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 이야기/초암 문학

숲속학교의 가을 편지

단산사람 2008. 2. 9. 20:56
 

숲속학교의 가을 편지

      - 숲속학교로 가는 길

         시내를 벗어나 남산 고개를 넘으면 탁 트인 서천백사장과 적서 농공단지가 펼쳐진다. 평은과 문수 갈림길에는 국도와 철길, 자동차전용도로 등 도로가 복잡하다. 옛날 이 근처에 문수원이란 절이 있어 탑거리 라고 불렀고 적벽암(붉은바위)이 있어서 이를 기준으로 동은 적동, 서는 적서라 하였다 한다.

좌 철길 우 강변을 따라 문수로 가는 길은 한가하고 평화롭다. 강변엔 오래 묵은 버드나무 숲과 풍년을 담은들녘이 옹기종기 모여 금빛들판을 이루고 있다. 알곡을 머  금은 황금빛 벼의 물결을 잠자리들이 타고 넘는다. 낮은 언덕길을 올라 적동리로 향하는 길목엔 문수교가 있다. 이 다리는 중앙선이 개통(1941.7.1)되기 전인 1939년 10월에 준공되어 67년이란 세월동안 적동마을의 문지기였고 문수 사람들의 추억의 다리이다. 좁은 농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학교 건물 뒤쪽이 보이고 아담한 솔숲이 나타난다. 여기가 숲속학교 문수초등학교이다. 교문 앞에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데 아이들에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곳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3,000여명의 학생들이 여기를 기웃거리며 남몰래 군것질을 즐기기도 하였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는 사 먹지도 못하고 군침만 흘리던 곳이다.


-학교의 상징 솔숲(솔숲까페)

  교문을 들어서면 양옆이 솔숲이다. 왼쪽에는 학생들의 야외 학습장인데 군데군데 실습대와 의자가 있고 여럿이 자리 펴고 앉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 곳은 지나가던 동네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경로당이 되기도 한다. 이 솔숲이 운동회 날은 솔숲가페가 된다. 경로와 재롱이 함께 먹거리를 즐긴다. 돼지고기도 썰고 부침도 부친다. 운동회날 가장 붐비는 곳이 여기다. 

  오른쪽 솔숲 바닥엔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끼 낀 첨성대와 세련되지 못한 탑과 석등이 솔숲의 오랜 친구다. 솔숲 냇가 쪽으로는 개나리울타리가 있다. 새로 만든 연두색 철망울타리보다 훨씬 정감 나는 울타리이다. 노란 개나리울타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고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울타리 안 쪽으로는 앵두나무, 박태기나무, 싸리나무가 이웃하며 잎과 꽃과 단풍을 만들어 낸다. 

  이 아름다운 솔숲은 개교 당시(1943)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심고 가꾸었고 시설물들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1975년 전 후) 선생님들이 교재원 조성사업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그 당시 선생님들은 모든 게 만능이셨다. 모든 학습 자료와 시설 설비를 손수 만들고 마련하였으며 행사 때마다 현수막도 실내장식도 자급자족하였었다 한다.

-숲속학교의 지킴이 버드나무

  운동장 앞을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다. 옛날에는 ‘사르내’라 불렀는데 넓은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씨름도 하고 달리기도 하였다니 우습기만 하다. 아마도 그 땐 시내가 저쪽 산 밑까지 펼쳐져 있었고 시냇가에 버드나무가 서 있었는 것 같다. 이 학교 졸업생들이 모교를 찾아와 보고 느낀 소감은 ‘달라진 것은 소나무가 높이 자란 것 뿐’이고 그 넓던 운동장과 앞 냇가 백사장이 손바닥만큼 작아 보인다고 하였다.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 세상은 넓다는 것이 실감나는 지금이다.

