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정신으로 부자마을 만든 두산3리 ‘홍정골’ | ||||||||||||||||||||||||||||||||||||||||||||||||||||||||||||||||||||||||||||||||||||||||||||||||||||||||||||||||||||||||||||||||||||||||||||||||||||||||||||||||||
우리마을 탐방[41]봉현면 두산3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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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용수암 아래 홍정(洪井), 지금 상수원으로 사용
봉현면 두산3리 홍정골 가는 길 영주 서천교에서 국도를 따라 풍기·죽령방향으로 향한다. 풍기 남원네거리에서 풍기온천방향으로 1Km 쯤 올라가면 좌측에 두산3리 마을표석이 나타난다. 여기서 백두대간산림치유단지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두산3리 지경터마을이 나타난다. 지경터에서 두산교(작은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옛 봉현서부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중앙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두산2리 소미마을이 나온다. 소미버스승강장에서 두산교회 표지판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교회 종탑이 우뚝한 마을이 유서 깊은 홍정골이다. 두산3리는 홍정골, 꺼치네, 지경터로 구성되어 있고 홍정골은 두산3리의 중심마을이다. 지난달 22일 오전 눈발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 홍정골에 갔다. 경로당에서 백창기 노인회장, 안영원(85)·정호순(85) 어르신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근대사 이야기를 들었다.
홍정골의 역사 소백산 도솔봉 기슭에 자리 잡은 홍정골은 산좋고 물이 좋아 살기좋은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사를 지으면서 서로 돕고 훈훈한 인정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영주삼읍지(榮州三邑誌) 풍기편에 의하면 두산(斗山)3동은 옛 풍기군 와룡동면(臥龍洞面) 두치동리(豆致洞里, 斗置라고도 함)에 속했다. 1914년 일제가 강제로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부, 풍기군, 영천군을 통폐합하여 영주군이라 칭하고, 두산(斗山)은 두치(斗置)의 두(斗)자와 우산(牛山)·마산(馬山)의 산(山) 자를 따 두산이라 했다. 1980년 영풍군 풍기읍 두산리가 되었다가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영주시 봉현면 두산3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정골의 유래 마을 앞에는 숲이 우거지고 넓은 들이 있었다. 철따라 기러기와 학이 이 곳에 날아와 장관(壯觀)을 이루니 기러기 홍(鴻) 자에 머무를 정(停) 자를 써서 홍정골(鴻停谷)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골머리를 앓았다. 이 때 무명의 대사에 의하여 마을이름을 넓을 홍(洪) 자에 우물 정(井) 자를 써 홍정골(洪井谷)이라 개명한 후 부터 화재의 걱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옛날 홍(洪)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을 뒷산 바위 밑에 있는 샘 곁에 집을 짓고, 나막신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쉰 살이 넘도록 자식이 없자 이 바위샘에 백일동안 기도를 드린 후 남자 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용이 승천하는 태몽(胎夢)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고 하여 바위 이름을 용수암(龍水岩)이라 하고, 샘은 자신의 성을 따라 홍정(洪井)이라 하니 마을이름도 홍정골(洪井谷)이 되었다고 전한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두산동지(斗山洞誌) 두산3리 사람들은 일찍이 1987년에 동지를 발간할 정도로 화합하고 선진된 마을이었다. 당시 안태영(70년대 동장, 1933-1999)씨가 중심이 되어 1987년 10월 10일 발행한 두산동지에는 100여명의 글이 실려 있고 마을사진, 마을현황 등이 수록되어 있어 귀중한 마을의 역사서로 남게 됐다. 안태영 씨는 발간사에서 “내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고 서로 흩어진 마음을 모아 뭉치고 화합하는데 발간의 목적을 두었다”고 하면서 “나의 뿌리, 내 고향의 뿌리를 찾자는데 큰 뜻을 두고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홍정골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해방 후의 혼란 그리고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서로 믿고 합력하여 고난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1970년대 초반 새마을정신으로 한데 뭉쳐 ‘오직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노력한 결과 마을의 면모를 일신하고 생산기반 조성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0년부터 70여 정보의 과수원을 조성하여 사과생산에 주력하면서부터 앞서 가는 농촌마을이 됐고 높은 소득도 보장받게 됐다.
홍정골 서낭당 마을 앞에는 이 마을의 곡창이라 할 수 있는 천여마지기의 ‘바리들’이 있고 그 가운데 500년 수령의 노거수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보름날 자시(子時)에 이 동수나무에서 동제를 지낸다. 마을 이장이 헌관이 되고 새마을지도자와 반장이 집사가 되어 제를 올린다. 헌관(이장)은 동신에게 잔을 올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은 후 마을사람들과 출향인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다. 이관칠 이장은 “200년 전 이 마을에 자식 없는 노인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나면서 토지 2천여 평을 마을에 희사(喜捨)했다. 마을에서는 그 땅의 도지로 그 분의 제사와 묘소를 돌보아 주고 있으며 동제도 성대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홍정골 마을회관 새해 102세 맞이하는 박찬명 할머니
박찬명 할머니는 1914년 평안도 덕천에 태어났다. 19세 때 이찬건 씨와 혼인하여 3남매(1남2녀)를 두었다. 시댁 사람들이 정감록 예언에 따라 소백산 풍기로 이주하게 됨에 따라 1947년(추정) 38선을 몰래 넘어 풍기로 와서 이곳(두산3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월남하여 남매(1남1녀)를 더 낳아 6남매를 둔 박 씨는 직조공장(풍기인견)을 경영하는 남편을 내조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동갑이었던 남편은 10여년 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아들(이관칠, 65) 내외와 지경터에 살고 있다. 101세가 되던 지난 추석 때는 ‘낫 들고 남편 묘소를 벌초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지역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의 건강비결은 “평생하던 일(농사일) 쉬지 말고 하고, 늘 너그러운(긍정) 마음으로 속상하지 말고, 가진 거 나누고, 이웃에 베풀고, 밥 잘 먹으면 오래 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텃밭에 깨를 심고 가꾸어 안정기름방까지 가서 기름를 짜 온다. “손자·손녀들에게 참기름 한 병씩 나누어주는 게 낙(樂)”이라고 말했다. 홍정골 사람들 백창기(75) 노인회장은 “마을회관은 원로(노인)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은 남·여 40명이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홍명식 총무는 “우리마을은 도솔봉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마을로 단합이 잘 되고 서로 믿고 화합하면서 살고 있다”면서 “매년 관광1회, 정월에는 윷놀이, 여름에는 초복행사 등 좋은 일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연다”고 말했다. 정원주 씨는 “중앙고속도로를 지나던 사람들이 ‘참 아름답고 살기좋은 마을’이라며 귀농·귀촌한 수가 20가구가 넘는다”면서 “현재 75가구에 170여명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수 전 노인회장은 “1970년 당시 우리 마을은 기와집 하나 없는 초가마을이었다.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붕개량, 길 닦기, 농지정리 등에 앞장섰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잘 사는 마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경로당 안방에는 박분숙(78) 할머니를 비롯한 1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옛날 사진을 보면서 그 때 그 시절을 돌아보고 있었다. 최석분(84) 할머니는 “방앗간에서 등겨를 가지고 와서 채로 치면 쌀 부스러기가 나온다. 그것을 넣고 나물죽을 쒀서 먹고 살았는데 당시는 그것도 못먹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면서 보릿고개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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