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사랑 이야기/문화유산보존회

운포구곡(장태홍)

단산사람 2015. 4. 13. 11:17

장태홍의 운포구곡

 

운포구곡(雲浦九曲)

                                                                                                 2011. 4. 23.

너무나 잘 알려진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 있다. 신선(神仙)인 무이군(武夷君)이 산다고 하여 무이산 이라고 했다. 이곳 무이산에 주자는 경승이 빼어나고 물이 굽어 도는 곳을 무이구곡으로 이름 짓고 구곡시를 남겨 산수의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이렇듯 내성천에도 구곡이 있었다. 봉화 문수산에서 시원(始原)한 내성천은 금강(錦江)을 거치고 무섬(水島)을 지난다. 다시 학가산 북쪽 발치를 감돌아 여유롭게 예천군으로 굽이굽이 흘러간다. 이러한 내성천에 굽어 돌고 경승이 좋은 곳에 선현들은 구곡을 정하여 산수를 즐기고 시를 남겼다. 영주 쪽에는 운포구곡(雲浦九曲)을 이름 지었다. 답사 결과 운포구곡의 산수는 대체적인 공통점은 이러하다. 하천은 굽이돌고(曲) 명사(明沙)로 암석(巖石)으로 송(松)으로 창애(蒼崖)로 산수의 경승을 이룬다.


일곡(一曲)은 우천(愚川)이다. 영주시 평은면 용혈2리 속칭 불갱이 마을 앞에 있다. 지금은 훼철된 우천 정칙의 소구(所構)인 우천정이 있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무섬(剡溪)의 뒷편 지근거리에 있다.


이곡(二曲)은 송사(松沙)이다. 영주시 평은면 용혈1리 속칭 미림(美林)부락에서 하류쪽 300m에 녹동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앞에는 달미봉과 속시들이 있다. 주변 산에는 송림이 무성하고 내에는 금모래가 무한하게 퇴적되어 있다.


삼곡(三曲)은 용추(龍湫)이다. 실제 용추는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 속칭 직곡부락에 있다. 부락에서 진월사로 가는 길 위에 있는데 일명 월전십리계곡 중간 지점에 있다. 석혈(石穴)에서 쏟아지듯 바위사이로 떨어지는 물은 마치 폭포의 형상을 하고 소(沼)가 깊다. 얼마 전까지도 물레방앗간과 양조장이 부근에 있었을 정도로 수원이 좋은 곳이다. 용추에서 흘러내린 세류는 미림부락의 영강정(직장 권유선의 소구) 앞 내성천으로 합류가 된다. 영강정 앞에 굽이도는 곳을 용추의 이름을 빌려 삼곡을 용추로 하고 있다. 영강은 본래 영화가 있으면 모름지기 욕됨이 있거니, 분수를 지켜 강호에 늙음만 못하랴(從古有榮須有辱 不如守分老江湖)에서 취하였다. 부근에 미림동굴이 있다.


사곡(四曲)은 전담(箭潭)이다. 영주시 평은면 용혈1리 속칭 놋점부락 앞에 있다. 말 그대로 화살같이 유속(流速)이 급하고 부석바위 밑에는 소(沼)가 있다. 장구봉 아래에 있으며 위로는 신라 고찰이자 전통사찰인 진월사(陳月寺)가 있다. 놋점부락에서 흐르는 유계(鑐溪)가 이곳에서 합류된다.


오곡(五曲)은 운포(雲浦)이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2리 속칭 금강(錦江)부락에서 뒤쪽으로 뒷개들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내(川)를 건너면 운곡이 된다. 산자락에 운곡서원이 있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마치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지금은 영주댐 본댐 공사로 예전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현재는 상전벽해라고 할까. 온통 파헤쳐지고 토석이 높게 쌓여있다. 내성천 운포구곡의 중심이 바로 이곳으로 이제는 아쉬움만 뒤로한다.


육곡(六曲)은 구만(龜灣)이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2리 속칭 금강 부락 앞 가랑봉 아래를 이른다. 중앙선이 개통(1941년)되기 전 일제 강점기 때는 이곳에서 시장이 정기적으로 개장되었다. 그만큼 부지가 넓은 곳이었다. 불로봉 아래로 흘러오는 내성천은 이곳에서 굽어 돌았고 가랑봉의 창애는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최근 토석채취로 경관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칠곡(七曲)은 금탄(錦灘)이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3리 속칭 가자곡(영천의 3대 명당 중 하나 ①유릉,②박봉산,③가자곡)앞이며 불로봉 아래를 이른다. 아침녘과 저녁녘의 햇살은 찬란한 여명(黎明)을 이룬다. 물여울은 비단을 드리운 듯 아름다운 광채를 발 한다. 금강(錦江)의 마을 명은 여기에서 연원(淵源)한다. 고려 공민왕이 몽진한 왕류(王留)와 송리원이 지척이다. 송리원 앞 내를 상탄이라고 한다.


팔곡(八曲)은 동저(東渚)이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3리 속칭 동호(東湖) 또는 동막(東幕)이라고 하는데 이곳을 이른다. 고현(古峴)에서 흘러내린 고현천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 내저(內渚)는 동막이고 외저(外渚)는 전동막(거랫동막)이다. 영지산과 달봉산이 우뚝하다.

 

구곡(九曲)은 지포(芝浦)이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1리 속칭 심곡(深谷) 또는 깊으실이다. 영지산(靈芝山)에서 내려온 용은 낱맥의 끝인 용강에서 물을 마시는 형국을 하고. 문수산에서 달려온 내성천은 이곳에서 한 숨 돌리려 흐름을 느리게 한다. 또 절벽 아래로는 소(沼)를 이루니 부근을 잉어(鯉魚)바위라고 통칭들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터 운곡구곡은 시작된다. 석문정(석문 장후상의 소구)이 있었다. 골이 깊어 퇴적층이 생기고 지초(芝草)가 무성하게 자랐다. 뒤로는 지산이 동으로는 영지산이 우뚝하다.


참고로, 학가산 주변 내성천에는 운포구곡과 별도의 7곡이 있다. 이름하여 섬계7곡이다. 시작은 무섬(剡溪, 茂島, 水島, 水村)에서 학사정(문수면 조제2리)까지 사이로 했다. 1곡은 무도, 2곡은 어호, 3곡은 송평, 4곡은 화둔, 5곡은 주산, 6곡은 등산, 7곡은 미담으로 하고 있다. 또 학사 김응조는 학사정을 중심으로 내성천에 풍영대. 세심담, 학사대라는 명소를 이름 하였다. 수촌 김승학은 섬계십경(剡溪十景)의 시를 남겼다. 내성천과 서천이 합수 되는 곳은 무섬마을의 뒤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내성천을 영천(榮川)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천(東川)이라 하였고, 서천은 영주 시내를 관류하여 구성산성 앞을 흐른다고  구천(龜川)이라 하였다.


내성천은 자고로 영천 고을 남부의 생명줄이었다. 문수산에서 영순까지 270여리 길을 흘렀다. 흐르는 물은 곁가지 지천을 한 몸에 뭉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했다. 바둑판같은 들이 아득하게 열렸고, 넓은 들 품안에는 옹기종기 마을이 안겨있었다.

 

평은에서 문수까지 내성천은 오래도록 비경을 숨겨 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속살을 드러낸 내성천은 수줍은 듯 우리에게 살포시 모습을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를 본 뭇 사람들은 침이 마르도록 감탄을 했다. 왜 이런 비경을…. 이제야 하면서…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錦江이라고 까지 했을까.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내성천은 지금껏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떠나려고 한다. 내성천은 영원히 우리들 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