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 가득한 홍교천의 중심마을 오계1리(오미) | ||||||||||||||||||||||||||||||||||||||||||||||||||||||||||||||||||||||||||||||||||||||||||||||||||||||||||||||||||
우리마을탐방[54]안정면 오계1리(오미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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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오동나무가 많아 오산(梧山)으로 불러 안정면 오계1리(오미) 가는 길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 방향으로 향하면 아랫귀내와 웃귀내 마을 앞을 지나게 되고 장수고개(고현동)와 아지동을 지나면 ‘충절(忠節)의 마을 동촌1리(피끝)’에 이르게 된다. 동촌1리 마을 끝부분에서 좌회전하여 오계·대평 방향으로 향한다. 오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옛 오계초등학교가 보이고 마을은 야산아래 남향하여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오계1리에 갔다. 학교 앞에서 만난 황병용(72)씨는 마을에 대해 척척박사다. “오계1리는 학교를 기준으로 학교 앞 마을을 ‘새터 또는 교동’이라 하고 그 아래를 ‘아랫마’라 한다. 또 오계교(橋) 건너에 있는 마을을 건너마 또는 ‘새마’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잠시 후 아랫마에 사는 최익순 노인회장과 권영락 어르신을 만나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장호헌 이장과 31일 시식골 자택으로 가서 마을현황을 자세히 들었다.
마을의 역사 풍기군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때 풍기군 동촌면에 속했다. 당시(1849년 이후 작성) 기록에 의하면 「동촌면은 (풍기) 관문에서 동쪽 20리까지이다. 안심산리(安心山里), 일원리(逸園里), 고암리(高巖里), 입암리(立巖里)는 영천[지금 영주]과 접경을 이루고 있고, 배치동리(杯致洞里), 우방동리(友訪洞里), 오산리(梧山里)[지금의 오계리], 단촌리(丹村里), 우음리(雨陰里)[지금의 핏끈], 합도리(蛤島里)[조개섬]는 순흥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배치동, 오산동, 단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오계리(梧溪里)라 칭하고 안정면에 편입시켰다. ‘오계’라는 지명은 이때 생겨났으며, 그 후 인구수가 증가함에 따라 1960년을 전후해 1,2리로 구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 권영락(82) 어르신은 “예전에 마을이름이 ‘오산(梧山)’ 또는 ‘오미’였다고 하며, 언제부터 ‘오계(梧溪)’로 불렀는지는 잘 모른다. 어릴 적부터 ‘오계’였다”고 말했다.
마을의 내력 영주시사(榮州市史)에 의하면 1419년 인동장씨가 보치골(오계2리) 지역에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1489년 단양우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오계1리 지역에는 1662년에 파평윤씨가 입향했고, 1729년 경주최씨가 입향하면서 오산은 큰 촌락을 이루게 됐다. 옛날 이 곳에 오동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오동나무 오(梧)자에 뫼 산(山)자를 써서 오산(梧山)이라 부르다가 ‘오미’로 개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한자로 적을 때는 오산(梧山)이라 쓰고 사람들끼리는 ‘오미’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오미는 한자가 없음] ‘오산’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로 이어오다가 1910년 한일합방을 맞이하게 된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군을 317개에서 220개로, 면은 4천 322개에서 2천 518개로 축소하는 행정개편을 단행할 때 우리의 마을 ‘오산’도 ‘오계’로 개칭해 버렸다, 이는 일제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말살하고 역사의 맥을 끊기 위해 창지개명(創地改名)한 것이 틀림없다. 홍교천의 중심마을
장복식 효자각(張復軾 孝子閣) 학교 앞에서 아랫마로 향하는 산자락에 효자각이 있다. 이 효자각은 조선 헌종(1834-1849)때 용위부호군을 역임한 장복식의 효자각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부친마저 풍마병으로 누워있자 못을 파고 고기를 길러 부모를 봉양하는 등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로 주위에 칭송이 자자했다. 이러한 효행은 곧 나라에 까지 알려져 헌종 2년(1836년) 표창과 정려가 내려졌다. 그 후 후손들이 그의 유덕을 추모하여 1907년에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 효자각은 오미마을 산록에 토석담장을 돌리고 남서향을 하고 있다.
