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169] 단산면 동원1리 ‘구미’

단산사람 2017. 11. 29. 15:58

조선 때 순흥부 동원면의 중심 마을 ‘구미(龜尾)’

 

구미마을 전경

순흥부 속방 중에서 명망 높은 마을
덕산이씨·일직손씨·풍기진씨 세거지

단산면 구미 가는 길
동원1리 구미마을은 안정면 동촌1리 피끝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 방향으로 간다. 귀내-장수고개를 지나 동촌고개를 넘는다.

동촌1리 영주관광 차고지 앞에서 우회전하여 동원교를 건너면 동원2리 자봉(紫鳳) 마을이고, 여기서 500m 가량 더 가면 ‘구미(龜尾)’이다. 지난달 25일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구미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이기영 이장, 안종호 노인회장, 진창환 노인회부회장, 박복수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마을 표석

역사 속의 ‘구미(龜尾)’
동원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에 속했다. 세조 3년(1458년) 금성대군 변란(정축지변)으로 순흥도호부가 폐부되자 풍기군에 속했다가 숙종 9년(1683년) 순흥부(順興府)로 회복됐다.

조선 중기 무렵(1700년경)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동원리(東園里) 구미방(龜尾坊)이라 부르다가 영조 이후(180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동원면 구미리가 됐다.

조선 말 1896년(고종 33년) 행정구역을 13도제로 바꿀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구미리와 자분리(自分里)를 합친 구미리가 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군의 동원면(새내, 바우, 구고)과 1부석면(병산, 단곡, 좌석, 마락)이 단산면으로 통합되면서 구미리는 영주군 단산면 동원리에 편입됐다.

그 후 1980년 영풍군에 속했다가 1995년 영주시 단산면 동원1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기영(59) 이장은 “구미가 조선 때 순흥부 동원면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름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고, 학문하는 선비가 살았기 때문”이라며 “그 후손들이 1950-60년대까지 50여호나 살았으나 산업화 이후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25호 정도 산다”고 말했다.

 

큰샘

지명유래
마을 앞 표석에 동원1리 구미(龜尾)라고 새겼다. 이 마을 원로 김윤학(91) 어르신은 “구두들(龜頭)이 거북 머리이고, 등영(登瀛)은 거북 등이며, 이곳은 거북꼬리에 해당 된다 하여 거북 구(龜)자에 꼬리 미(尾)자를 써 구미라 부른다”고 말했다.

조선 때 이 지역은 동원면 소재지였다. 반남박씨 500년사에 보면 「소고 박승임(1517-1586)의 동생 박승륜(朴承倫.생몰미상.1520-1585으로 추정)이 만년에 동원(桐原)에 집을 짓고 책을 벽에 가득 채웠다.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세속의 명리(名利)에는 뜻을 버리고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자호(自號)를 동원(桐原)이라 했다」라는 대목에서 당시 이곳 지명이 ‘동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700년경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순흥부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원면(東園面)이라 부르다가 조선 말(1896년) 순흥부 동쪽 ‘으뜸마을’이라 하여 동원(東元)으로 개칭했다.

안종호(78) 노인회장은 “선대(先代)께서 전하기를 옛날 영양남씨가 구미에 처음 살았다는 구전이 전해왔다. 그 후 덕산이씨와 일직손씨 양성이 세거하다가 풍기진씨가 입향하면서 3성이 정답게 살았다. 지금은 25가구가 화합하면서 더불어 사는 마을이 됐다”라고 했다.

 

옛 덕산이씨 정자

덕산이씨 입향 내력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세종 때 함길도 관찰사를 지낸 이유(李愉.1365-1423)는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조카 안영부(安永孚.안향의 재종손자)의 사위이다. 이유는 순흥 사현정으로 장가든 인연으로 동원에 터를 잡았다고 덕산이씨(德山李氏) 세보에 나온다.

후손 이동식(94.전 교장) 어르신은 “유(愉) 선조께서 처음 터 잡은 곳이 ‘사풍촌(斜風村.현 이레마을-구미 인근 추정)이라고 하나 어딘지 확인할 수 없고, 그 후손들이 구미와 자봉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 왔다”며 “유(愉) 선조님의 아드님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영남의 명문가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 마을 이영태(85) 어르신은 “덕산이씨(시조 李在述) 9세손 유(愉) 선조께서 사풍촌(구미 주변)에 터 잡으신지 600년이 넘었다”면서 “동원리 지역(자봉·구미)은 당시 순흥부 속방(屬坊) 중에서 명망(名望) 높은 마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구미갱변공원

일직손씨 세거지 구미
일직손씨(一直孫氏,시조 孫凝)는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오른 손홍량(孫洪亮,1287-1379)을 중시조로 세계를 잇는 안동 일직의 토착성씨다.

