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내(川)가 두 갈래로 흐른다 하여 ‘둘구비(二曲)
’우리마을탐방[194] 휴천1동 “둘구비”
산과 내를 굽이도는 곳에 천하명당 두 곳
마을의 자랑, 부부해로(夫婦偕老) 장수마을
돌구미 마을전경 |
휴천1동 둘구비 가는 길
영주중 앞을 지나 남간재를 넘는다. 술바우사거리에서 충혼탑 방향으로 간다. 충혼탑에서 700m 가량 가면 ‘내고향 둘구비’라고 새긴 큼직한 표석이 나타난다. 이 표석을 중심으로 산과 내를 굽이도는 곳에 형성된 마을이 ‘둘구비’다. 지난 1일 둘구비에 갔다. 이날 이곡(二曲) 경로당에서 김태인 노인회장, 권수익 어르신, 남순남 부녀회장, 김태운 사무국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둘구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둘구비
영주는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이 됐다.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둘구비는 영천군 산이리(山伊里) 사동방(蛇洞坊)에 속했다. 당시 산이리에는 산이방(山伊坊), 초곡방(草谷坊,사일), 용암방(龍巖坊,용암대), 사동방(蛇洞坊), 한성동방(漢城洞坊,한성골), 저율곡방(猪栗谷坊,돗밤실), 율지방(栗枝坊,율곡지) 등 7개 방(마을)이 있었는데 둘구비가 속한 사동방은 충혼탑 맞은편 마을로 지금도 ‘뱀골’이라 부른다.
17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산이면 사동리에 속했다가 1896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산이면 상구동(上舊洞)에 편입됐다. 이 때 구서원 인근 마을인 용암리와 사동리를 합쳐 상구동(上舊洞)이라 하고, 한성동리와 저율곡리, 율지리를 통합하여 하구동(下舊洞)이라 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이산면 원리(院里,서원마을)에 속했다가 1980년 영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영주시 휴천1동(7통)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태인(76) 노인회장은 “둘구비는 노인회관이 있는 본마와 노루고개 방향에 있는 순애밭골 그리고 길 건너 거무실로 구성돼 있다”며 “예전에는 본마에만 30호가 살았는데 지금은 이곳저곳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아 60여 호로 늘었다”고 말했다.
돌구비 표석 |
고령박씨 묘(명당) |
둘구비의 지명유래
둘구비는 ‘두 굽이’ 또는 ‘두 갈래’라는 뜻으로 전해온다. 1984년 경북교육위원회에서 발간한 경북지명유래편에 보면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가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른다 하여 ‘두굽내(二曲川)’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르기 쉽게 발음하다보니 ‘둘개비’ 또는 ‘둘구비’가 됐다」고 기록했다. 2010년에 발간된 영주시사에 보면 「‘산과 산 사이를 굽이도는 곳에 천하명당 두 곳이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찾아 몰려 왔는데 고령박씨가 그 중 한 곳을 찾아 묘를 썼고, 다른 한 곳은 찾지 못했다 한다. 그 후 사람들은 두 굽이에 명당 두 곳이 있다 하여 ‘두굽이’라고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둘구비(二曲)’가 됐다」고 적혀 있다. 이 마을 권수익(83) 어르신은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두굽이 명당 터에서 ‘둘구비’란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안다”며 “그 이전에 있었다는 ‘두 갈래 내’가 흐르는 ‘둘구비’도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곡경로당 頌德碑 |
이곡경로당 |
경로당 송덕비(頌德碑)
마을 앞에 최근에 지은 정자가 있고, 그 옆에 송덕비가 있다. 이곡경로당을 지을 때 협찬해 주신 분에 대한 고마움을 새긴 비다. 송덕비에는 「희사금방명당재지 기현판구제어(喜捨金芳名堂齋之 記懸板俱載於), 정성을 다해 협찬해 주신 분들의 성명을 경로당 현판과 돌에 새겨 오래오래 기념하고자 한다」라고 썼다. 1997.12.26에 새긴 비문에는 추진위원장 이의선, 추진위원 권수익·김규동·김태인·박준만·유영진·유태섭·최영창·정규자 씨의 이름과 희사한 4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태인 회장은 “당시 박영수(古人) 어르신께서 ‘내가 100만원 낼테니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회관을 건립하자’고 주창하셔서 추진이 됐다”며 “그 때 박영수 어르신외 7명이 100만원씩 희사하셔서 지금도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점순(76) 할머니는 “이곡경로당은 가근방에서 가장 먼저 지은 경로당”이라며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을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이 계셔서 마을이 늘 화기애애하다”고 말했다.
