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

태진이가 "이 식아 ---,"하고 불렀다.

단산사람 2011. 12. 11. 19:53

 

아주 옛날 기억의 1단계였을 시기 7살 때 였다.

1955년 그 때는 단기를 썼다. 단기 4288년 3월 옥대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아침마다 태진이가 우리집 대문(초가대문) 앞에 와서 "이 식아-"하고 불렸다.

그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식아-" "식아-"하고 불렀다.

그래서 친구들이 성은 "이"요 이름은 "식" 그래서 "이식"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늘 같이 놀았고 오후엔 태진네 집에 가서 놀기도 했다.

봄엔 토끼풀 뜯고 여름엔 안남가는 소에서 멱감고 겨울엔 연날리고 시갯또 타면서 놀았다.

봄소풍은 순흥 소수서원으로, 가을소풍은 부석사로 갔던 기억이 여러 번인 것같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되고 나는 중견교사가 되었을 때

태진 셋째 현영이가 단산에서 영주동부로 전학을 왔다. 

태진이가 영주동부학교 근처에 슬라브집도 한 채 사고 현영이를 전학시켰다.

'교육을 위한 대단한 결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가 아마도 1992년 쯤으로 현영이가 국민하교 4학년 때인 것 같다.

그 때도 눈이 궁글로 얼굴이 희게 보였고 공부도 잘 하고 잘 생겨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해 가을 좌석골에 단풍이 고운날 동부학교 4학년 선생님(홍태숙, 안명숙,

권춘탁, 이원식 등)들이 현영이네집에 갔다. 말하자면 선생님 초대였다.

지금은 콘크리트 슬라브집이지만 그땐 토담집인 것 같다

아주 옛날에는 초가삼간 오두막이었을 것이다 두꺼운 토담벽에 60년대

스레트 지붕으로 개량하여 40여년 살아 온 집이다.

거기서 현영 어머니께서 해주신 밥이 그렇게 맛있었다.

거기서 먹으면 간장만 있어도 꿀맛인데 능이를 무치고 감춰둔 송이가

나오고 정말 진수성찬을 맞이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교단 42년 6개월을 끝으로 지난 8월말 퇴직했다

지난주 태진으로부터 현영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께 태진과 아들 현영이 칭찬 좀 많이해 주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현영을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2011.12.10(토) 08:30 영주시민회관에서 버스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침에 옷입다가 갑자기 코피가 주르르 흐르더니

멈추지 않았다. 승용차로 시민회관까지 갔으나 코피가 멈추지 않아 

난처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잠시후 조금 진정이되어 차를타고 출발했다.

머리를 뒤로젖히고 턱을 치켜들고 비스듬히 누워서 갔다.

서울까지 가면서 또 코피가 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더 나오지는 않았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백악관 웨딩하우스에 도착해서도 조심조심 다니면서

주례 준비를 했다.  예식이 시작되고 주례가 임석하고 결혼식 진행됐다. 다행이다.  

그래서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허허참 황당한 하루였고 다행한 하루였다.

 

 

 

 

10:00 치악휴게소 도착

11:05 이천 휴게소

12:05 백악관 웨딩 도착

예식장 접수석 근처

신부대기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단산친구/우철, 성수, 영식, 창률

 

태진네 내외

예식 직전

양가 혼주 임석

주례사

 

 

신랑신부 내빈께 인사

 

축가/친구

 

 

신랑이 신부에게 드리는 노래

직장동료/축하의 메시지

 

케익 커트

학훈단 의례

선배님, 행복하십시오

 

 

주례와 기념 촬영

 

 

양가 혼주

 

신랑댁 가족

 

 

신부댁 가족

양가 친척

 

 

 

 양가친척, 친지

 

예식장 인근 서울어린이대공원 후문 주차장에있는 미군 장군상/우리버스 대기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