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면 임곡1리 숲실마을
부석면 숲실(林谷1里)과 사그랭이(沙文:韶川5里)지경에 임곡석성(林谷石城)이 있다. 숲실 마을에서 서쪽으로 3㎞쯤 올라가면, 어구에 깍아지른 듯 한 암벽이 동ㆍ서에 마주 솟아 천연의 성문을 이루고 있는 골짜기가 나선다. 동남향으로 열린 이 골짜기는 천험(天陜)의 산줄기로 둘러막혀 있으며, 골짜기 안 구석은 상당한 넓이로 평탄한 터전이 다듬어 져 있는데, 잡초와 관목 숲으로 뒤덮힌 터전엔 무너지다 남은 축대며 기왓장들이 있다.
아랫마을 숲실 사람들은 「공민왕이 피난한 자리」라고 한다. 사면을 에워 두른 산줄기는 그 바깥면이 한결같이 가파르고 험한데, 자연적인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축조된 성벽이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본래가 전체로 연결된 성벽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서북쪽 정상 가까이로 능선을 넘어서면, 수십 길이나 위태롭게 솟은 절벽이 있으니 바로 "망군(望軍)바위"다. 공민왕이 피난할 때, 군사들이 이 바위에 올라서서 망을 보았다는 전설이다. 망군바위에서 북쪽으로 비탈을 돌아가면 "왕비(王妃)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 천험(天險)의 골짜기에는 왕비(노국공주?)가 피난했다고 전하고 있다. 망군바위 골짜기에는 낙락장송이 울창한데, 지대가 워낙 험준해서 운반이 어려워 벌채를 못하고 있다는 부근 마을사람들의 말이다. 주 : 이 글은 풍기에 거주하시는 향토사학자 송지향(宋志香)翁이 저술하여 1978년 발행된 榮州ㆍ榮豊鄕土誌 상권 55쪽에 기록되어 있으며 著者 宋先生님이 이 동리에 살고있는 김준상(金俊相)씨의 안내로 현지를 답사하여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懸板) "無量壽殿"이란 글씨를 공민왕(恭愍王)이 썼다고 편액(扁額)뒷면에 사연이 적혀 있으며, 홍건적(紅巾賊)의 난리(1361년:공민왕10년)때 우리지역에 피난 중 안동의 "안동웅부(安東雄府)", 영주의 "제민루(濟民褸)"의 편액(扁額)을 함께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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