이 마을 출신 손창헌(75.영주시)씨는 “저의 13대조 손한(孫한.11세손) 선조께서 1600년경 조와동 갓골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마을을 개척하셨다”면서 “세보에 보면 한(한) 선조의 아드님이신 몽협(夢莢.1611생) 선조는 참봉을 지내셨고, 손자 준용(俊龍.1642생)은 형조참의에, 증손자 창도(昌燾)는 호조참판에 증직되는 등 당시 지역 유림을 대표하는 가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손기락(71)씨는 “일직손가가 구미에 정착한지 400년이 넘어 구미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다”며 “1950-60년대까지는 25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10여 가구만 산다”고 말했다.

 

6.25 때 지은 토담집

구미의 풍기진씨
풍기진씨(豊基秦氏) 시조 진필명(秦弼明.당나라 병부시랑)은 660년 나당연합군 대장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가지 않고 귀화했다.

그의 15세손 진질명(秦질溟)은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1150년)하여 문하좌시중으로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기주:풍기의 옛이름)에 봉해져 풍기(豊基)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이 마을 진창환(78) 노인회 부회장은 “저의 8대조 중락(中洛.1852-1914) 선조께서 1880년경 안정 봉암에서 이곳 구미로 이거하거 세거지를 마련하셨다”면서 “자연에 순응하면서 척박한 농토를 개척하고, 오직 농업을 천직으로 처사(處士)의 삶을 사셨다. 1960년대에는 1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겨우 2가구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정다운 마을길

6.25와 보릿고개
이 마을 원로 김윤학(91.경주김씨) 어르신은 “6.25 직후 1차 징집에 지원했다. 영주군청에 집결하여 고빼(열차)로 대구(삼덕국교)에 가서 11월에 입대했다”면서 “14일간 훈련받고 12월 초 전선에 투입되어 북진하던 중 중공군에 밀려 후퇴했다.

1.4후퇴 후 영월전투, 양구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55년 1월 일등중사로 제대했다. 그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복수(89) 할머니의 보릿고개는 이렇다. “6.25 피난살이 고생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은 보국대 가고 아이들은 밥 달라고 울어대니 송구죽, 가래치죽으로 연명하던 그 때를 우리는 ‘보릿고개’라 했다”며 “남편이 보국대 마치고 돌아오던 날 나뭇단을 팽개치고 달려가 남편에게 덥석 안겼다”고 말했다.

 

구미마을 사람들

구미 사람들
대마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마을 앞을 지나면서 갱변을 이루었다. 다음(Daum) 지도에도 ‘구미갱변’이라고 나온다. 예전에 선비들이 하얀모래 반짝이는 구미갱변 정자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구미마을 사람들은 옛 갱변 자리에 공원을 만들고 정자를 지어 옛날을 추억하고 있다. 김제덕(80) 전 노인회장은 “지금 구미는 17개 성씨가 모여 오순도순 더불어 사는 마을”이라며 “2007년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들이 정성을 모아 노인회관을 건립했다”고 했다. 마을 회관으로 가는 길에 황정숙(77)씨를 만났다. 황 씨는 첫 마디가 “노인회관이 없으면 못살아요”라며 노인정을 자랑했다.

조덕예(86) 할머니는 “나라에서 하는 일 중 노인회관을 건립하고 지원하는 일이 가장 돋보이는 것 같다”며 “노인들을 위해 애쓰시는 이기영 이장님과 안종호 노인회장님께 늘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문수 적서에서 구미로 시집왔다는 김동웅(84)할머니는 “예전에 송구죽, 수꾸죽도 못먹어 생보리를 쪄서 비벼먹고 살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통일벼가 나와 쌀밥 먹고 살 수 있게 됐다”며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은 날마다 임금님 밥상”이라고 말했다.

박순희(84) 할머니는 “마을 가운데 동샘이 있었는데 모두 그 물 먹고 살았다”면서 “구미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조상을 잘 모시고 예의와 법도를 존중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경로회관
구미 가는 길

<단산면 동원1리 구미 사람들>

이기영 이장
안종호 노인회장
김윤학 어르신
김제덕 전 노인회장
진창환 노인회부회장
박복수 할머니

조덕예 할머니

박복수 할머니
조덕예 할머니
김동웅 할머니
박순희 할머니

 

 

김동웅 할머니
박순희 할머니
손기락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