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한 사찰을 꼽으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없이 영주의 '부석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부석사는 전통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멋과 맛을 가장 잘 살린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높지도 얕지도 않은 딱 적당한 위치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순리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곳. 일부러 멋을 내려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그 당당함과 세련된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지는 곳이 바로 영주의 부석사이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찰 중에서도 부석사가 이름날 수 있었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조사가 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중심이 되는 사찰이다. 그러나 창건 초기에는 지금처럼 대규모가 아니라 의상의 영정이 있는 조사당을 중심으로 초가집만이 몇 채 들어서 있는 소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의 화엄종을 크게 중흥시킨 사람은 의상의 제자인 신림이다. 신림 이후부터 부석사는 규모면에서도 크게 변해 부석사의 기본구조가 이때에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때에는 원융 대덕이 이곳 주지로 있으면서 대장경을 인쇄하였고 현재 부석사에 전해지는 화엄경판도 당시의 것이라 여겨진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건물들이 중창되거나 창건되었으며, 일제시대인 1916년에는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이 때 허리부분이 잘린 '석룡'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이라 한 것도 이때부터이며,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전체적으로 사역을 정화하면서 일주문, 천왕문, 숭당 등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부석사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고려각판, 원륭국사비, 삼층석탑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보전되고 있어 우리나라 수많은 사찰 중 과연 명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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