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04] 부석면 보계2리(모치) 진달래 피고 산새가 지저귀는 평화로운 마을 ‘모치배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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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만든 다락논이 많은 마을 부석면 보계2리 가는 길 구보교를 건너면 자라바위가 보이고, 산길로 접어들면 계단식 논배미들이 이어져 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산자락 아래 작은 마을이 여럿 보인다. 여기가 야산 속에 꼭꼭 숨은 피난처 ‘모치배미’다. 지난 10일 오후 모치배미에 갔다.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황경호 이장과 강신정 노인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10여분 후 마을 사람들이 한방 가득 모였다. 마을에는 이름난 문화재도 없고 오래된 고택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성하여 많은 이야기를 담아왔다.
역사 속의 모치마을 보계2리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전국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부 도강면(道講面)에 속했다. 순흥지에 보면 도강면에는 우수동(愚수洞), 석탄(石灘, 도탄), 각암(角巖, 불바우), 보계곡(寶溪谷), 문좌곡(文佐谷), 모치방(慕癡坊), 영모암(永慕菴), 도봉(道峯) 등이 있었다. 모두 낙하암천(落霞巖川)을 기준으로 서편에 있는 마을로 ‘모치방’이 ‘모치’마을이다. 그 후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부 도강면의 보계, 모치, 각암리를 병합하여 보계리라 하고, 영주군 부석면에 편입됐다. 1950년 6·25 때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어 큰 마을이 됐다.
마을의 구성 보계1리에서 보계2리로 넘는 고개를 ‘모치고개’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개냉이목재’라 불렀다고 한다. 보계2리는 모치고개를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상모치’, ‘중모치’, ‘하모치’로 구분했다. 상모치에는 ‘점마’와 ‘응징’이 있고, 그 아래 마을을 ‘중모치’ 또는 ‘원모치’라 하는데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이다. 중모치에서 남쪽으로 700m 쯤에 있는 마을을 하모치라 부르다가 150년 전 부터는 ‘오룡골’이라 부른다. 황경호 이장은 “마을별 가구 수는 점마 8가구, 응진 4가구, 중모치 20가구, 하모치 7가구 등 40여 가구가 산다”고 했다.
지명유래 그런데 모치라는 새는 한자로 모치(茅치)로 쓰고 있어 모치의 정확한 유래는 찾지 못했다. 다만 일제가 강제로 마을 이름을 바꾼 이웃마을 사례로 볼 때 원래 모치(慕癡)를 모치(毛致)로 창지개명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점마는 예전에 옹기 굽는 굴이 있었다 하여 점방의 점자를 따 점마라 했고, 응징(鷹亭)은 마을 앞산 모양이 매의 부리와 같다하여 매 응(鷹)자를 써 ‘응정’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응징’이 됐다고 한다. 하모치 지역에 있는 오룡동은 앞산에 용을 닮은 다섯 봉우리가 있다 하여 오룡동이라 했다고 전해 온다. 수십년전까지는 모치를 ‘모치배미’라고 불렀다. 모치는 ‘모치래기’라는 새의 이름에서 나왔고, 배미는 논을 세는 말(言)이다. 모치에는 논배미가 많아 ‘모치배미’라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의 개척과 다락논 아주 옛날 이곳은 사람도 길도 없는 두메였다. 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마을 어르신에 의하면 개냉이목재 아래에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점마, 응징, 원모치(회관마을), 하모치, 오룡골 순으로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강신정 노인회장은 “예전에 안동권씨 일족이 다래덤불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들었다”면서 “그 후 순흥안씨도 살았고, 주변에 양천허씨, 골래박씨 묘소가 여럿 있다”고 했다.
옛 순흥부 동원면 등영에 안동권씨가 많이 살았다. 등영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다보니, 가구 수가 점점 늘어나 구구리, 보계리 쪽으로 살림을 나거나 이주하게 됐다. 조선 때 중추부사를 지낸 권계상(權繼常, 안동인, 1726-미상)이 1750년 경 등영에 살다가 오현으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이 무렵 안동권씨 일족이 모치로 이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때가 250년 전이다. 사람들은 산비탈을 개척하여 다락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다락논이 많은 마을이 됐다.
모치의 미풍양속 어느 마을이라도 그 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있다. 이 마을 김시영(66)씨에 의하면 “모치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90여호에 1천여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곳곳에 붉은 흙을 뿌려 악귀를 쫓아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자시(子時)에 서낭제를 지냈다. 이 때 헌관은 마을에서 가장 덕망있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정하였으며, 마을 샘물로 목욕재계하고,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냈다. 보름날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남녀로 편을 갈라 3판 2승 줄다리기를 했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해마다 여자편이 이기도록 남자가 양보했다고 한다. 서낭제와 줄다리기는 70년대까지 이어오다가 농촌 인구감소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원모치 마을 뒤에 100여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여름이면 마을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음력 7월 풋굿 때는 술과 음식을 나누는 축제장이 됐다. 박정원(80) 어르신은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 모두가 비료를 주고 정성껏 가꿔온 동수나무(洞守木)”라며 “지금은 마을 회관에 모이지만 예전에는 동수나무 밑에 모여 회의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고 했다.
모치마을 출향인들 모치 출향인들은 고향사랑이 남다르다. 회관을 지을 때 30여명이 협찬금을 보냈고,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은 7-80여명이 고향을 찾아 윷을 논다. 또 벌초 때와 추석에는 경로잔치를 열어 어르신들을 모신다. 마을사람들이 손꼽는 출향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부산항만부두노조위원장 정하섭(67)씨, 마을을 후원하는 든든하는 재력가(서울) 박병식씨,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정익씨의 자 이영준(38)씨, 박사학위 받은 권영한씨의 자 권오진(37, 삼성전자)씨, 메리츠증권 김도원(34) 인사과장, 송문성(76) 철도홍익노조지부장, 박병국(71) 전국농촌지도자중앙회장, 윤원희(63) 육군중령, 송병오 쌍룡정유대구경북지사장, 경북전문대와 동양대에서 총무과장을 지낸 김시영(현 바르게살기영주시협의회장)씨 등이 거명됐다.
모치배미 사람들 성남에서 귀농한 백승조(59)씨는 “이 마을은 애로사항이 없는 게 문제일 정도로 서로 돕고 화기애애한 마을”이라며 “정말 애로사항은 따로 있다. 영주에 병원다운 병원이 없어 애로가 많다”고 했다. 신대운(58) 새마을지도자는 “모치배미는 예전부터 다락논이 많은 마을로 이름이 나 있다”며 “지금은 경지정리로 기계 농업이 가능해 졌고, 농업의 대형화로 100마지기 이상 벼농사를 짓는 가구도 있다. 또 과수와 축산으로 부농을 이룬 마을”이라고 말했다. 정정옥 부녀회장은 “아침 공기가 상쾌한 마을이다. 마을 주변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났다.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마을이 바로 여기인 것 같다”고 했다. 김태재(72) 노인회 총무는 “지금은 포장도로지만 80년대까지 소달구지길 밖에 없었다”며 “어디에서 봐도 마을이 보이지 않아 6·25 때 피난처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정도명(61)씨는 “마을은 작아도 화합과 재력이 탄탄한 마을이다. 2015년 부석면 체육대회에서 22개동 중 1위를 차지하여 우승기를 받았다”고 했다. 경로당 할머니 대표로 나오신 정춘자(75) 할머니는 “예전에는 논농사만 짓다가 지금은 축산과 과수를 많이 하는데, 다른 마을은 서리나 우박 피해가 많지만 우리마을은 언제나 안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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