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가면 고향의 봄을 만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의 고향이 바로 여기인 것 같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고향집, 돌담길, 고향꽃, 고향의 나무를 만난다.
2011.4.2(토) 14:00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띠띠미마을에서
한국문인협회봉화지부(회장 김희선)가 주최하는 시낭송회가 열렸다.
갓 피어난 산수유 그 어여쁜 소짓아래
시와 꽃과 음악이 나래를 펼치는
고운 봄길 속으로 걸어간다.(초대 글 중에서)
띠띠미라는 마을 이름이 참 정겨우면서도 생소하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벼랑을 옛말로는 듬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꽉 막힌 산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래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을 뒷듬이라고 불렀다.
이 말이 뒤뜸-디띠미를 거쳐 띠띠미로 변한 것이다. 지도에는 두동 마을이라고 나와 있지만 인근 마을 사람이나 택시 기사나 하나같이 띠띠미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은 두곡 홍우정(1593~1654) 선생이 병자호란 말기에 내려와 정착했다. 인조의 삼전도 치욕을 참지 못하고 '청나라에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린 채 이곳으로 내려와 은둔 생활을 했던 것이다. 탄탄한 벼슬을 보장받느니 선비의 기개를 지키겠다는 신념에서였다. 그 후 그의 자손이 대대로 뿌리를 내려 마을은 남양 홍씨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도 두 집 가운데 한 집은 남양 홍씨다.
병자호란 때 홍우정 선생이 내려와 산수유 심어
두곡 홍우정 선생이 내려와 터를 잡던 때만 해도 이 마을 주변은 온통 다래 덤불이었다. 홍우정 선생은 서울에서 가져온 산수유나무 몇 그루를 이 마을에 심었고 이제는 봄마다 마을 전체가 산수유 꽃밭으로 뒤덮여 있다.
이 마을의 산수유는 대부분 100년이 넘었고 400년 가까이 되는 것도 있으며 요즘 심었다는 게 보통 60~70년 된 나무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산수유는 주성분인 모로니사이드, 코르닌 등이 풍부하여 자양강장제의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에 익는 산수유의 빨간 열매는 마을 사람들에게 쌀이나 마찬가지였다. 변변한 밭뙈기조차 없는 첩첩산골인지라 산수유 열매는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든든한 저금통장이었다. 의성 산수유도 여기서 분양받아 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산 값싼 산수유가 수입되면서 주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산 위에서 이 마을을 보면 흡사 움푹 들어간 산골짜기에 처박힌 샛노란 소쿠리 같다. 산수유꽃에 가려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을이 온통 샛노란 빛깔에 파묻혀 있다. 네 채 남은 고택의 흙돌 담장 위로 드리운 산수유꽃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이 마을의 산수유꽃은 보통 3월 중순부터 개화해 3월 하순 무렵 절정을 이루며 4월 초순~중순까지도 꽃을 피운다.
모두 20 가옥 중에 절반이 조금 넘는 13 가구가 거주한다는 이 마을의 산수유 꽃밭은 전남 구례 산동이나 경북 의성 화전리, 경기 양평 개군, 경기 이천 백사 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로 봉화가 알려짐에 따라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지난해 찾아왔지만 이 마을의 산수유 꽃밭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직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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