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사랑 이야기/부석사

봉황산 부석사 뒤의 대나무

단산사람 2013. 9. 4. 22:03

영주 전설에 나오는 「부석사 뒤의 대나무」모두 고사(枯死)

‘부석사 뒤의 대나무’는 유계 송지향 선생이 1987년에 발간한 영주․영풍향토지 전설편에 수록(收錄)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2010년 발간된 ‘영주시사’ 제2권 구비전승편에도 실려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과 관련된 전설인 이 부석사 뒤의 대나무가 2013년 8월 31일 현재 모두 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석사 대나무는 무량수전 동편 3층석탑에서 조사당으로 올라가는 탐방로 양쪽에서부터 조사당 입구까지 띄엄띄엄 보이다가 조사당에서 응진전가는 길에는 더 많이 있었고 응진전 앞 언덕배기에는 수 백 그루가 빽빽하게 대나무숲을 이루었는데 현재 모두 말라죽었다.

이 대나무는 탐방로 주변뿐만 아니라 무량수전 뒤 숲 속에도 집단 자생하고 있었으나 이 곳 역시 멸종 상태다. 문제는 수명이 다해 죽는다면 그 주변에 새로운 대나무가 돋아나 대를 이어가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부석사의 대나무는 잎이 부드럽고 키가 낮은 대나무로 ‘산죽’이라 하기도 하고 조리를 만드는 대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키가 큰 것은 어른 허리 높이(1m)에 이르고 대부분 70Cm 이하로 키 낮은 대나무이다.

부석사의 한 스님은 “대나무의 전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고 대나무는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고 하면서 “대나무는 자연 번식하니까 또 다른 순이 나겠지요”라고 했다. 부석사의 한 문화해설사는 “대나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전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도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봉황산의 봉이 오동나무 열매를 먹고 사니까 부석사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다”고 했다.

대나무의 고사 원인이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소백산국립공원 자연생태 관계자는 “대나무의 경우 온난화는 오히려 성장을 왕성하게 한다”며 “현재 고사원인은 혹한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며 몇 년 지나면 주변에서 새순이 돋아날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조경전문가 이병구(65, C조경)씨는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하는데 죽순이 바로 대나무 새순이다”라며 “잔디와 비슷하게 ‘지하경(地下莖)’의 생장에 의해 마디마디에서 싹이 올라온다 ”라고 했다. 그는 또 “영주지방의 경우 대나무의 고사는 혹한에 의한 경우가 많다”며 “대나무는 60년를 주기로 꽃을 피우는데 이를‘개화병’이라하고 꽃을 피운고 나면 죽는다”고도 했다.

영주시사(2권 713P)에 실려있는 ‘봉황산 부석사 뒤의 대나무’ 전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의상이 화엄종의 총본산이 될 만한 큰 절을 짓기 위해서 사방으로 절터를 찾다가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 아래에서 명지를 발견하였다. 아마 옛날 당나라 지엄선사가 꿈에 봉을 보고 다음날 조사를 만난 것을 생각하여 부석사 절터를 잡은 것이고 676년 (문무왕 16) 그 중허리에 신라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지을 때 관음보살의 지시에 따라 쌍죽을 보고 지었으니, 이곳에 대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다. 속설에 봉황산의 봉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에 천 수 백년이 지나도 절이 전하며 앞으로 영원히 이 절이 왕성할 것이라고 한다」이다.

전설이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이라는 보증이 있어서 진실성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부석사의 대가무가 없어지면 대나무 전설도 사라지는 게 아닌지 아쉬움이 크다.

 

 

대가 얇고 키가 매우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 대나무를 만지면 연인가 헤어진다라는 전설이 있다기에,
행여나 옷이라도 스칠세라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아줌마들은 무량수전 관광도 안하시고 이 대나무만 찾는다는
가이드 아저씨의 부연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