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71]부석면 상석1리(도탄)

단산사람 2015. 8. 26. 14:33
끝까지 상투(上頭) 지킨 유학자 김동진의 ‘도탄마을’
우리마을탐방[71]부석면 상석1리(도탄)
[533호] 2015년 08월 13일 (목) 16:36:59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 옛 상석초등학교

360년 전 선성김씨 김선(金선)이 터 잡은 마을
독립운동가 김동진, 도강서당서 후진양성

부석면 상석1리(도탄) 가는 길
봉화통로 상망교차로에서 영광고·부석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부석으로 가는 길은 낮은재를 여럿 넘어야 하는데 그 재들은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이 있어 흥미롭다. 첫 번째 고개 마근대미재를 넘으면 진우마을이고, 갈가리재에 오르면 대마산목장이 나온다. 또 너운티고개를 넘어가면 연이어 배남쟁이재를 넘어야 한다. 그리 높지 않은 재를 네 개나 넘어서면 제법 넓은 들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부석면 감곡리이고 그 다음 마을이 상석리이다. 도탄마을은 상석1리의 중심마을로 역사 깊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다.

  
 ▲정산 선생이 살던 집

지난달 26일 오후 2시 도탄에 갔다. 배주식 이장님께 미리 연락을 드렸더니 마을 어르신 여러분들이 경로당에 나와 계셨다.

마을의 역사
부석면 상석1리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전국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부 도강면(道講面)이었다. 순흥지에 의하면 당시 도강면에는 우수동(愚수洞), 석탄(石灘, 돌탄, 도탄), 각암(角巖), 보계곡(寶溪谷), 문좌곡(文佐谷), 모치방(慕癡坊), 영모암(永慕菴), 도봉(道峯) 등 낙하암천(落霞巖川)을 기준으로 서편에 있는 마을들이다.

  
 ▲정산 선생의 묘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도강면의 석탄과 용암면의 감산·고산(당초 이부석면이었으나 1896년 고종 33년 13도제로 개편될 때 용암면이 됨)을 병합하여 상석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석리’란 지명은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할 때 강제로 만든 지명이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도탄리’로 해 줄 것을 건의하였으나 일제는 마을 위에 큰 바위(회고대 남쪽20m)가 있다하여 위 상(上)자와 돌 석(石)자를 써서 ‘상석리’라 했다고 한다. 이는 일제가 전통마을 말살을 위한 강제 조치였다.

지명 유래
상석1리는 수사마을, 정자마을, 도탄, 솔안으로 구성되어 있고 네 마을을 통틀어 도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사(水沙)는 상석1리에서 제일 위쪽에 있는 마을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하암천이 이 마을 앞에 이르러 물이 깊고 모래 또한 많이 쌓이는 곳이라고 하여 ‘수사(水沙)’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자마을은 회고대 옆에 정자가 있었다는데 유래하여 ‘정자마을’이라고 부른다. 도탄(挑灘)은 옛날 이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가 돌여울을 이루어 흐른다 하여 석탄(石灘)또는 돌탄이라 부르다가 도탄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복숭아나무가 많았다는 데 연유하여 도탄(桃灘)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솔안은 송내(松內)라고도 한다. 마을 주위에는 수령 수백년 된 노송들이 송림(松林)을 이루어 마을을 감싸고 있다하여 ‘솔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 상석1리 경로당

선성김씨 도탄 세거 유래

선성김씨 영주 입향과 세거 유래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매학당(梅鶴堂) 김선의 후손들은 부석 도탄에 세거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매학당 연혁을 살펴보면 「매학당은 1655년(효종 7) 김선(金선, 1596-1660)이 순흥 도강(道講) 송내(松內)에 우거(寓居)할 때 고산(孤山, 감살미 뒷산) 위에 두어칸 초정(草亭)을 짓고 매학당이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 기록으로 볼 때 김선이 1655년 벼슬을 마치고 낙향하여 이곳 송내(솔안)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 선성김씨가 이곳에 세거한 것은 360년 전이다.

그 후 감곡에 살고 있던 취사(이여빈, 우계이씨)선생의 후손 일부가 1750년경 도탄으로 이거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취사 선생의 후손인 이교철(83) 어르신은 “저의 조부이신 만춘(萬春) 할아버지는 김동진 선생의 수제자로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셨고, 저의 부친(홍도弘燾)은 순흥향교 전교를 역임하셨다”고 했다.

