 정호원 개발위원장

 

 

 

 

 

 

어르신들, 교통 불편 해소 요청
산법동에는 현재 85가구(실제농가)에 220명이 산다. 대부분이 노인 인구이고 초등학생은 하나도 없다. 이 마을 김태순(75) 노인회 총무는 “도로가 포장되고 사과농사로 소득도 늘어나서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 그러나 버스노선이 없어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서경자(59) 부녀회장은 “산의실 어르신들은 법과 규칙을 잘 지키신다”며 “회관에서 절대금연, 마을길 청소, 윗어른 공경하기 등 ‘법 없이도 사는 어르신들’이다”고 했다.

서 회장은 또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풍기읍내 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주시에 여러 번 건의하였으나 비용(약 3천만원)이 많이 들어 무산됐다”고 했다. 이에 정호원(63) 개발위원장은 “어르신들의 교통불편 해소를 위해 ‘행복택시 제도’를 시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황필순 씨
       
▲ 권오경 마을충무

산의실 사람들
24일은 태풍 ‘풍웡’의 영향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모두 일손을 접고 회관에 모여 컴퓨터 교육도 받고 다과회를 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박대한(82, 노인회 여총무) 할머니는 “20살에 풍산면 죽전동에서 산의실로 가마타고 시집왔다”며 “초가삼간에 호롱불 켜고 사남매 키우면서 살았다”고 했다.

 

 

   
▲ 박강두 씨
       
▲ 유흥열 씨

산의실 도로 우측에는 산뜻한 통나무집 세 채가 있다. 여기 사는 박강두(60) 씨와 유흥열(61) 씨는 동서지간으로 풍기읍내 아파트에 살다가 3년 전 이곳에 새집을 지어 왔다고 했다.

박강두 씨는 “산의실은 비로봉의 정기를 오롯이 받은 마을로 물과 공기가 좋고 흙향기 짙은 마을”이라며 “마을 사람들 모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법 없이도 사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재경(在京) 산법향우회 권오문(67, 산의실 출신) 회장은 “서울 경기에 사는 산법사람들은 40여명으로 자주 만나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고향을 응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릴 적 돌다리를 건너 학교 가던 일과 마을 골목길에서 자치기 하던 추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또 “산의실 사람들은 예로부터 근면 성실하여 어디에 가도 솔선수범을 으뜸으로 여기고 있으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했다.

선조들은 이 마을을 ‘산법’이라 했다. 아마도 ‘山法’이란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산의실 사람들을 보고 지은 마을이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의실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