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양성/브레인(brain) 이야기

지능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단산사람 2011. 4. 6. 12:37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해묵은 지능 얘기가 무슨 소용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능검사는 여러 가지를 예측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취업 준비생에게 매우 익숙한 언어력·수리력·추리력을 측정하는 검사가 있다. 바로 삼성 그룹에 입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직무 적성검사다. 미국 유학에 필요한 SAT나 GRE 시험도 지능검사의 일종으로 아주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상식이나 전반적인 사고 능력을 묻는다. 우리나라 대입수학능력시험도 SAT를 본뜬 것이다.

 

 

 

[1] 지능과 IQ
지능은 아이큐IQ가 아니다! 원래 지능이란 지혜와 재능을 일컫는 말이니, 머리를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몸을 쓰는 재주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지능이란 단어가 심리측정 검사에 사용되면서 의미가 매우 협소해져 일반인도 지능을 아이큐, 즉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와 거의 동의어로 인식한다.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지능은 인텔리전스(intelligence)를 번역한 말이다. 영어의 인텔리전스 역시 매우 복합적인 개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을 배우고,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계획하는 능력을 모두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창조성을 지능과 대조되는 요소로 인식하지만, 원래 지능은 창조성도 아우를 뿐 아니라 사실상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지적 능력의 복합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전적 의미가 이렇다면 학계 전반에서 합의한 지능의 정의는 무엇일까? 1995년에 미국심리학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펴낸 <지능: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인은 서로 다르다.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사고를 하고, 숙고해서 장애를 극복하는 능력이 다르다. 이런 개인차를 허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벽하게 일관적이지도 않다. 한 개인의 지적 수행 능력은 경우에 따라, 평가 영역이나 기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지능의 개념은 이런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일부 영역에서는 개념적으로 명확해졌지만, 핵심의
문 모두에 답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는 아직 도출하지 못했다. 사실, 최근에 학계의 저명한 지능 이론가 20여 명에게 지능을 정의해달라고 요청했더니 20여 가지 서로 다른 지능의 정의를 보내왔다.

그렇다면 학계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지능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 심리학회 보고서보다 1년 앞서, 52명의 지능 연구자들이 ‘지능의 주류 과학’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지능을 이렇게 정의했다.

‘여러 정신 능력 중에서도 매우 보편적인 정신 능력으로 추론, 계획, 문제 해결, 추상적 사고, 복잡한 개념의 이해, 빠른 정보 습득, 경험에서 배우는 능력 등을 아우른다. 이는 단지 학교 교육, 좁은 의미의 학습 기술 또는 시험을 치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가 주위 환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넓고 깊은 능력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대응책을 고안해내는 능력을 반영한다.’

학계의 정의가 사전적 의미보다 좀 더 선명한 듯하지만, 이 정의도 지능의 요소를 설명할 뿐이며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아 여전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너무 큰 개념은 다루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지능을 정의하진 못하고, 지능검사가 측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2] 일반지능과 다중지능
‘하나인가? 여럿인가?’ 이는 지능연구사의 빅 퀘스천이다. 인지검사가 개발된 이래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겉보기에 분명히 차이가 나는, 다양한 종류의 인지검사임에도 그 점수 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국어 잘하는 학생이 영어도 잘하고, 영어 잘하는 학생이 수학도 잘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주변에 국어만 잘하고 수학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려 들지는 마시라. 전교 1등은 모든 과목을 잘하고, 꼴찌는 모든 과목을 못한다. 국어 만점, 수학 빵점인 극단적 예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지검사 간 상관관계는 지능의 확고한 특성이다). 이런 상관관계는 다양한 인지 기능의 저변에 공통 요소의 존재를 강력히 암시한다.

이에 주목한 스피어만(Charles Spearman)은 여러 검사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 요인을 수학적으로 추출하고 일반 지능으로 명명하는 이론을 1904년에 발표했다(이를 위해 그는 요인 분석이라는 통계 기법을 개발했다). 일반지능(general intelligence)은 지능 연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으로, 한 세기를 넘긴 묵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지능 이론은 일반지능 이론과 대척되는 모듈 이론(지능은 독립적 기능 단위들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의 대표적 최신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통계적 기법의 한계로 인해 어느 쪽이 옳은지 아직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학계의 주류 인식은 일반지능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각종 지능검사가 일반지능을 측정한다고 여기고 있다.


