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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06] 영주2동 성저마을

단산사람 2016. 5. 28. 17:25
우리마을탐방[106]천년 역사 간직한 구성산 아래 ‘성저(城底)마을’
영주2동 성저마을
[568호] 2016년 05월 16일 (월) 11:46:30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성저마을 전경

역사유물전시관 구성산성과 성밑
조선개국 정도전과 고려충신 권정

 

영주2동 성저마을의 위치
성저마을은 영주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구성공원 아래에 있다. 구성오거리에서 세무서 방향 영주우체국 뒤편 지역으로 행정구역상 영주2동 1,2,4,5통이며, 봉송대에서 아카데미모텔-영주감리교회-영빈숯불-영주포교당까지 길게 이어진 마을이다. 지금은 구성공원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구성산성’이라 했으며, 영주지에는 구산(龜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산에는 신라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 까지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역사유물 전시장이다. 지난 26일 성저마을의 내력을 알아보려고 구성산에 올랐다. 영주2동 심창호 1통장의 주선으로 권오섭 안동권씨 후손, 황재갑 마을 원로, 강현필 노인회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근대사 이야기를 듣고 왔다.

  
▲ 50년대 구성산의 모습

영주 역사 구성에서 시작

최초의 영주지 취사편(1625년)에는 고을 이름의 변천과정을 「삼국시대 때 날이군, 내령군, 고려 때 강주군, 순안군, 주영주, 구성(龜城), 조선 때 영천군이 됐다」고 했으며, 여지승람에는 「군의 옛 이름은 구성이다」라고 했고, 제민루 기문에는 「영주가 군이 된 것은 옛날 신라 때 대도호였고 인물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영주지에는 구성을 구산(龜山)으로 기록했다. 구산은 거북이 모양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영주의 역사는 구성산에서부터 시작됐다. 신라 21대 소지왕(479~500)은 당시 고구려와 접경지대인 내기군(영주)에 수차 순시 왔다는 기록이 있고, 소지왕과 이곳 호장 파로의 딸 벽화와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서귀대 무신탑’ 이야기 등 1500년 전 역사가 전해지고 있다.

  
▲ 삼판서고택 옛 모습

역사 속의 성저마을

조선 때 이 지역은 영천군 봉향리에 속했다. 영주지는 「봉향리의 속방은 망동방, 사례방, 성저방, 광승방, 화천방, 원당방, 지천방, 마암방, 증귀방 등 9방이 있었다」고 했다.

성저방(城底坊)은 성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조선 때부터 정식 행정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폐합하여 ‘영주군’이 되면서 영주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성저마을에 어떤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역 원로들의 기억 속에는 ‘삼판서 고택이 있었다는 것과 안동권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

  
▲ 봉송대

삼판서고택과 봉송대

성저에는 조선 제일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생가터가 있었다. 판서(判書)가 3명이나 났다 하여 삼판서 고택터로 알려진 영주2동 431번지다. 예전에 웅장한 ‘ㅁ’자형 한옥이 자리했다는데 지금은 양옥이 들어서 옛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이성계와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이지만, 그가 살았던 옛터에 팻말 하나 없으니 쓸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 이르러 보자면, 구성산의 주인은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아니라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권정(權定, 1353~1411)이다. 삼판서 구택터에서 구성산 서쪽굽이를 돌아가면 권정을 기리는 봉송대가 있다.

또 산벼랑 밑에 권정의 신도비가 있는데, 신도비 안쪽으로 들어가면 권정의 정신을 기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바위글씨가 있다. 그곳에서 구성산을 오르면 권정을 배향했던 구호서원(鷗湖書院)터와 역시 그를 기리는 반구정(伴鷗亭)이 나온다. 삼판서 구택터에서 반구정까지 300m도 안 되니 아주 가까운 거리다. 이쯤 되면 정도전을 압도하는 권정이 누굴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권정은 안동 예안 북계촌 사람으로 1386년 문과에 급제 후 좌사간 김해부사를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봉송대와 반구정은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에 있었던 것을 영주에 사는 안동권씨 후손들이 1720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구성산 서쪽 지역이 안동권씨 문중터이기 때문이다.