부부해로(夫婦偕老) 장수마을
정숙자(79) 할머니는 “둘구비는 솔숲향기 은은하고 물이 좋아 ‘장수(長壽) 마을’이라고 부른다”며 “둘구비는 부부가 해로하는 집이 많아 ‘부부해로 장수마을’로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거무실에 사는 황중섭(87)·권기미(81) 어르신 부부의 팔순 잔치가 지난달 31일 경로당에서 열렸다고 한다. 기자는 다음날(2일) 어르신댁에 가서 두 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황씨 어르신은 “아들만 4형젠데 저들 어머니 팔순이라고 아들들이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해 준거뿐인데 쑥스럽다”며 “예전에 집안 형님의 중매로 안동 녹전으로 장가들었는데 선도 안 보고 그냥 좋아 장가들었다. 그동안 내가 병원신세 많이 져서 집사람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권기미 할머니는 “그 때 나는 20살, 신랑은 26살이었다. 친정 마당에서 구식결혼식을 올리고 가마타고 이산면 질골로 시집왔다”며 “당시는 먹고 살기 힘든 때라 풍기와 영주를 옮겨 다니며 살다가 40년 전 둘구비에 터를 잡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집 앞에는 현대식 대형축사가 있다. 아들이 하는 거라고 하지만 어르신의 손길이 필요한 듯 보인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르신은 “좋은 호흡과 좋은 물 그리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이라며 “둘구비는 시내가 가깝고, 산좋고 물이 좋아 살기위해 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탕건바위(翼善冠) |
바위의 전설들
마을 뒷산에 탕건바위가 있다기에 김태인 회장과 올랐다. 뒷산 8부 능선에 자리 잡은 이 바위는 ‘탕건바위’라기보다는 ‘왕관바위’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광화문 세종대왕동상을 보면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익선관(翼善冠)과 이 탕건바위가 똑같기 때문이다. 이 탕건바위는 둘개비 마을 보물 제1호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탕건바위’라 했다 한다.
아들바위 |
금봉사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도로 좌측에 ‘아들바위’가 있다. 여성(女性)을 닮은 이 바위에 돌을 던져 그 안에 들어가면 아들을 낳은 다는 전설의 바위다. 김태인 회장은 예전에 “배해, 용상골 사람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이 바위에 치성(致誠)을 들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말했다. 권수익 어르신은 “금봉사 인근에 ‘치마바위’와 ‘폭소(폭포목욕소)’가 있었는데 이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고 눈이 밝아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예쁜취미 예쁜보물 |
예쁜취미 ‘예쁜병’이 보물
권수익 어르신은 “우리마을에 보물이 또 있다”며 “남순남 부녀회장은 마을에서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여러 봉사단체에 나가 남모르는 봉사를 많이 해 마을의 보물이다. 또 집에 가면 보물이 또 있다”고 했다. “무슨 보물이냐”고 여쭈니 “가보면 안다”고 했다. 다음날 보물을 찾아 갔다. 거실 벽면이 온통 진열장이다. 진열된 작고 예쁜병들의 수가 천 개는 넘어 보인다. 남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취미로 모으기 시작했다”며 “하나하나 장식장에 진열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병 하나하나가 역사가 되고 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 가장 아끼는 보물이 무엇이냐?”고 여쭈니 “금복주 옛 병”이라며 “새로운 병이 나오면 당장 가서 사기도 하고 병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태인 노인회장 |
남순남 부녀회장 |
황중섭 어르신 |
권기미 할머니 |
권수익 어르신 |
정옥순 할머니 |
서옥란 할머니 |
정숙자 할머니 |
정점순 할머니 |
유숙자 씨 |
돌구비 마을사람들 |
둘구비 사람들
둘구비의 상징물은 마을표석이다. 높이가 3.3m인 이 입석은 김태인 회장이 통장으로 재임하던 2003년 세웠다고 한다. 김 회장은 “장수 성곡에서 돌을 구해오고 마을 사람들과 협의하여 ‘둘구비’라고 새겼다”고 말했다. 친정이 평은 시낼인 서옥란(81) 할머니는 “경로당에 모여 10원짜리 화투 칠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며 “경로당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고, 도와주고, 챙겨주는 공동거주의 집이다. 일찍이 경로당을 짓고 마을을 이끌어 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옥순(77) 할머니는 “둘구비 사람들은 예로부터 조상을 잘 섬기는 효(孝)의 마을”이라며 “선대(先代)가 조상님들을 잘 모시니, 자손들 또한 부모님께 효도하는 미풍이 전해지는 전통마을”이라고 말했다. 회관에서 나와 마을 한 바퀴 돌았다. 정자 앞에서 주경숙(53,다모아갤러리 대표) 씨를 만났다.
주경숙 씨 |
주 대표는 “둘구비는 남편의 고향이고, 시내가 가까운 게 장점”이라며 “마을 분들끼리 서로 돕고 합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좋다”고 말했다. 둘구비에서 나오다 길가에 버려진 비닐을 줍고 있는 유숙자(71) 씨를 만났다. 유 씨는 “새봄맞이 동구(洞口)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마을 가꾸고 청소하는 일은 부녀회 몫”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아름다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고 마을 떠났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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