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가타카〉. DNA에 의해 지능과 체력, 수명까지도 출생 시 예측되어 인간에게 급수가 매겨 진다. 받을 수 있는 교육과 가능한 직업, 꿈조차도 그에 따라 제한되는데… 열성인자로 분류된 주인공은 이런 체제에 굴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금지되었던 그의 꿈을 이루어 낸다. 지능은 이처럼 피 한 방울에서 검출되는 DNA로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정보에 불과한 것인가?
지능의 실체를 밝히려는 시도는 뇌과학의 발달로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접근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에 PET(양전자단층촬영)와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 등의 뇌 영상화 기술이 출연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지능 연구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지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지능은 유전되는가’ 또 ‘지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으로 압축되어 왔다.
좋은 머리는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NATURE ! : “지능은 유전된다”
UCLA 브레인 맵핑 연구소의 폴 톰슨 교수팀은 지능의 유전성을 파악하기 위해 쌍둥이 연구를 하였다. 2001년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이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쌍둥이의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회백질은 서로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연구팀은 각각 10쌍의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뇌를 MRI로 스캔한 후 대뇌 회백질의 밀도를 비교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100% 동일하며, 이란성 쌍둥이는 50% 정도 같다. 쌍둥이의 경우 환경은 동일하다고 간주했다. 연구 결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분의 유전성이 높게 나타났다.
일란성 쌍둥이는 이 영역의 회백질 분포가 거의 95-100% 동일했다.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언어 영역은 60-70%의 높은 유사성을 보였으나, 다른 부위는 거의 상관성이 없었다. 이는 인지 능력이 상당 부분 유전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피험자들의 단기 기억력, 집중력, 언어 능력 등을 측정하는 지능 검사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전두엽 부분의 회백질은 지능과 높은 상관 관계를 보였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1997년에는 펜실베니아 대학의 멕클런 교수팀의 쌍둥이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지 발표되었다. 연구진은 80세 이상의 일란성 쌍둥이 110쌍과 이란성 쌍둥이 130쌍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이들의 지능을 여러 테스트를 통해 측정한 결과, 인지 능력은 62%의 유전성을 보였으며, 언어 능력이나 기억력 등도 50% 정도의 유전성을 나타냈다고 한다.
또한 정신병의 유전성이 높다는 사실도 지능이나 인지 능력의 유전설을 뒤받침하는 요소이다. 가족의 병력을 조사해본 결과, 암이나 천식, 심장병 등의 기관과 관련된 병에 비해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치매와 같이 뇌기능과 관련된 병의 유전성이 높다는 것. 실제로 난독증이나 주의결핍증 등 특정 인지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NURTURE! :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1997년 미국 피츠버그대와 카네기 멜론대 합동연구팀은 유전적 요인은 통설보다 크지 않으며, 오히려 태내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지능이 60~85% 정도 타고 난다고 주장하는 212개 논문들을 다시 검토한 결과 “태내 환경을 감안할 경우 지능의 유전적 요인은 34~4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능의 선천성이 높게 나온 것은 태내 환경이라는 요인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연구에 사용된 5만여 명의 표본그룹을 일란성 및 이란성 쌍둥이, 형제, 입양아와 이들의 부모 등 4개 그룹으로 나눠 유전적 영향, 태내 영향, 외부환경 등 각각의 요소들이 끼치는 영향을 교차 분석했다. 이들은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1년 안에 70%가 완성된다”며 “더 나은 태내 환경을 제공할 경우 지능이 뚜렷하게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하여 태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지능은 유전과 환경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평생 유동적”이라고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윌리엄 디킨스 박사는 말한다. 그는 의학전문지 〈사이콜로지컬 리뷰〉에 발표한 연구보고에서 “지능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특히 환경상의 조그마한 변화가 지능에 즉각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으로 물려받은 지능이 평균 수준이라도 사회적, 교육적 환경에 의해 평균 이상의 지적 자극을 받으면 지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능에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은 아직도 분분한 논쟁의 대상이지만, 대체로 약 50:50 또는 60:40(유전:환경)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는 통계학적인 숫자일 뿐 개개인에게 단정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두뇌의 가장 큰 특징인 가소성 때문이다. 즉,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우주의 별처럼 많은 뉴런은 끊임없이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무한하게 가능성을 펼쳐나갈 수 있는 하드 웨어를 가진 셈이다. 이들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발명가 에디슨이 말했듯이, “본인의 노력이 가장 큰 변수”라고 주장한다. 지능의 유전설과 환경설은 이처럼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과학자들이 더 많은 증거를 찾아낼 때까지 당분간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능은 어디에 있는가
지능 연구를 위해 학자들은 g (일반 지능 인자 general intelligence factor) 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1904년에 영국의 심리학자 스피어맨 박사가 제안한 g는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으로 학습, 기억, 문제 해결을 하는데 필요한 인지적 정보 처리 능력을 통칭한다. 다시 말하면, IQ 테스트에서 측정되는 능력이다. 스피어맨 박사의 제자였던 카텔 박사는 일반 지능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플루이드 지능 (gF, Fluid Intelligence)으로 경험과 무관하게 거의 선천적으로 지닌 지능이고, 또 하나는 경험 지능 (gC, Crystallized Intelligence)으로 체험으로 인해 축적되는 문화적 지능이다.
