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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98]순흥면 지동2리(율수마을)

단산사람 2016. 3. 28. 22:03
가전충효(家傳忠孝) 세향복록(世享福祿)의 ‘율수동천’
우리마을탐방[98]순흥면 지동2리(율수마을)
[560호] 2016년 03월 11일 (금) 13:44:41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 율수마을 전경

‘재산을 물려주지 말고, 충효를 물려주라’
팽나무와 우물을 성황신으로 모시는 마을

순흥면 지동2리 율수 가는 길
율수마을은 순흥면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마을로 옛 순흥부 수구(水口) 머리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영주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방향으로 향한다. 귀내-장수고개-판타시온 앞을 지나 동촌고개를 넘으면 피끝마을이다. 동촌2리 조개섬회전교차로에서 순흥방향으로 2km 가량 올라가면 도로 좌측에 수백년 수령의 팽나무 두 그루와 ‘율수동천(栗藪洞天)’이란 마을표석이 보이는데 이 마을이 율수(밤쏘)마을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율수마을에 가서 윤상호 노인회장, 권오선 어르신, 이원건 선생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을의 역사와 율수동천 내력을 듣고 왔다.

  
▲ 마을표석 '율수동천'

율수마을의 역사


율수(栗藪)마을이 위치한 지동리 지역은 조선 태종 14년(1414년) 군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도호부 대평리(大平里)에 속했다.(영조 이후에 대평면이 됨) 1849(헌종 15년)에 펴낸 순흥지(梓鄕誌)에 보면 당시 대평면(大平面)에 있는 마을은 ‘아신(衙薪, 관아, 면사무소 인근), 성하리(城下里, 순흥초 부근), 사현정(四賢井), 석교(石橋), 신촌(新村), 산파(山坡, 산파단), 죽동(竹東), 세포(細浦), 묵동(墨洞), 태장(台庄), 한산동(漢山洞) 등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율수’라는 마을이름은 없다.

순흥지 산천편에 보면 「‘율림(栗林), 고을 남쪽 5리에 있다.’ ‘죽계수(竹溪水),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백운동, 율림, 죽동을 지나 동원면 사천에 합쳐진다’」라는 기록에서 율림이 나온다. 이 율림이 곧 ‘율수’이다. 그러나 율림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부터인지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 율수노인회관

율수의 지명유래

율수는 ‘밤나무 숲’이란 뜻이다. 율수의 전래 동명은 ‘밤쏘’이고, 한자 동명은 밤나무 율(栗)자에 숲 수(藪)자를 써 율수(栗藪)라고 했다.

이곳은 옛 순흥도호부 때 수구(水口)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순흥 비봉산을 주산으로 남쪽을 내려다볼 때 좌청룡에 해당되는 산줄기가 군자산의 낙맥(落脈) 개암(蓋巖, 개바우, 덮개바우라고도 함)이고,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줄기가 송학산의 낙맥 고암(鼓巖, 북바우)이다. 순흥의 수구머리인 개바우와 북바우가 고을을 감싸 안지 못하고 벌어지고 어긋나 있어서 복(福)이 빠져나가는 형국이고, 사악한 사기(邪氣)가 들어오는 형상이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수구를 막기 위해 밤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다. 율수는 곧 ‘율림’이고 ‘밤나무 숲’이란 뜻이다.

  
▲ 동신이 된 팽나무

개바우산 돌무더기


개바우산은 율수마을 앞 죽계 건너에 있는 야산이다. 이 산에 올라가면 죽계의 돌을 옮겨다가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았다. ‘무슨 의미일까?’

이 마을 권오상(68)씨는 “이 돌무더기는 옛 순흥부 때 부의 수구머리가 낮아 인위적으로 산을 높이기 위해 죽계의 바닥돌을 사람들이 짊어지고 산으로 운반해서 쌓은 것”이라며 “당시 선조들은 풍수지리를 신격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순흥을 흥(興)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는 증표”라고 말했다.

윤상호 노인회장은 “가시달린 밤나무를 심어 사악한 기운을 막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산 위에 돌무더기를 조성했던 선조들의 애향심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순흥을 아끼는 사학자들은 “옛 순흥부 사람들이 이곳에 ‘밤나무를 심은 뜻’은 순흥의 번성을 위해서였다”며 “선조들의 순흥부 사랑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이곳에 율림을 다시 조성한다면 순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가전충효 세향볼록

율수동천 상자지향


마을 초입에 율수동천(栗藪洞天) 상자지향(桑梓之鄕)이라고 새긴 거북이 모양 바위가 있다. 마을 표석이면서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율수동천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 마을 이원건(66, 한학자) 씨는 “동천(洞天)이란 산과 내로 둘러 싸여 경치가 좋은 마을을 뜻한다”며 “‘율수동천 상자지향’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 조상님들이 복을 누리고 살아 온 땅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율수동천(표석)측면에는 가전충효(家傳忠孝) 세향복록(世享福祿)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노영 마을원로는 가전충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집집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말고, 충(忠)·효(孝)를 물려주라! 그러면 자손들이 세세무궁토록 복록을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 대대손손 ‘충효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 동신이 된 우물

