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영주 입향 첫 터전 ‘원정골’ | ||||||||||||||||||||||||||||||||||||||||||||||||||||||||||||||||||||||||
우리마을탐방[116]문수면 월호3리(원정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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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골 가는길 이 다리를 건너 노트리 마을을 지나고, 승평고개를 넘어 수도교(水島橋)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원창동’ ‘하늘기둥농장’ 표지판이 나타난다. 마을은 농로를 따라 400여m 안쪽에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원정골에 갔다. 반남박씨 종택에서 박천주 종손을 만나고, 땀흘리는 농업현장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원정골 500년 역사를 듣고 왔다.
조선 후기(1895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월호리’가 새로 생기면서 영천군 권선면에 편입됐다. 한일합방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문수면 월호리 원정골, 1980년 영풍군 문수면 월호리 원정골,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될 때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 원정골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호리는 고종 32년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새로 생겼다. ‘달을 부른다’는 뜻을 가진 ‘월호(月呼)’는 당시 지역 유림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정골’은 ‘원창동(元昌洞)’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때 ‘원창’이라는 고을 원이 살았다 하여 ‘원창’이라고 불러 오다가 언제부터인가 ‘원정골’이라 부르고 있다. 반남박씨 영주 입향 내력 침(琛)의 후손들은 원정골을 중심으로 간곡(샛골), 장수 보통골, 머럼, 무섬, 고랑골 등지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8세 병균(秉鈞, 판관공파조)-9세 숙(숙, 승지공, 낙남선조)-10세 침(琛, 사직공, 영주 입향조, 묘소 조제리)-11세 승장(承張, 묘소 원정골)-12세 담수(聃壽)-13세 복룡(伏龍)-14세 후(珝)-15세 종서(宗緖)-16세 삼익(三益)-17세 후현(後絢)-18세 태창(泰昌)-19세 시중(時中)-20세 성택(成宅)-21세 동범(東範)-22세 제일(齊逸)-23세 래양(來陽)-24세 승호(承浩)-25세 용서(龍緖)-26세 찬윤(贊潤)-27세 용우(用雨)-28세 천주(天柱)-29세 현승(賢承) 원정골 사람들은 “난세와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500년 숭조문화를 이어온 뚝심을 칭찬할만하다”며 “그러나 반남박씨 대종갓집이 있는 원정골에 큼직한 표석 하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박천주(50) 종손은 어릴 적 아버지(用雨)를 따라 안동 덕동에 가서 자랐다. 선조들의 묘소를 수호하고 문중재산의 토지수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충북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축산대학원을 나온 축산 전문가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20여년 전 귀향했다. 박 종손은 “이곳은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곳으로 언젠가 일가를 이루고 살 곳이었다”며 “숭조정신(崇祖精神)을 이어가면서 종족돈목(宗族敦睦)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종부 김이숙(47)씨는 홍익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종손 부부는 딸 예솔(藝率,대3)과 예인(藝仁,대2), 차종손 현승(초6)군과 함께 원정골에서 산다. 무섬마을 옆 하늘기둥 농장 이곳에 가면 거위가 길을 안내하고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엔 부엉이와 원앙이 새끼를 친다. 농장 곳곳에 고향집에서 보았던 꽃들이 피어나고, 산비탈에는 방목(放牧)하는 소들의 여유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전통장류 체험을 비롯하여 천연발효식품, 텃밭체험, 토종꿀 체험, 시골놀이, 시골음식, 계절별 농산물 수확, 황토방, 팜파티 운영 등 체험과 민박이 가능하다. 무섬마을 구경하고 ‘하늘기둥농장’에 들리면 시골 정취 물씬 풍기는 아늑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연락처 010-8996-6848]
이 마을 권영갑(71)씨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골 안쪽 중간 지점에 ‘원창’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골 안에는 사금이 나온다는 사그메골, 버드나무골, 샘골 등이 전해진다. 또 방석 방향 골짝에 향교가 있었다 하여 ‘향교골’이라 하는데 지금도 옛 벽돌, 기와 등 흔적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원로 안주일(82) 어르신은 “반남박씨 종갓집이 있는 곳을 원래 ‘원정골’이라고 했다.
원정골 사람들 마을 입새에 사는 배동순(80) 할머니를 사람 키보다 더 큰 고추밭에서 만났다. 배 할머니는 “6.25 사변 무렵에는 26집이 살았으나 지금은 10집정도 산다. 그 중 두 집은 요양원에 가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다 만난 김성한(69)씨는 “마을의 농업은 벼농사, 고추, 수박, 자두 등이 있으며, 소는 마을 전체 150두 정도 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100여m 떨어진 외딴집에 사는 조덕영(72)·황금자(67) 부부를 그 집 마당에서 만났다. 마당에는 고추가 널려있고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조씨 부부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창은 고려 때부터 있었던 마을로 전해온다. 그래서 골짝마다 전설이 있다”며 “마을 입구에는 옛 사람들이 치성들이던 고인돌이 있고, 느티나무와 구렁이의 전설도 있다. 향교가 있었다는 향교골 이야기, 옛날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 등 많은 전설과 유래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박천주 종손
김이숙 종부
박현승 차종손
안주일 어르신
배동순 할머니
조덕영 씨
권영갑 씨
김성환 씨
전윤경 씨
황금자 씨
원창동 입구
마을 전경
▲ 가보, 판관공 교지
▲ 가보, 과거시험 답안지 수령 500년 느티나무 농촌 체험장 박천주 종손
회병골 마을
교지
고인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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