  우리 학교 제1회(학교 뒤 최교창 선생님) 졸업생들이 운동장 가에 심었다는 버드나무는 60여년의 세월과 함께 아름드리 고목으로 변했다. 가을 내내 흙을 덮은 낙엽으로 아이들이 물장난도 하고 눈싸움도 한다. 가지 사이로 바람이 머문 숲에서 가만가만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수군수군 오랜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난여름 바람과 그늘을 선사해 준 버드나무가 가을에 더 고맙게 느껴진다.  

  

-농부가 그린 그림

  중앙현관 양쪽에 작은 연못이 두 개 있다. 왼쪽에는 어리연과 창포가 바다와 하늘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오른쪽에는 수련과 부들이 아랫집 윗집 정을 나눈다. 아랫집 물속에 뿌리를 둔 풍선열매넝쿨이 부들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빨간 열매를 맺었다. 참 정겹고 소담한 풍경이다.

  교실 뒤편 담장에는 장미넝쿨이 있다. 지금은 엉성하고 푸른 잎만 남았지만 지난 5월엔 붉은 아취동산을 이루어 열정과 희망이 솟아오르던 곳이다. 이층에서 내려다 본 뒷마당은 호젓한 별당 같은 느낌이 든다. 낮은 담장 곁에 빨간 꽃을 피운 홍초가 키 큰 해바라기를 쳐다보며 파란 하늘을 보라 한다. 정말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다. 하늘에는 고추잠자리가 높이 날아오르고 숲속 참새 떼들의 재잘거림이 제법 크게 들린다. 군데군데 향나무 사이에 피마자, 맨드라미, 꽈리가 가을빛을 자랑한다.

  학교 주변엔 논과 밭 그리고 마을이 있다. 여기서 농촌을 지키고 사는 농부들은 흙을 사랑하고 농사만을 바라보고 산다. “흙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조상들의 말씀만 믿고 산다. 모두 가난하고 착하고 순박하다. 이 시대에 농사를 짓는 일은 거룩하고 존경 받을 만하다. 자연이 준 도화지에 농부가 그림을 그렸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아름다운 금빛들판을 볼 수 없다. 이 농부들은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이 분들이 그린 자연의 그림이 있기에 숲속학교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숲속학교 사람들 

  이 숲속학교에는 유치원 11명과 초등학생 53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산다. 본관 뒤쪽에 유치원이 있는데 장미향 선생님과 예쁜 꽃송이 열 한 송이가 있다. 날마다 날마다 무지개 빛으로 예쁜 그림을 그리며 고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1학년 개구쟁

이들은 칠 형제다. 각기 다른 꿈을 가졌다. 선생님, 의사, 발레리나 등 7인 7색 꿈

이 다르다. 고집통, 심술통, 능청통, 야시통 등 성격도 가지가지다. 조명섭 선생님은 근엄하시면서도 자상하시다. 오랜 교단 경험과 지극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신다. 명석한 두뇌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라고 가르치신다. 2,3학년은 복식학급이다. 이명숙 선생님은 고단한 일상이시지만 항상 밝은 웃음과 보람찬 표정이시다. 지난 5월 장미넝쿨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보면 선생님과 11명의 꿈동이들. 모두 밝고 행복하다. 건강하고 씩씩해서 행복하고 서로 돕고 사랑해서 행복해 한다. 숲속학교에서 가장 식구가 많은 집이 4학년이다. 아이들은 임광종 선생님을 잘 따른다. 이 집에는 피아노도 있고 마림바(목금)도 있다. 가끔씩 기악합주 시간에는 아름다운 화음이 창 밖으로 피어 흐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도 있고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도 있다. 화음 15형제들은 오늘도 즐겁다. 숲속학교에 작은 농장이 있는데 바로 5학년 농장이다. 심고 가꾸어 열매도 따고 추수도 한다. 어느 날 점심 식탁에 배추쌈과 고추가 나왔는데 5학년 농장에서 생산되었다고 하였다. 담임 안순남 선생님과 여덟 친구들은 늘 독서를 즐기면서 산다. 항상 책을 한 아름씩 안고 다니고, 책에 집중하고 있을 땐 교장선생님도 숨을 죽이고 복도를 지난다. 숲속학교 맏형인 6학년들은 엄청 크고 성숙해 보인다. 담임 박미정 선생님 보다 더 큰 총각 처녀들이 많다. 하지만 덩치만 컸지 자세히 보면 어린 소년, 소녀티에 귀염이 졸졸 흐른다. 학교에 어렵고 힘든 일은 도맡아 하고 학교의 명예를 빛내는 일에 앞장선다. 육상대회, 줄넘기대회, 항공과학대회, 백일장 등에 나가서 금메달도 많이 따 왔다. 6학년들은 수학도 음악도 즐기며 공부하고 요리 실습과 바느질도 잘 한다. 5,6학년이 함께 운동장에서 체육 할 때는 운동장이 그득하고 학교다운 느낌이 든다. 지금 6학년이 졸업하고 나면 학교가 텅 빌 것 같다.