성황신이 된 팽나무와 샘


순흥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성황신을 모시는 제의(祭儀) 또한 특이하다. 두레골 성황제는 금성대군의 혈석을 모시고, 죽동성황당은 금성대군의 부인 완산부부인(전주최씨)을, 배점성황당은 대장장이 출신선비 배순을 성황신으로 모신다. 그리고 율수마을은 팽나무와 샘(泉)을 성황신으로 모신다.

이 마을 권오선(81) 어르신은 “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는 수령이 500년이고, 샘 또한 5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하면서 “선조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팽나무와 샘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성황제를 지낸 문서(장부)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정월대보름에는 헌관에 김노영(75)씨, 축관에 이원건(66)씨, 도가에 권오상(68)씨를 제관으로 선정하여 당 나무와 우물 앞에서 성황제를 올렸다. 제물은 메와 국, 탕과 나물, 3실과와 포, 조기 등 간소하다. 헌관이 잔을 올리고 축관이 독축했다.

“성황신이시여! 율수마을에 덕복(德福)을 내려 주시고, 모든 동민들에게 골고루 그 빛을 비춰 주옵소서. 만물과 곡식이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하옵시고, 액운을 물리치시어 가정마다 큰 복록(福祿)을 누리게 하옵소서. 삼가 폐백과 정성껏 빚은 술과 제물을 바치오니 흠향하시옵소서”라고 축원했다.

이어서 소지를 올린다.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건강과 행운을 달라’고 축원했다. 또 마을의 축산번창과 복숭아 농사풍년, 학생공부, 군대간 아들 무사안녕, 승진과 영전 등 축복을 달라고 빌었다.

  
▲ 율수성황제

율수마을 사람들


율수마을은 들 한가운데 있고 마을 앞에 죽계가 흐른다. 농업이 크게 발달한 마을로 마을 한복판에 원동기 정미소가 있다. 3년전까지 가동되다가 멈췄다고 한다.

금주연(52) 새마을지도자는 “우리마을은 순흥면 지동2리에 속해 있으며, 현재 농가호수 30호에 60여명이 산다”면서 “벼농사 중심 농업이 발달하였고, 최근 복숭아 농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 마을 출신으로 경기 이천세무서장을 지낸 이원봉(59)씨는 지난 연말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전 세무서장은 1976년 10월 서울 용산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40여 년 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귀향한 것이다.

그는 “내 고향 율수는 산 좋고 물 좋은 율수동천”이라며 “선조들이 복덕을 누리며 살아 온 이 땅을 잘 보존하고 자랑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귀향 소감을 밝혔다. 이 마을에는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 사람들이 반기고 있다.

박순자(85) 할머니는 “예전에 정월보름날 샘 청소를 하고 나면, 먼저 새물을 길러가기 위해 줄을 서야했다. 새물로 찰밥을 지어 먹으면 좋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했다.

김옥녀(80) 할머니는 “새댁 시절, 마을에 큰일(혼례)이 있을 때는 술, 묵, 두부, 감주를 해서 부조했다. 어느 날 술버지기를 이고 죽동 돌다리를 건너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남사시럽기도 하고, 시어머니께 야단맞을 일을 생각하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마을의 자랑이 뭐냐?’라는 질문에 최후임(77) 할머니는 “경로당 앞에 보면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과실은 서로 경계하며, 예다운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 근심과 어려움에는 서로 구해서 지낸다’라고 돌에 새겨져 있다. 이게 우리마을의 자랑이다”라고 말했다.

박분하(75) 할머니는 “50년전 마을의 집들은 모두 초가집이었다”며 “검은 흙과 돌을 쌓아 지은 토담집이 많았고, 양쪽에 합판을 대고 논흙을 비벼넣고 다진 판담집도 있었다. 흙집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지만 물에 약했다”고 말했다.

율수마을의 당나무와 당샘의 내력을 알아보면서 순흥의 역사와 시간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순흥면 율수마을 사람들>

  
▲ 권오선 어르신
  
▲ 윤상호 노인회장

 

 

 

 

 

 

  
▲ 김노영 어르신
  
▲ 박순자 할머니

 

 

 

 

 

 

  
▲ 최후임 할머니
  
▲ 김옥여 할머니

 

 

 

 

 

 

  
▲ 권오상 씨
  
▲ 박분하 할머니

 

 

 

 

 

 

  
▲ 이원봉 씨
  
▲ 이원건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