영국의 뇌과학자 존 던컨 박사는 2000년 플루이드 지능(gF)을 뇌신경학적으로 밝히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지능의 ‘위치’를 규명한 것이다. 던컨 박사는 피험자가 공간지각력, 언어 능력 등의 테스트를 받는 동안, PET로 그들의 뇌를 촬영하였다. 실험 결과, 피험자의 전두엽의 측면(lateral 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었음이 드러났다. 이 부위는 다른 인지 능력에서도 동일하게 활성화된 영역이었다.
최근 플루이드 지능(gF)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워싱턴 대학의 토드 브레이버 박사팀은 48명의 피험자의 지능 검사를 한 후, 그들이 단기 기억력 문제를 풀 때 나타나는 뇌의 활동 상황을 fMRI로 촬영하였다. 문제는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연구 결과, 뇌에서 집중력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부분과 두정엽, 소뇌의 일부분이 활성화 되었다. 특히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지능이 높을수록 그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고 밝혔다. gF는 완전히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팀은 gF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은 앞으로 gF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기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의 던컨 박사의 연구가 단순한 g의 위치를 파악한 데에 비해, 이 연구는 지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뇌 기능의 차이를 규명하려고 한 것에 의미가 있다.
사실 이러한 지능 연구에 관해서는 끊임 없는 논란과 반론이 제기되어 왔다. ‘과연 학습 능력, 단기 기억력, 공간 지각력 등이 인간에게 있어서 ‘지능’인가?’ 하는 문제이다. 하버드 대학의 스테판 코스린 교수는 측정되는 지능은 “결국 학교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일 뿐,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데 필요한 능력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던컨 박사는 “물론 일반 지능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을 다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한 바 있다.
영재의 뇌쓰기
추리력, 공간지각력 등을 측정하는 문제를 풀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
영재학생(왼쪽)의 경우, 일반학생(위)보다 활성화된 영역이넓다
영재 학생 문제 풀 때 뇌 활성화가 많이 된다
국내에서도 최근 영재고교 학생과 일반고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지능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의 이건호 박사팀은 지능 검사와 같은 문제를 풀 때, 영재 학생과 일반 학생의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로 살펴보았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등인지능력을 중점 과제로 삼고 있다.
실험 대상은 과학고, 외국어고에서 성적이 상위권인 30명과 일반 고등학교에서 중위권인 학생 30명이었다. 연구팀은 먼저 이들의 지능을 측정하는 검사를 했는데, 국제 표준검사법인 RPMT (Raven Progressive Matrix Test)와 WAIS (Wechsler Adults Intelligence Scale) 검사를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피험자들이 과제를 푸는 동안 그들의 뇌를 fMRI로 촬영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과제는 추리력, 공간지각력 등을 측정하는 세 종류의 문제로 구성되었고, 누구나 풀 수 있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가 섞여 있었다. 실험 결과,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지능이 뛰어난 (영재) 학생의 경우는 활성화된 영역이 보통 학생보다 더 넓었으며, 과제를 수행할 때 뇌간의 일부분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재의 뇌기능이 일반학생에 비해 보다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최근 브레이버 박사가 발표한 연구의 몇몇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단기 기억력 한 가지를 일반 지능으로 간주한 브레이버 박사의 연구에 비해 이번 연구는 일반 지능에 포함되는 공간 지각력, 추리력 등을 검사하였다. 또한 브레이버 박사는 지능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일반 집단에서의 지능 차이에 따른 뇌의 활성도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건호 박사의 연구는, 지능이 아주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 보통인 집단 등 확연히 구분되는 실험집단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지능의 차이에 따른 뇌기능적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을 끈 사실 중 하나는 지능이 최상위권인 학생과 보통 학생이 창의성 검사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의성 검사는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토렌스 검사법을 통해 실시하였으며 이 검사법은 선이나 동그라미 등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최대한 많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창의성을 독창성, 융통성, 유창성, 정교성 등으로 분류해 측정한다. 그 결과, 영재들은 정교성은 뛰어났으나 독창성이나 융통성은 보통 학생들에 비해 특별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결과에 대해 이건호 박사는 “창의성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능 높은 사람은 단순한 일 할 때도 뇌기능 다르다
한편, 미 캘리포니아 얼바인 대학의 리처드 헤이러 교수팀은 최근 〈인텔리전스〉지에 발표한 연구보고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복잡한 문제를 풀 때만이 아니라, 비디오 시청 등 단순한 일을 할 때에도 뇌가 다르게 기능한다고 밝혔다. 헤이러 교수팀은 22명의 대상자를 지능 검사를 통해 두 그룹으로 나누고, 피험자가 감정을 자극하는 비디오와 지루한 비디오 두 편을 보는 동안 그들의 뇌를 PET으로 촬영하였다. 이 때 지능이 높은 그룹의 사람들의 뇌에서는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과 언어 영역, 집중력 조절하는 전두엽이 상관관계를 보였다. 연구팀은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뇌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데에 기인한다고 추정했다.
[출처] 브레인월드 > 기획기사 > 뇌과학이 밝히는 지능의 세계
http://www.brainmedia.co.kr/PlannedArticle/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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