  

-강가마을과 다락마을

  숲속학교에 노란버스가 두 대 있다. 강가마을과 다락마을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등하교 시킨다. 임상근 기사님과 김진덕 기사님은 늘 걱정이 많다. 넓은 내성천을 건너야 하는 아이도 있고 산골길을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친구도 있기 때문이다. 기사님들은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우상(偶像)이다. 차 안에서 구구단도 외우고 동현의 교훈도 외운다. 사랑과 봉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시고 마을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택배 역할도 해 주시고, 급히 병원 갈 때는 119가 되어 주신다. 그래서 여기 아이들은 사랑을 안고 학교에 오고 행복을 담아 집으로 간다. 

  숲속학교의 아침은 더욱 활기차다. 학교 방송을 타고 잔잔한 음악이 솔숲에 흐르고 버드나무 가지를 흔든다. 학교의 지킴이이신 김복환 주사님은 솔숲을 가꾸면서 아이들과 친구하여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신다. 경운기를 타고 일터로 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학교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학교에 희망을 걸고 산다. 여기에 또 학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학교운영위원님이 다섯 분 계신다. 모두 지극 정성이시다. 박천

주 위원장님과 김삼선 부위원장님, 이재란․정현경․한현상 위원님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성이 대단하시다.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동참하시면서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기에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사과 향과 고구마 맛

  숲속학교 교무실엔 달콤한 사과 향기 번지는 코끝의 즐거움이 있고, 구수한 고구마를 만나는 입 안의 즐거움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면서 정나누기를 한다. 여기 중심엔 넓은 가슴과 순후(淳厚)한 웃음을 가득 담은 김시한 교감선생님이 계시고, 교무행정 지원의 달인이신 디지털 천사 안정미 선생님이 있다.

  가을 들어 숲속학교가 새롭게 단장(도색)을 하였다. 예쁘게 분도 바르고 눈썹도 그렸다. 식당도 새 모습으로 바뀌었고 울타리 모습도 달라졌다. 이 모든 게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반정식 행정실장님이 오랜 고민 끝에 밑그림을 그리고 요청과 지원이 모아져서 완성된 것이다. 실장님은 학교의 어머니 역할을 하신다. 모두 집으로 가고 어둠이 내려도 교단 지원과 살림살이 걱정으로 행정실 불을 밝힌다.

  

-푸른솔을 출판하면서

  결실은 가을의 것이고 보람 또한 가을의 것이다. 정성 없는 결실 없고, 땀 없는 보람 없다. 여기 푸른솔(교지校誌)에는 문수 교육 가족 모두의 땀과 정성이 있고 사랑과 감동이 있다. 2006 우리는 오감(五感)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해왔다. 그 모두를 푸른솔에 담았다. 이 푸른솔이 나오기까지 지도와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교직원 여러분들과 학교운영님, 남용진 총동창회장님과 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편집 출판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해 주신 안정미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푸른솔이 있어 행복하고 푸른솔을 사랑한다.

  이 가을 푸른솔과 함께하는 문수교육가족 가정에 결실의 보람과 면학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원한다.  


2006. 가을 문수 솔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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