지금 오계1리에 ‘정효자’가 산다 아랫마을에 103세(장후순 할머니) 노모를 지극정성 모시는 ‘정효자부부’가 산다기에 찾아 갔다. 청각장애자인 이강옥(64, 며느리)씨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들어가니 마침 할머니의 딸 정영숙(64)씨가 어머니께 간식을 떠서 드리고 있는 중이다. 정 씨는 “어머니가 100순 잔치할 때(2012년)까지는 건강이 좋았는데 지난해 다리를 다친 후부터 거동이 불편하다”면서 “오빠(정창호.68)부부는 장애자이면서도 눈물겨운 효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효자 부부는 하루 세끼 식사를 떠서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현대에 보기 드문 효도를 하고 있어 마을의 자랑 첫째로 ‘효자부부’를 꼽고 있다. 정영숙씨는 또 “어머니는 말 못하는 아들부부를 대신해 손자·손녀를 정상인으로 잘 키워 훌륭한 사회인이 되게 했으며, 이웃과 사회와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통역역할도 해 왔다. 이제 고령으로 거동조차 어려워지니 오빠부부를 돕기(통역 등) 위해 귀향했다”고 말했다.
온 가족의 눈물겨운 효도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고 정효자 집에서 나왔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마을회관 앞을 지날 때 효자부부가 경운기를 타고 농장으로 가면서 손을 흔든다.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이 씩씩하고 당당해 보인다.
옛 학교, 지금은 종합체험장 지역주민들의 향학열은 1936년 학교설립을 추진했다. 부지를 마련하고 가교사를 지어 그해 6월 10일 안정공립보통학교 부설 오계간이학교로 개교하게 된다. 1943년 오계국민학교로 승격하여 1970년대에는 전교생이 600여명에 달하는 큰 학교였으나 1980년 이후 농촌인구 감소로 졸업생 3천 500명을 배출하고 2001년 폐교됐다. 이 마을 전하순(79)씨는 “1970년 경에는 학생수가 600명이 넘었고, 가을운동회 때는 천 수백여명이 모여 대축제를 열었다”고 말했다. 옛 학교 자리에 2003년 종합체험학습센터가 들어섰다. 체험센터 변종원(과학) 선생님은 “영주종합학습체험센터는 발명교육센터와 문화예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다양한 발명 프로그램 운영과 도자기체험, 전통한지, 다도예절, 천문관체험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연중 학생들이 북적인다”고 소개했다.
오계동 사람들 오계1리는 현재 108호에 205명이 사는 동네로 안정면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 장호헌 이장은 “우리마을은 논이 많고 밭이 적은 편으로 벼농사 중심 농업이 발달해 왔다”고 하면서 “2순위가 축산인데 현재 40여 농가에서 800여두를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 십여분을 만났다. 모두 연세에 비해 정정하고 단정했다. 마을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한순필(86) 할머니는 “정효자 부부의 효성이 우리마을의 자랑”이라고 하면서 정효자 집을 가르쳐 줬다. 또 김순강(85) 할머니는 “건강관리실에 가면 운동도 할 수 있고 목욕도 하고 찜질방도 있다”고 자랑했다. 송복년(82) 할머니는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있어 응급의료, 방문보건, 건강상담, 예방접종 등을 할 수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최익순 노인회장은 “마을의 숙원사업이 있다”면서 “오계, 대평, 단촌, 동촌 연합으로 게이트볼장을 건립하려고 하는데 힘 좀 써 달라”고 했다. 최 회장은 “부지(약600평)는 확보한 상태이고 시설만 하면 되는데 각계각층에 지원을 부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장석은(80) 어르신은 “농촌마을 여건상 남자노인들은 모일 곳도 갈 곳도 마당치않다”면서 “게이트볼장이 건립되면 모임과 나눔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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