매화와 학의 집 매학당(梅鶴堂)
솔안마을 가운데 매학당이라는 정자가 있다. 매학당 주인인 김선(1596~1660)은 도탄마을의 입향조이며 그의 호가 매학당이어서 정자이름도 매학당이다. 매학당은 매화와 학의 집이란 뜻으로 당시에도 백로가 노니는 마을이었음이 정자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공은 1625년(인조3)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학유, 전적, 형조좌랑, 유곡찰방, 성균직강, 병조좌랑을 지냈다. 이후 황해도사, 당진현감, 흥해군수 등을 지냈다.
고산(孤山) 위에 있던 매학당은 화재로 없어졌으나 1674년(숙종 15)경에 증손 행추(行秋)가 문단(文丹)의 사암(蛇巖)으로 옮겨 중건하였고, 1913년 매학당의 10대손 김동진(金東鎭)이 지금의 위치 솔안으로 이건하였다.

도강서당과 김동진 선생
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 김동진(1867~1952)선생은 본관은 선성(宣城), 호는 정산(貞山)으로 이조판서 김담(金淡, 1416-1464)의 16세손이며, 흥해군수를 지낸 김선의 10세손이다. 그는 구한말 영남 지역의 대표적 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1908년 이래 소수서원 원장을 3번 역임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하여 1913년 독립의군부의 설립에 가담하였고, 1919년 파리장서사건에도 주동 인물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도탄마을 전경

김동진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몇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으며,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끝까지 상투의 유지, 한복 착용 등을 고집하여 일제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 지역의 유림으로 활약하면서 이곳 도강서당을 중심으로 후진의 양성에 노력하여 평소 80여명의 학생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사후에 차남 김와(金渦)가 이를 계승하여 1960년대까지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동진의 동계구곡
동계구곡(東溪九曲)은 김동진이 일제강점기인 1918년 도탄마을 동쪽에 위치한 동계의 하암(霞巖, 낙하암)에서 선암(仙巖, 보계리 입구)까지의 아홉 곳을 설정하고 경영했던 구곡원림(九曲園林)이다. 동계구곡의 이름과 위치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강서당

제1곡은 선암대(仙巖臺)로 보계리 입구에 있는 선바위다. 제2곡 호산대(湖山臺)는 상석초 맞은편 언덕 동소라는 곳이다. 제3곡 회고대(懷古臺)는 도탄에서 수사마을 사이 왼편에 있다.

제4곡 창고대(蒼고臺)는 우곡리 매암정 입구에 있다. 제5곡 능운대(凌雲臺)는 우수골 과수원 지나 산위에 있다. 제6곡 풍영대(風詠臺)는 우곡리와 소천리 경계지점에 있다. 제7곡 자하대(紫霞臺)는 풍영대 위 200m 지점에 있다. 제8곡 옥간대(玉澗臺)는 자하대 위 550m 지점에 있다. 제9곡 명구대(鳴구臺)는 옥간대 위 400m 지점 소천리 동산 근처에 있다.

도탄마을 사람들
배주식(65) 이장은 “1980년대까지는 학교도 있고 사람도 많이 살았지만 산업화 이후 모두 떠나고 지금은 53호에 62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이 마을 원로이신 이교철(83) 어르신은 마을의 내력과 지명유래, 우계이씨 입향내력, 동계구곡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다. 황영선(91) 할머니는 “72년 전 봉화 문단(창원황씨)에서 선성김씨 양반 가문으로 시집 왔다”고 하면서 “당시 왜정 때라 농사지은 거 다 빼앗기고 배급 타먹고 살았다”고 했다. 류월선(90) 할머니는 “마을의 자랑은 이렇게 좋은 경로당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우연(83) 할머니는 “정산 김동진 선생 초상 때(1952) 조문객이 2천 500명이 넘게 왔고 상중에 쌀 40가마 밥을 했다”고 말했다. 양선옥(82) 할머니는 “마을에 사람 수는 적어도 노인들은 많다”며 “매일 20여명씩 회관에 모여 편안하게 잘 쉰다”고 했다.

장순교(78) 할머니는 “집안에 선조들이 보관해 온 장군칼(긴칼)이 있었는데 일제 때 누군가가 고발해서 마루 밑에 감춰 둔 칼을 일제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김영자(76)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사람도 많이 살고 아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학교도 없어지고 아이울음소리 그친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김옥순(76)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배주식 이장님과 이점녀 부녀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노인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점녀(64) 부녀회장은 “어르신들은 여름철에는 오후에 모여 저녁 드시고 가시고, 겨울에는 점심과 저녁을 다 드시고 잠잘 때 집으로 가신다”고 했다.

<부석면 상석1리 사람들>
 

  
▲김영자 할머니
  
▲장순교 할머니

 

 

 

 

 

  
▲양성옥 할머니
  
▲전우연 할머니

 

 

 

 

 

  
▲류월선 할머니
  
▲황영선 할머니

 

 

 

 

 

  
▲이점녀 부녀회장
  
▲이교철 어르신

 

 

 

 

 

 

  
▲ 배주식 이장
  
▲김순옥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