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양정사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대들보에 쓰인 긴 상량문을 보았습니다. 요즘 상량문은 매우 짧은 한 줄 짜리가 대부분이나 예전 어른들은 건물의 신축, 개축, 증축 시 그 이유, 건축 과정, 건축 후기까지 상세히 적어서 기록으로 상량문을 남겼습니다. 글이 쓰인 대들보는 다시 제자리에 위치시켰습니다. 상량문이 쓰인 시기는 정조 임금 시절입니다. 상량문 원문은 정조 때 문신인 두암 김약련선생이 적었으며 대들보의 상량문 글씨는 당시의 종손(黃潤九)께서 썼습니다. 번역은 2013년, 강원대 명예교수인 황재국교수가 하였습니다.
금양정사 중수상량문 (錦陽精舍 重修上梁文)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수 백 년이 되었지만 이름난 이곳의 풍광은 옛날과 같은데 후손들이 중수를 너 다섯 번 했으니 정사의 제도가 한결같이 새로워졌도다 대개 자손들이 선조의 뜻을 계승하여 정성을 다한 것을 볼 수 있으니 어찌 다만 건물의 흥하고 황폐해 무너지는 것이 해가 지나면 당연하다는 운수에 맡겨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금계 선생께서 처음으로 이 몇 칸의 깨끗한 집을 지으셨으니 연원은 퇴계로부터여서 진실로 공자의 문하로 치면 안연과 같고 좋은 경치는 명승지 풍기 땅에서 으뜸으로 차지했으니 이는 완연히 주자의 서재 고정(考亭)과 같도다 산인(산지기)에게 위촉하여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으니 이는 대개 노나라 은공이 토구 땅을 장차 늙을 곳으로 정한 것처럼 금계 선생께서 이곳에서 장차 제자를 기르며 여생을 보내려 한 의도이며 맑은 시를 보운(步韻)하며 공자께서 증점을 허여하여 지지한 뜻을 생각하셨으리라 집이 완성되지 못하고 선생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사우(師友)간의 애석함이 일어났겠는가 지역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이고 꽃다운 발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후생들이 돌아가 의지할 만하구나 다만 여러 해 세월을 겪음으로 인하여 몇 번이나 지어지고 허물어졌던가 처음 들불이 옮겨붙어 불살라져 황폐된 지 일백여 년에 재차 후인들에게 수리되었으니 다시 지어야겠다고 경영한 것이 24년이 되었다 또한 지난 정묘년 가을에 옛날 제도를 넓혔지만, 집이 어둡고 답답함을 면치 못하여 계축년에 이르러서 증축했으니 지세가 기울었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지으려 했던 뜻을 추후해서 지었으니 어찌 옛날 제도 그대로만 따라 지을 수 있었겠는가 먼저 몇 칸의 중이 거처할 집(제궁절)을 지었으니 본채는 내년을 기다려 완성코자 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정당이 지어지기 전에 갑자기 종손이 별세하게 될 줄을 생각했으랴 몇 해 동안 경영하여 (어떻게 지을까) 위치 포치만 대강 이루어지고 다년간 정사가 폐각 되어 있어 산천과 운물 함께 부끄럽게 여겼더라 각각 자손들 집에 상사의 참혹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 한스럽게도 여력이 미칠 겨를이 없게 되었으니 여러 가지 조치와 준비들이 흐트러져서 실로 큰 역사의 도모가 어려웠도다 시인 묵객들의 (왜 이렇게 못 짓나 하는) 탄식을 일으킨 지가 오래였으니 훌륭한 감상을 져버릴 수 없지 않은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돌아가신 형의 가슴에 쌓아 두고 가셨던 뜻을 어찌 여러 자손들에게 힘쓰게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에 드디어 금년 봄에 다시 중건하는 역사를 시작했도다 옛터의 조금 기운 곳에 개척했으니 지금 사람들이 고의로 이전 사람들의 뜻을 달리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제도로 확장하여 변경하여 짓는 것은 정사가 주방과 이어진 것을 혐오해서이네 옛날 네 칸을 지금 여섯 칸으로 하여 조금 변통을 두고 방을 우편으로 하고 청은 좌편에 두었으니 각기 여름과 겨울에 알맞게 하기 위함일세 기와를 굽고 재목을 모으는 것이 뜻과 같이 아니 되는 것이 없었으니 신이 그것을 도운 것과 같았고 기둥을 올리고 지붕을 얹은 것이 모두 다 새로워 소나무가 무성함같이 아름답게 되었도다 하루아침에 화려한 용마루가 우뚝하게 되었으니 백 년 동안의 선인의 규범을 상상하게 되었도다 금계개울의 물이 난간 앞에 둘러 있으니 원천이 나오는 이치를 알겠고 학가산이 하늘가를 당겨 받드니 높은 산과 같은 금계 선생을 우러러보는 회포를 일으키게 한다 산기슭이 두루 가리었으니 도시의 시끄러움과 티끌이 이르지 못하고 큰 고개가 빙 둘러 에워쌌으니 마을의 그윽한 운치가 다 함이 없도다 한 물가 몸을 붙이니 마음 또한 편안하다(一澗棲身亦自寬)는 금계 선생의 모재시(錦溪茅齋憩吟)의 청흥한 시구를 우러러보고 선사의 지극한 뜻이 영원히 저버림과 어김이 없었으니 라고 한 겸암 류운룡공의 금양정사 기문의 남긴 글을 마땅히 따르리로다 생각건데 