  
▲ 권정의 신도비각

구성산성의 유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각 고을마다 성(城)을 쌓도록 하여, 당시 영천 고을에서는 이 봉우리를 요충지로 여겨 흙과 돌로 성을 쌓았는데, 이 산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여 거북이 구(龜)자를 써서 ‘구성산성(龜城山城)’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태종 때에 구성산성의 이름을 따서 고을 이름을 ‘구성(龜城)’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영천군지에 의하면, 당시 성의 둘레는 1,281척, 높이는 9척 이었으며, 성 안에 우물이 하나 있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고, 또한 무기를 보관하는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왜정시대에 일본이 각 고을마다 민족의 역사적인 유적지의 의미를 잊게 하기 위하여 공원이란 이름을 붙여서 놀이터로 만들었다.

  
▲ 가학루

구성산 가학루

구성공원 정상에 높다란 누각이 있는데, 이 누각을 ‘가학루’라 불러 오고 있다.
영천군지에 의하면, 이 누각은 본래 조선시대 영천군 동헌의 문루로서 영주초등학교(옛 영천군 관아 터) 뜰에 있었는데, 1923년 군수 전성오가 구성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이건기에 의하면, “이 누각은 옛 동헌의 바깥 문루로서, 학교 운동장을 넓힘에 있어 부득이 철거해야 할 사정이므로, 이건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민이 물력을 내어 구성공원에 옮겨 세웠다”고 했다.

  
▲ 구호마을

구호마을(鷗湖洞)

봉송대 오른편 옆길을 지나가면 구성공원 서편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구호동’이라 불러오고 있다. 조선 정조 때 향내 유림에서 세운 구호서원(鷗湖書院)이 언덕위에 있었다고 하여 구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호마을은 1961년 영주대수해로 물길이 돌려진 후 형성된 마을이다. 경로당에서 만난 류숙효(80)·장순임(82)·최윤희(84) 할머니는 “이 마을이 생길 때부터 이곳에 살았다”며 “구성산에 구호서원이 있어 구호마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구호마을은 60년대에 지은 건물이 많으며 골목이 좁고 단충 기와집이 많다.

영주2동분회경로당
봉송대와 불바우 사이에 「奉松臺 不事二君」이라고 새긴 바위글씨 앞에 영주2동분회경로당이 있다. 강현필(80) 노인회장은 “오늘 경로당에서 안동 신도청에 가서 황병직 도의원의 안내로 도청 구경 잘 하고 왔다”며 “우리경로당은 장소는 비좁지만 어느 경로당보다 단합이 잘 되고 참여회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마을 김대규(78) 어르신은 “경로당 앞에 있는 불사이군 바위글씨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봉송대와 반구정의 주인인 고려 충신 권정의 충성심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박영환 사무장는 “우리 경로당은 서로서로 봉사하고 솔선수범하기 때문에 잘 돌아간다.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은 공동생활을 함께 할 수 없다”며 “우리 경로당이 영주시에서 가장 모범 경로당”이라고 자랑했다.

  
▲ 불사이군 바위글씨

성저마을 사람들

심창호 통장은 “구성공원 주변 지역은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선정되어 둘레길이 조성되고 할머니 묵공장도 짓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역사탐방과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판서고택은 원래 성저마을에 있었다. 이날 지역 원로 황재갑(74) 선생과 삼판서고택 옛 터를 찾아봤다. 황 선생은 “삼판서고택은 정도전이 태어난 집으로 원래 있던 자리는 아카데미모텔 동편 2층 빨간 기와집 자리”라며 “‘ㅁ’자 고택이 세월의 무게를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1961년 영주대수해 때 침수된 후 곧 철거됐다”고 말했다.
권오섭(80) 안동권씨 후손은 “안동권씨 영주입향조는 고려 충신 권정 선조의 둘째 아들 권요(權曜, 1379-1460) 선조가 영주로 피난와서 생원 민의의 사위가 되셨다. 이후 후손들은 구성산 아래를 중심세거지로 뒤새, 사례, 미림, 원리, 지동 등지에 살았다”고 했다.

김대성(64) 새마을회 총무는 “‘삼판서고택 구지(舊地)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표지판이라도 세웠으면 좋겠다”며 “옛 성저마을을 잘 정비하여 역사문화 체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성저마을은 도로변은 상가지역이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무속인들의 집이 많고 70년대 달동네 모습 그대로 이다. 

 

  
▲ 권오섭 안동권 씨 후손
  
▲ 심창호 통장

 

 

 

 

 

  
▲ 김대성 전 새마을 총무
  
▲ 황재갑 지역원로

 

 

 

 

 

 

  
▲ 박영환 노인회 사무장
  
▲ 강현필 노인회장

 

 

 

 

 

 

  
▲ 류숙효 노인회여부회장
  
▲ 김대규 어르신

 

 

 

 

 

 

  
▲ 장순임 할머니
  
▲ 최윤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