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상투(上頭) 지킨 유학자 김동진의 ‘도탄마을’ | ||||||||||||||||||||||||||||||||||||||||||||||||||||||||||||||||||||||||||||||||||||||||||||||||
우리마을탐방[71]부석면 상석1리(도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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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년 전 선성김씨 김선(金선)이 터 잡은 마을 부석면 상석1리(도탄) 가는 길
지난달 26일 오후 2시 도탄에 갔다. 배주식 이장님께 미리 연락을 드렸더니 마을 어르신 여러분들이 경로당에 나와 계셨다. 마을의 역사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도강면의 석탄과 용암면의 감산·고산(당초 이부석면이었으나 1896년 고종 33년 13도제로 개편될 때 용암면이 됨)을 병합하여 상석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석리’란 지명은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할 때 강제로 만든 지명이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도탄리’로 해 줄 것을 건의하였으나 일제는 마을 위에 큰 바위(회고대 남쪽20m)가 있다하여 위 상(上)자와 돌 석(石)자를 써서 ‘상석리’라 했다고 한다. 이는 일제가 전통마을 말살을 위한 강제 조치였다. 지명 유래 정자마을은 회고대 옆에 정자가 있었다는데 유래하여 ‘정자마을’이라고 부른다. 도탄(挑灘)은 옛날 이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가 돌여울을 이루어 흐른다 하여 석탄(石灘)또는 돌탄이라 부르다가 도탄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복숭아나무가 많았다는 데 연유하여 도탄(桃灘)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솔안은 송내(松內)라고도 한다. 마을 주위에는 수령 수백년 된 노송들이 송림(松林)을 이루어 마을을 감싸고 있다하여 ‘솔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선성김씨 도탄 세거 유래 선성김씨 영주 입향과 세거 유래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매학당(梅鶴堂) 김선의 후손들은 부석 도탄에 세거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매학당 연혁을 살펴보면 「매학당은 1655년(효종 7) 김선(金선, 1596-1660)이 순흥 도강(道講) 송내(松內)에 우거(寓居)할 때 고산(孤山, 감살미 뒷산) 위에 두어칸 초정(草亭)을 짓고 매학당이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 기록으로 볼 때 김선이 1655년 벼슬을 마치고 낙향하여 이곳 송내(솔안)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 선성김씨가 이곳에 세거한 것은 360년 전이다. 그 후 감곡에 살고 있던 취사(이여빈, 우계이씨)선생의 후손 일부가 1750년경 도탄으로 이거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취사 선생의 후손인 이교철(83) 어르신은 “저의 조부이신 만춘(萬春) 할아버지는 김동진 선생의 수제자로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셨고, 저의 부친(홍도弘燾)은 순흥향교 전교를 역임하셨다”고 했다. 매화와 학의 집 매학당(梅鶴堂) 도강서당과 김동진 선생
김동진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몇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으며,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끝까지 상투의 유지, 한복 착용 등을 고집하여 일제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 지역의 유림으로 활약하면서 이곳 도강서당을 중심으로 후진의 양성에 노력하여 평소 80여명의 학생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사후에 차남 김와(金渦)가 이를 계승하여 1960년대까지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동진의 동계구곡
제1곡은 선암대(仙巖臺)로 보계리 입구에 있는 선바위다. 제2곡 호산대(湖山臺)는 상석초 맞은편 언덕 동소라는 곳이다. 제3곡 회고대(懷古臺)는 도탄에서 수사마을 사이 왼편에 있다. 제4곡 창고대(蒼고臺)는 우곡리 매암정 입구에 있다. 제5곡 능운대(凌雲臺)는 우수골 과수원 지나 산위에 있다. 제6곡 풍영대(風詠臺)는 우곡리와 소천리 경계지점에 있다. 제7곡 자하대(紫霞臺)는 풍영대 위 200m 지점에 있다. 제8곡 옥간대(玉澗臺)는 자하대 위 550m 지점에 있다. 제9곡 명구대(鳴구臺)는 옥간대 위 400m 지점 소천리 동산 근처에 있다. 도탄마을 사람들 장순교(78) 할머니는 “집안에 선조들이 보관해 온 장군칼(긴칼)이 있었는데 일제 때 누군가가 고발해서 마루 밑에 감춰 둔 칼을 일제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김영자(76)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사람도 많이 살고 아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학교도 없어지고 아이울음소리 그친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김옥순(76)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배주식 이장님과 이점녀 부녀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노인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점녀(64) 부녀회장은 “어르신들은 여름철에는 오후에 모여 저녁 드시고 가시고, 겨울에는 점심과 저녁을 다 드시고 잠잘 때 집으로 가신다”고 했다. <부석면 상석1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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