[3] 지능 검사의 쓰임새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해묵은 지능 얘기가 무슨 소용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능검사는 여러 가지를 예측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취업 준비생에게 매우 익숙한 언어력·수리력·추리력을 측정하는 검사가 있다. 바로 삼성 그룹에 입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직무 적성검사다. 미국 유학에 필요한 SAT나 GRE 시험도 지능검사의 일종으로 아주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상식이나 전반적인 사고 능력을 묻는다.

우리나라 대입수학능력시험도 SAT를 본뜬 것이다(논외이긴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시험은 당락을 판정하는 자격시험 수준으로 활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출제자가 모든 점수대에서 적절한 변별력을 갖게끔 난이도를 조절하기가 어려워, 적은 점수 차이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능검사인 비네-시몽(Binet-Simon) 검사는 학습장애아를 분별하려는 목적으로 프랑스에서 개발되었고, 미국에서는 한때 이민자나 군 입대자를 받아들이는 데에 지능검사를 활용했다.

이밖에도 지능지수는 업무 수행도, 사회경제적 지위, 수입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예측하거나 설명하기도 한다. 심지어 지능지수가 높으면 오래 산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렇듯 지능지수의 유효성은 명확하기에, 심리학자 보링(Edwin Boring)은 기존의 모호한 정의를 버리고 지능은 지능검사가 측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4] 백 년을 기다린 지능의 주인  
지능의 정의가 복잡해 보이고 선명하지 못한 이유는 체體보다 용用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본체는 하나여도 용도는 다양한 법이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여, 딸과 어머니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회사원이자 주부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의 입장에서는 그 여성이 주부로서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듯이, 개개의 역할만 보다 보면 정작 사람 자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와 반대로, 용도가 같아도 본체는 다를 수 있다. 말하기와 숫자 세기 등의 기능을 하는 신체 부위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입이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는 손도 가능하다(열심히 노력하면 발도 가능하다고 할 사람도 있으리라. 인정한다). 손은 숫자를 꼽을 수도, 수화로 말을 할 수도 있다. 청각 장애인들이 현란한 손짓으로 수다를 떠는 장면을 보면 ‘눈으로 듣는 시끄러움’이라는 공감각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능만으로는 지능을 정의하기조차 어렵다. 본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와 용을 함께 봐야만 지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눈치 챘겠지만, 지능의 체는 바로 뇌다. 이런 맥락에서 지능을 좀 더 간단하게 재정의하자면, 지능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다. 여태까지 지능 연구는 뇌에 대해 속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로 보고 겉으로만 보이는 자극과 반응, 즉 정보의 입력과 출력에 관해서만 연구했다(그 극단적인 형태가 심리학의 행동주의파다). 학자들이 살아 있는 뇌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세기 말에 뇌영상 장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양전자 방사단층촬영(PET) 장비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가 그 주역이다. 뇌가 활동하면 포도당과 산소가 소비되는 특징이 있다. 어떤 자극을 보거나 과제를 수행할 때, 특정 뇌 부위가 평상시보다 많은 포도당이나 산소를 소비한다면 이 부위가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뇌영상 장비는 실시간으로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알 수 있게끔 해준다. 개별 인지기능에 대한 연구는 이 장비의 개발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지만, 지능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했다.


[5] 일반지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
21세기는 지능의 체, ‘뇌’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세기다. 2000년, 새 천년 벽두에 영국의 던칸(John Duncan)은 동료 연구원과 함께 일반지능을 최초로 뇌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한 논문을 과학계의 초특급 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했다(Science 2000, p.457).

던칸은 PET를 이용한 이 실험에서, 일반지능을 측정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외측 전두엽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뇌 부위는 과제가 언어적 형태이든 도형적 형태이든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활동하여 일반지능의 특성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던칸은 이런 논리로 이 부위가 일반지능의 신경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이 우아한 논리에 반한 연구자들은 일반지능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고 열광했다.

하지만 미스 코리아도 알게 모르게 흉이 있듯이, 얼핏 완벽해 보이는 논리에도 허점이 있었다. 이 실험에서 도형 과제는 두 종류를 사용했는데, 한 과제에선 왼쪽 전두엽이, 다른 과제에서는 오른쪽 전두엽이 활성화되었다. 활성화된 뇌 부위의 이름은 같지만, 물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위치였던 것이다. 지필고사에서만 출몰하던 유령과 같던 지능을 뇌과학이라는 물리적 세계로 적극 소환시켰다는 점에서 이 논문이 기념비적이긴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일반지능을 어느 한 곳의 뇌 영역, 특히 외측 전두엽만이 관장한다는 주장에 반하는 증거가 점점 축적되고 있다.