선조가 구상한 뜻을 자손이 실행하는 것이 어찌 다만 이 집을 중건하는 것에만 있으리오 (선조의 유훈이 )위에 있고 우측에 있는 것같이 하였으니 반드시 너의 인생을 더럽히지 말 것을 생각해야 하리로다 그런대로 육위가(六偉歌) 가사를 불러 긴 들보를 들어 올리는 것을 돕노라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노니 우러러봄에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가 붉었도다 밝고 밝은 이 마음을 티끌이 가리지 못하니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이치로서 절로 통하네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노니 조물주가 뜻이 많아서 주위에 작은 산 나지막하게 했도다 산 앞의 도시는 시끄럽고 분잡한데 구불구불 산이 둘러막아서 이 정사를 조용하게 보호하네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노니 금선대의 샘물과 돌(자연)이 소나무와 삼나무를 비추도다 영령이 높은 정자 위에 오르내리니 효성스러운 생각이 영원히 우러나올 것이다 어영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노니 건물이 덩시렁 높이 (금계 선생의) 큰 덕에 보답하는도다 스승과 제자(퇴계와 금계) 두 분을 한 사당에 함께 제사를 모셨으니 많고 많은 선비들 마음에 싫어함이 없이 흐뭇해하리로다 어영차 들보를 위로 던지노니 건물 우뚝 높이 솟았네 지금 몇 번이나 지었던가 일에 따라 대들보를 마땅히 흔들리지 말게 해야 할 것이니 아직 듣지 못했노라 들보가 부러지고도 집이 무사했다는 것을 어영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노니 샘물은 흘러 흐르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네 선을 하려면 여기에서 구하여야 할 것이니 지극한 정성이 쉼이 없으면 성인일 것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을 한 후에는 산령이 길이 보호하여 자손들이 영원히 번성하게 하소서 여기에서 거처하고 여기에서 노닐면서 후생들이 능히 선대의 광열을 생각하고 구릉이 평평해지지 않고 골짜기도 변하지 않아서 남기신 기풍이 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게 하소서 어찌 관람하는 것이 날개를 펴고 꿩이 나는 것보다 아름답기를 위하리오(좋은 경치를 보는 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의 사업을 자손이 이어받는 미덕을 실추시키지 말아야 하리라 장차 새가 나는 것을 연마하듯 점차로 발전시킬 것이니 영원히 시례(詩禮)가 전해지는 것을 잃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오직 자손들이 마땅히 정성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림들도 서로 더불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백고년 중춘 상순에 선성(예안)후인 김약련 찬하다
2012년 10월 일
錦溪先生 16代孫 在國 삼가 번역하다
錦陽精舍 重修上梁文 先生已歿數百年 名區風煙之如舊 後孫重修四五次 精舍之制度一新 盖可見繼述之盡誠 豈徒委興廢之有數 恭惟我錦溪夫子 始創此數間淸齋 淵源自於退溪 允矣仲尼門之顔氏 名勝擅於基木 宛是晦菴翁之考亭 屬山人而董工 盖菟裘我將老之志也 步淸詩而寄興 想函丈吾與點之意焉 屋未成而仙馭遽催 幾興師友間痛惜 地不改而芳躅猶在 堪作後生輩依歸 第緣累經星霜 于今幾番成毁 始延燒於野火 荒廢一百餘年 再修葺於後人 中間二十四歲 亦奧丁卯秋之恢拓古制 猶未免屋宇之幽暗 及至癸丑春之增築舊基 所以正地勢之傾側 追述數三世遺意 豈可仍舊貫而止哉 先作若干閒僧寮 將欲待來年而成者 那意正堂之未搆 奄遭嗣孫之云亡 幾世經營位置排布之粗就 多年廢閣山川雲物之共羞 各家之喪慘連仍 恨無餘力之暇及 凡百之措備渙散 實難巨役之爰謀 騷人墨客之興嗟 久矣孤負於勝賞 先父亡兄之齎志 曷不勉勵於諸孫 迺於今年之春 更始重建之役 拓舊址之偏仄 非今人故異於前人 換新制之更張 嫌亭舍相聯於廚舍 古四間今六間稍存變通房右邊堂左邊各宜冬夏 燔瓦鳩材之無不如意若神相之 上棟下宇之率皆維新如松茂矣 得一朝華甍之突兀 想百載先人之典刑 遶錦水於檻前 識源泉放乎之理 挹鶴峀於天畔 起高山仰止之懷 山麓周遮城闠之囂塵不到巨嶺環拱洞府之幽趣無窮 一澗棲身亦自寬 仰體茅齋詩淸興 先師至意永無負 宜遵謙巖公遺文 念肯構而肯堂 豈徒重建是屋 如在上而在右 必思無忝爾生 聊唱六偉之詞 用助脩梁之擧 兒郞偉抛梁東 仰看朝朝旭日紅 曒曒此心塵不翳 天人一理自相通 兒郞偉抛梁西化翁多意小山低 山前城市囂紛雜蜿蜿廻遮護靜棲 兒郞偉抛梁南 錦仙泉石映松杉 英靈陟降高亭上孝思千秋不自堪 兒郞偉抛梁北院宇穹窿報盛德 師弟一堂祭祠同靑衿濟濟心無斁 兒郞偉抛梁上屋宇崇崇今幾刱 隨事脊梁宜勿搖未聞梁折屋無恙 兒郞偉抛梁下晝夜泉流流不舍 爲善須從這裏求至誠無息聖人也 伏願上梁之後山靈長護雲仍永蕃 居於斯遊於玆 後生克念其先烈 陵不夷谷不變 遺風未沫於千齡 奚爲觀美於翬飛 庶勿墜箕裘之業 將見得效於鳥習 永不失詩禮之傳 不惟子孫之所宜殫誠抑亦士林之相與盡責 歲白羔仲春上浣宣城後人金若鍊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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