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6,25 이후
우나라 농촌의 삶이란 전적으로 농경 위주였고 원시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움집같은 초가삼간 부엌에는 무쇠솥과 사발 몇 개 뿐이었고
소풍날은 벤또(bento[辨當])도 없어 사발에 밥담아 오는 친구도 있었다.
그당시
그래도 교육열은 대단했다.
피난학교 천막 속에서도 열심히공부를 했고
꼴베고 나무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산다.
2011.9.17(토) 후 2시경
서울 강남 선릉역 인근에서 만났다.
친구 정윤의 아들 결혼식도 보고
선릉과 정릉을 둘러보며 세계문화유산 공부도했다.
어릴적 소풍가던 기분으로 정릉숲을 걸어가면서
어릴적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거린다.
사람들은 이를 동심(童心)이라 했다.
그날 우리는 동심에 젖었었다.
오늘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며
[김성수, 백윤흠, 권오창, 김병은, 김영술, 서종희,
윤필임, 전영식, 이윤방, 박옥, 이경남, 이호창 그리고 나 모두 13명]
그 가정과 직장과 사업마다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늘 씩씩하길--- ---'
서울 지하철 선릉역 인근에 있는 선릉과 정릉
조선왕릉/2009.6.30 세계유산 등록
홍실문/붉은기둥을 세워 신성한 곳임을 알림(신문, 신이 다니는 길)
정자각/제사를 모시는 곳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집대성하는 등 태조 이후 닦아온 모든 체제와 기반을 완성시켜 조선초기의
문화를 꽃피웠으며 1494년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38세로 승하하여
이듬해 4월 6일 장례지냈다.
선릉에서 만남 외국인 젊은 친구
선릉의 호위석
선릉 신도비/성종의 업적을 기록한 비
성종대왕의 계비 정현왕후의 능
(선릉에서 동쪽으로 1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
능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 석등 등이있다.
이는 죽어도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불을 밝히고 바르게 인도하고 안전하게 호위하는
석상들을 옆에 두었다.
정릉은 중종대왕의 능이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1506년 9월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조선 10대 왕인 연산군을 폐비시키고 성종의 차자인
진성대군을 조선 11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여기 선릉과 정릉은 성종부부(정현왕후)와 그 아들(중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정릉신도비각/중종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
(체험학습 온 아이들)
정릉 옆에선 단산 사람들
수복방/능을지키는 수복이 지내던 집/정자각 우측에 있다.
선릉 정자각/선릉 제사를 모시는 집
결혼식장/라마다 서울
라마다 앞
선릉 돌담길
매표소에서 정릉방향 숲길
정릉 숲길/그 날 몹시 더웠다.
동서울 터미널 인근 감자탕으로 저녁 식사후 18:20 폐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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