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171] 순흥면 태장2리 ‘거묵골’

단산사람 2017. 11. 29. 16:07

1500년 전 고구려·신라 역사박물관 ‘거묵골(墨洞)’

 

거묵골 전경

거묵골 주변, 어숙묘·벽화고분·태장리고분군
먹(墨)골에서, 복사꽃·능금꽃 피는 여우골로

순흥면 거묵골 가는 길
거묵골은 비봉산 뒤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순흥면 소재지에서 풍기방향으로 1km 지점에 읍내리벽화고분이 있고, 500m 가량 더 가면 여우생태관찰원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관찰원 쪽을 바라보면 금빛들판 사이로 인삼밭과 사과밭이 보이고, 그 안쪽에 보이는 마을이 태장2리 거묵골이다. 지난 15일 거묵골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박원식 이장, 강이구 노인회장, 이태섭 새마을지도자, 김연희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거묵골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거묵골 표지판

역사 속의 거묵골
순흥은 고구려 영토일 때는 급벌산군(及伐山郡)이라 했고, 신라가 차지하고 나서 급산군(及山郡)이라 불렀다. 

고려 때는 흥주-순안-흥령으로 부르다가 고려말 충렬왕, 충숙왕, 충목왕의 태(胎)를 소백산에 안치하면서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됐다.

조선 태종13년(1413) 순흥도호부로 승격됐으나 1457년(세조3) 금성대군 사건으로 폐부되어 풍기군에 속했다가 1683년(숙종9) 순흥부로 복설됐다.

거묵골(墨洞)이 역사에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 중기 무렵(1700년경)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대평면 묵동리가 되었다.

조선 말(1896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면서 순흥군 대평면 묵동이 됐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영주군 순흥면 태장(台庄)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원식(60) 이장은 “거묵골은 1960년대까지는 40여 가구가 사는 농촌마을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많이 떠나고 지금은 25호 정도가 산재해 산다”며 “봄에는 복사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탐스러운 사과가 영그는 ‘너와 나의 고향’같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여우생태관찰원

지명유래
거묵골은 조선 중기 무렵(1700년경)부터 묵동(墨洞)이란 독립된 행정명칭을 가진 마을이다. 당시 이 마을에 유력한 사람이 살았거나 어떤 성씨가 세거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알 길이 없다. 그럼 ‘왜 거묵골이 되었을까?’

이 마을 진규석(87) 어르신은 “옛날 여기서 ‘먹(墨)을 만들었다’고 영주시사에 나온다”며 “당시 순흥에는 순흥부 관아와 소수서원, 순흥향교, 마을마다 서당이 있어 먹이 많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경진(80) 어르신은 “선대(先代)로부터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땅을 파면 검은 숫돌 같은 돌이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거묵골은 먹(墨)에서 유래된 마을로 보고 있으며, 먹의 원료로 쓰던 검은 그을음이 흙에 묻혀 있다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검은 먹(墨)에서 유래하여 검은골, 거먹골, 거뭇골, 거목골 등으로 불러오다가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이곳 선비들이 먹 묵(墨)자를 써 묵동(墨洞)이라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또 풍기방향 고개를 ‘가랑고개’라고 한다.

김좌현(52) 전 이장은 “이 고개는 원래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이라 하여 갈마현(渴馬峴) 또는 ‘갈마고개’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해 ‘가랑고개’가 됐다”고 말했다.

 

식암 황섬의 신도비

신라에 남긴 고구려의 흔적
거묵골 주변에는 어숙묘를 비롯하여 읍내리벽화고분, 태장리고분군3 1호분 등 약 15기의 고분이 확인됐고, 고분 내에서 많은 수의 유물이 출토됐다.

우경수 전 이장은 “제가 동무(洞務)를 보고 있을 때 벽화고분이 발굴됐는데 당시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언론에 주목받았다”며 “개토제를 지내는 날은 언론사 기자, 관계기관, 지역주민 등 500여명이 북새통을 이루었다”면서 거묵골 주변 고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숙묘(사적238호) : 마을 앞산에 있다. 1971년 이화여대에서 발굴. 큰 연꽃무늬 1개가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는 게 특이하다. ‘어숙(於宿)’이라는 고구려인이 술간(述干)이라는 신라 관직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발견됐다. 535년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읍내리벽화고분(사적313호) : 어숙묘 남쪽 1km 지점에 있다. 1985년 대구대학교와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했다. 봉황, 구름, 연꽃, 고기, 장사 등 채색화가 있다. 535년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태장리고분군3 1호분 : 가랑고개 마루 우측에 있다. 2011년 1월 풍기-단산 간 도로확포장공사 지표조사 중 발견됐다. 세종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에서 출자형 금동관, 귀고리 등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1500년 전 신라시대 것으로 읍내리벽화고분 모형 옆에 모형이 전시돼 있다.