[6] 뇌의 활성도와 지능지수의 관계
던칸이 간과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실험을 설계할 때, 지능지수의 개인차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지능을 관장하는 부위는 다양한 과제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능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던칸의 논문 발표 3년 후, 그레이(Jeremy Gray)와 동료들이 작업기억 과제(고도의 집중력과 순간 기억력을 요구한다)를 이용한 fMRI 실험에서 전두엽과 두정엽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았다(Nat. Neurosci. 2003, p.316).

특히 이들이 과제의 난이도를 구별하여 비교해본 결과, 집중력이 더 요구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전두엽과 두정엽의 활성도가 지능지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과제는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이전 연구 중에서는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오히려 뇌의 활성화 수준이 낮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지능 수준과 뇌 활동성의 관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개인 능력의 최대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전두-두정엽의 뇌회로망이 지능 수준과 비례하여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능이 높으면 집중력을 발휘해 짧은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고, 지능이 낮으면 집중력이 약해 문제풀이에 긴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동일한 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지능이 낮은 사람이 에너지를 훨씬 더 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7] 영재들의 뇌 
전두-두정엽 망이 일반지능의 개인차와 비례하여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들 영역을 일반지능의 뇌 기반이라고 여기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왜냐하면 그레이의 실험에서 사용된 작업기억 과제는 일반지능과 관련성이 비교적 높지만, 일반지능을 대표하는 과제는 유동성 추론(주어진 문제에서 규칙을 찾아내고 그 규칙을 적용해서 정답을 찾아낸다) 과제이기 때문이다. 던칸의 연구에서도 유동성 추론 과제를 사용했다.

필자가 포함된 연구팀에서는 추론 과제를 사용한 fMRI 실험을 진행했다(Neuroimage 2006, p.578). 특히 피험자 집단을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외고 등에서 추천 받은 영재 학생들로 구성하여 일반계 고교생의 뇌 활동성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전두-두정엽 망이 보통 집단에 비해서 영재 집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던칸이 주장하는 일반지능의 신경 기반인 전두엽 영역보다 두정엽 영역이 지능 수준과 더욱 비례하여 활동했다. 달리 말해, 지능이 높을수록 전두엽보다는 두정엽을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8] 뇌로 재는 IQ?
기존의 지능검사는 대부분 지필검사의 형태로 측정한다. 종이와 필기구만을 사용하는 지필검사는 뇌에 관한 물리적 정보를 이용하지 않으므로 피검자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점이 있다. 피검자가 시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시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우에 얻은 지능지수를 신뢰하긴 어렵다.

뇌를 측정해서 지능 수준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연구팀은 뇌를 측정해서 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fMRI를 이용해서 뇌의 활성도를 측정할 뿐만 아니라 해부학적 MRI 영상을 이용하여 뇌의 피질 두께를 재어 지능의 예측도를 더 높일 수 있도록 고안했다. 우리가 개발한 뇌 기반 지능지수는 뇌의 기능적 특성과 구조적 특성을 동시에 입력 변수로 활용하여 기존의 지능검사에 근접한 수준에서 지능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결과는 <신경과학지(Journal of Neuroscience)>에 논문으로 실려 작년 말에 출판되었다(J. Neurosci. 2008, p.10323). 아직 보완되어야 할 점이 많아 갈 길이 멀지만 미래에는 실제 생활에 적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뇌로 지능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다. 하지만 뇌의 구조와 기능은 유전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뇌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인 가소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뇌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앞으로 한 사람의 지능을 평가할 때, 그날의 정신적·신체적 상태나 한순간의 실수로 좌우되는 지필고사보다는 자신의 삶과 노력이 이루어낸 현재의 뇌로 오롯이 평가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글·최유용 narodo@gmail.com
서울대학교 뇌과학협동과정 박사 졸업.
박사후 연구원.

[출처] 브레인월드 > 뇌생활문화 > 지능에 관한 오해와 진실
http://www.brainmedia.co.kr/BrainLife/1111

[출처] 브레인월드 > 뇌생활문화 > 지능에 관한 오해와 진실
http://www.brainmedia.co.kr/BrainLife/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