 

어숙묘

식암 황섬의 신도비
거묵골로 들어가는 초입에 식암(息庵) 황섬(黃暹)의 신도비가 있다.

황섬(1544-1616)은 창원인으로 풍기 희여골(백동)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사리에 밝게 통달하고 뛰어나서 큰 그릇이 될 도량과 소질을 보였다.

명종 19년(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선조 3년(1570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참군, 형조·호조·예조랑(郞), 황해도사, 도승지, 병조참의, 대사간 등 조정의 요직을 역임하고 광해군 즉위 후 낙향 백동서 일생을 마쳤다.

강이구(80) 노인회장은 “창원황씨 문중 전설에 “생거백동(生居白洞), 사거묵동(死居墨洞)이라 하여, 살아서는 풍기 백동(희여골)에 죽어서는 순흥 묵동(거묵골)에 묻힌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다”며 “비봉산 서편 일대와 거묵골 뒷산 대부분이 창원황씨 소유이며, 식암의 묘소가 앞산에 있다”고 말했다.

 

느티나무 숲

함께 살고 싶은 여우 이야기
“아빠, 여우 키우고 싶어! 한 마리 사줘” 여우생태관찰원을 관람하고 나오는 한 유아(幼兒)의 말이다.

거묵골에 2012년 종복기술원중부복원센터가 설립되고, 2016년부터 ‘여우생태관찰원’이 일반에 공개됐다. 소백산 종복기술원은 멸종위기 여우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증식·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도 여우발자국을 따라 관찰원 안으로 갔다. 여우 30여 마리가 활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동림 해설사는 “70년대 쥐잡기 운동에 따른 농약 중독, 무분별한 포획 등으로 거의 멸종하게 됐다”며 “2012년부터 중국동부에서 도입하여 적응-짝짓기-방사-연구-자연증식 단계를 거쳐 ‘다시 돌아 온 여우’가 됐다”고 설명했다.

여우샵에서 만난 이미자 해설사는 “매일 10시, 11시, 14시, 15시, 16시 전문해설사 동행 관찰원을 관람한다”면서 “지난 추석연휴 때는 하루 150-200명씩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 마을 윤태경(52) 씨는 “조용한 마을에 여우관찰원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마을에 생기가 넘친다”며 “거묵골은 복사꽃·능금꽃 피는 여우골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거묵골 사람들
마을 가운데 묵동경로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요 공동거주 공간이다. 현관 앞에 감사비가 있어 읽어 봤다. 마을의 숙원이던 회관건립 시 부지 마련이 어려울 때 「흥주농업」이 흔쾌히 부지를 헌납해 줘서 고맙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태섭(51) 새마을지도자는 “수도권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제 고향이라서 자랑이 아니라 공기 좋고, 물맛 좋고, 풍수해 피해 없이 해마다 풍년드는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김연희(51) 부녀회장은 “시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언젠가는 부모님 모시고 살 곳’이라 마음먹었었는데 돌아가시고 귀촌하게 되어 죄스럽고 마음 아프다”며 “시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이웃 어르신들을 친 부모님처럼 모시면서 월1회 저녁식사도 하고, 면민체육대회에도 같이 가서 하루를 즐긴다”고 말했다.

김숙자(70) 씨는 “마을 입구에서 마을쪽을 바라보면 금빛들판과 인삼밭 사과밭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면서 “20여 년 전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을 찾아 거묵골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거묵골 사람들

이 마을 박승자(69) 씨는 “올해 93세인 시어머니께서 ‘농촌에서 살고싶다’하셔서 1년 전 남편과 상의하여 거묵골에 터를 잡았다”며 “조용하고 공기 좋고 물맛이 좋아 시어머니께서 아주 만족해 하신다”고 말했다.

우서웅 전 노인회장은 “마을 앞 느티나무 숲은 마을의 상징이자 동신”이라며 “200년 수령 느티나무 아래 제단이 마련돼 있는데,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거묵골 연락처 010-4586-5965]

 

<순흥면 태장2리 거묵골 사람들>
 

박원식 이장
강이구 노인회장
우경수 노인회총무
이태섭 새마을지도자
김연희 부녀회장
김경진 어르신
김숙자 씨
박승자 씨
김좌현 전 이장
윤태경 씨

 

이원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